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때가 되면 밥집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여럿이 어울려 따뜻한 밥을 먹었다. ‘고대’하면 ‘밥집’이 떠오를 만큼 고대인은 밥집을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 배고픈 학생들의 이모이던 밥집 주인들이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나고 있다.

본교 주변에서 16년 간 밥집을 운영한 이진주(여․59세) 씨는 2009년부터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06년까지만 해도 식사 시간마다 큰 밥솥에 10번이나 밥을 해야 할 만큼 식당은 손님으로 북적댔다. 그런데 지금은 점심시간이 지나도 밥솥 하나를 못 비운다. 5년 간 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복순(여․55세) 씨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식당의 주메뉴는 김치찌개, 깡장, 제육볶음으로 밥과 밑반찬이 함께 나오는 전형적인 한식이다. 김 씨가 식당을 시작했던 5년 전만해도 오전 11시부터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요즘은 오후 12시가 지나도 한산하다. 단골인 대학원생과 교수만이 식당을 찾을 뿐이다.

정대 후문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조 모(여․54세) 씨는 5년 전 장사를 시작할 때 주방 직원으로 5명을 채용했다. 사장인 조 씨까지 6명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손님들이 많았고, 손님들은 가게 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현재 가게에 남은 사람은 조 씨를 포함해 단 둘 뿐. 휴일에는 조 씨 혼자 가게를 봐도 충분할 정도다.

 

학생들의 발길이 끊긴 이유

왜 밥집에 학생들의 발길이 점점 끊기는 걸까. 밥집 주인들은 학생들의 식생활이 변화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가정식이 기본 식단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식단은 브런치, 파스타, 일식 등으로 바뀌었다. 김복순 씨는 “예전에는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한식으로 챙겨먹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가끔 먹는 특별식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더 많다”며 “분위기 좋고 다양한 음식이 나오는 곳을 선호하는 학생이 늘었다”고 말했다.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려는 학생들도 늘었다. 점심시간 교내 편의점은 줄을 서서 계산을 해야 할 만큼 학생들로 북적인다. 교내에만 10여 곳에 이를 만큼 편의점의 수도 크게 늘었다. 박지연(사범대 영교10) 씨는 “요즘엔 편의점 음식도 질이 높아졌고 혼자 간단히 해결하기 편하다”며 “식당에 가서 식사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밥집을 잘 찾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밥집 주인들은 떠나가는 손님을 잡으려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조 씨는 주요리가 나오기 전 간식을 제공하고 4인 이상 주문 시 가격을 할인해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학생들 의견을 물어 개선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막막하다”고 말했다.

 

오르는 물가에 허덕이는 밥집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이은 물가 상승으로 식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식당 운영에 어려움은 가중됐다. 돼지고기와 김치찌개를 주 메뉴로 하는 김 모(남․37세) 씨는 본교 상권에서 장사를 한 1년 동안 큰 고비를 두 번 겪었다. 지난해 10월 배추파동으로 인해 8000원이던 배추 3포기의 매입가격이 4만 5000원까지 올랐다. 최근 구제역 파동 때에는 1kg에 6000원이던 돼지고기가 1만 4000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김 씨는 “배추 가격은 이제 안정됐지만 구제역으로 돼지 공급이 현저히 줄어 언제까지 이 상태가 계속될 지 모르겠다”며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거나 원재료를 바꿀 수도 없으니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견디다 못한 일부 식당 사장들은 적자만은 막아보자는 생각으로 음식 가격을 500~1000원씩 인상했다.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미안하지만 오르는 식자재 값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발길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 커뮤니티 등지에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 씨는 “메뉴 가격과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더 비싼 브랜드 커피 값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하면서 밥 가격 인상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한편으론 야속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밥 먹을 곳을 잃은 학생들

손님감소와 물가상승으로 밥집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으면서 이젠 한식을 먹고 싶어도 찾아갈 식당이 없다. 어려움을 못 이긴 식당주인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그 자리를 카페나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대신했기 때문이다. 안효영(문과대 불문07) 씨는 “작년에 비해 한식집이 많이 없어진 것이 느껴진다”며 “밥을 챙겨먹고 싶은데 어디를 갈지 선택권이 없어져 매 점심시간마다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김복순 씨는 “잘 챙겨먹고 공부해야 할 나이에 영양분 섭취가 한 쪽으로 편중되거나 부족할까 걱정된다”며 “건강한 먹거리를 외면하고 인스턴트에 익숙해지는 학생들이 진짜 한식의 맛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고대신문이 만나 본 밥집의 사장들은 대부분 식당 장사를 그만 둘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사장들은 입을 모아 이제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가게를 내놓았다고 말한 사장도 있었다. “가격을 올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여기서 가격을 더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계속 가다보면 조만간 장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주인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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