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취업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될 사람은 된다. 그 ‘될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들이 요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5대 스펙 - 학점ㆍ외국어 성적ㆍ자격증ㆍ봉사활동ㆍ해외유학을 갖추는 것은 서류 전형을 통과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 조건이다. 바늘구멍과도 같은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SSAT같은 기업별 입사 시험을 치러야 하며 뒤이은 면접에서도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거기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올 것.’

입사에서 좋은 대학 출신의 취업준비생이 유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기업에서 좋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보다 나은 교육요건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그 기업에 좋은 대학 출신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첫째 이유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지만, 둘째 이유는 마치 삼신할매가 랜덤으로 점지해 준 것처럼 대학 입학 이후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애초에 5대 스펙 자체가 학벌에 대항하여 첫째 이유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두고 학벌 사회의 폐단이다 하며 거창하게 말하고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대놓고 비난하기도 뭣하다. A대학 출신인 당신이 면접관인 회사에 비슷한 성적의 두 사람이 지원을 했다. 당신은 A대학 출신을 뽑고 싶겠는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뽑고 싶겠는가?

대학 운동부와 프로구단 간의 관계도 이런 취업구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나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대학을 거쳐야 하는 농구계는 학벌이 더욱 중요하다. 단장, 감독 등 수뇌부가 고려대 출신이 많은 삼성과 동양(현 대구 오리온스)의 경우 예전부터 고려대 출신 선수들을 우대해 왔다. 오리온스의 경우 김진(사회 80) 감독의 해임 이후 고려대 선수의 지명이 끊기면서 학벌 지명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고, 조승연(철학 64) 단장이 이끄는 삼성은 올해까지 전 구단 통틀어 가장 많은 고려대 선수들을 지명했다. 게다가 작년 드래프트에서 각각 김태주ㆍ하재필ㆍ신정섭ㆍ방경수(이상 체교 06)을 지명했던 삼성ㆍKCCㆍ동부ㆍLG가 올해 또다시 각각 유성호ㆍ김태홍ㆍ홍세용ㆍ정창영(이상 체교 07)을 데려갔다. 프로 진출에서의 학벌의 중요성은 입사에서의 그것만큼이나 공공연하다.

실제로 스포츠계에서의 학벌 우대는 충분히 폐단이라고 이를 만하다. 일반인들만큼 취직의 폭이 넓지 않은 대학 운동선수들 중 많은 선수들이 학벌에 밀려 운동을 포기했다. 또한 프로에 진출해서도 주전 스쿼드에 포함되지 못하여 기량을 만개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입시나 취업처럼 ‘N수’의 개념이 없는 그들의 눈물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쓰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물보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를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역시 배우지 못한 놈들이 다 그렇지’, ‘스포츠계가 더러운 게 하루 이틀인가’란 식으로 전체를 싸잡아 폄하한다. 허나 한국에서 기십년 된 프로 스포츠가 있기 전에 학벌이 있었고, 학벌이 있기 전에 사회가 있었고, 사회가 있기 전에 팔이 안으로 굽는 인간의 본성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본성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고, 반드시 고쳐 나가야 하는 폐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스포츠계에 돌을 던지기 전에 우리가 서 있는 수렁부터 내려다보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공공연한 것은 여기뿐만이 아니니 말이다.

이건희 미디어학부08, <Sports KU>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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