사진ㅣ 조상윤 기자
“고려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저도 학생들과 끝까지 함께할 거예요”

25년째 법대후문에서 식당과 하숙집을 운영해 온 최필금(여∙57) 사장은 하숙집과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답했다. 최필금 사장은 지난 3일 본교에 1억 원을 기부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최 씨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어려웠던 학창시절을 돌이키며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육성회비를 못내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최 씨는 아직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육성회비를 못내 운동장 한 가운데서 무릎 꿇고 벌을 서기도 했어요. 그래도 당시엔 어떻게든 공부를 하고 싶어 무작정 학교에 갔죠”

간신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는 도자기 공장에서 일을 했고, 고등학교 땐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학업을 이어나갔다. 그는 소풍갈 때의 기억이 가장 생생하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정부미로 밥 먹는데 친구의 도시락에 달걀 후라이가 밥 위에 있는 것을 볼 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 식당에선 달걀 후라이 만큼은 아낌없이 주고 있죠”라고 말했다.

학생들에 대한 그녀의 기부는 본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꾸준히 이뤄졌다. 그녀는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종암중학교의 소년소녀가장 20여명에게 매년에 4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교장 선생님과의 약속으로 시작된 학비 지원이 장학회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평소 최 사장과 알고 지내던 본교 김언종(문과대 한문학과) 교수는 ‘필금장학회’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가끔 아이들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는데 그걸 보고나면 내 예전 생각이 나서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어요”

최 사장은 25년동안 법대후문에서 하숙집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1985년경 처음 하숙집을 차렸고, 당시 10여명이던 하숙생은 현재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왜 ‘고대’였냐고 묻자 그는 젊은 시절 고연전을 본 이후 고려대가 이유없이 자신의 모교처럼 느껴졌다고 답했다. 그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의 얘기를 했다. “한 학생이 항상 시위에 참가해 거의 매일 다친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자식같은 애가 그렇게 들어오면 속상해서 가족들을 생각해 공부에 전념하라고 다그친 적도 있죠”

최근엔 원룸식 하숙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 최 씨의 하숙집에는 온정이 넘치는 편이다. “예전보다 서로 볼 기회가 적어졌지만 아침식사 시간엔 내가 꼭 나가 우리 애들 얼굴도 보려고 해요. 나를 보러 오는 건지 밥이 맛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요즘같이 아침밥 안 챙겨먹는 시대에 우리 식당엔 학생들이 아침밥을 꼭 먹으러 와요” 현재 유정 하숙집에 거주하는 정철(문과대 인문10) 씨는 “하숙비가 좀 밀려도 뭐라고 하신 적 없다”며 “우릴 정말 아껴주시고 존중해주신다”고 말했다.

이번 기부로 교육관에 최 사장의 이름을 딴 강의실이 생겼다. 그녀는 자신이 고려대의 일부가 된 것 같다며 아이같이 좋아했다. “앞으로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하숙방도 무료로 제공할 의향도 있고 기부도 계속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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