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처음 카자흐스탄 땅을 밟았을때의 일이다. 그 당시  유일한 한국 식당이 있는 카자흐스탄 호텔로 약속이 잡혔다. 아직 러시아 말에 서툰 필자는 택시를 잡아타고 “카자흐스탄 호텔로 가자”고 했다가 난감해진 적이 있다. 아무리 영어를 몰라도 ‘호텔’ 쯤이야 다 알겠거니…. 했던게 실수였다.  러시아 말로 ‘가스띠니차’라고 해야만 했을 것을.

엊그제는 택시를 탔다 도리어 외국인인 걸 눈치채고 무작정 영어를 퍼붓는 탓에 짧은 영어가 여기 고려말로 ‘세게 고생’ 좀 했다. 이런걸 두고  격세지감이라 하는가.

자신을 경제학과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대학생 택시기사-여기선 자기 차만 있으면 오가는 길에 누구나 부업으로 택시를 한다- 는  ‘북한 문제’부터 최근의 ‘사스’문제까지 유창한 영어로 묻고 필자는 러시아어를 섞어가며 답하고.

누가 외국인인지? 잊었던 영어의 악몽을 되살리는 식은땀 나는 시간이었다.

최근 들어 알마타에 영어 학원들이 하나 둘 느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한달에 몇 만원 안하는 곳부터 많게는 150달러이상되는 학원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월150달러를 사교육비로 지출할 수 있는 가정은 소수 몇 퍼센트 뿐일 것인데, 일반 대학생들이 제 2외국어를 위해 가족의 한달 생활비를 퍼붓는다는 게 이해가 안가지만 많이들 다니고 있다.

한국에서 ‘영어열기’를 논하면 식상한  주제요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논제임에 분명한데, 이제 카자흐스탄도 빠른 속도로 달궈지고 있음을 느낀다.

 몇 년 전만해도 ‘굿 모닝!’도 모르던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가던 볼링장을 가던 어디든 영어를 쓰는 매니저가 달려오고 영어를 써야 외국인으로서 대접다운(?) 대접을 받으니,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근엔 어디를 가든 다시금 영어로부터 해방될 수없음에 서글퍼지고, 덕분에 바퀴벌레-vocabulary-속을 헤매던 대학시절!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이나 미국 어느 나라든지 청바지에 전공 서적을 넣고 그 무게에 축 처진 배낭을 어깨에 맨 대학생들을 모습은 캠퍼스의 푸르름을 더하고 싱그럽기까지 하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예전엔  전공서적 뿐아니라 이런 저런 인문과학, 사회과학 서적을 가뜩 넣은 배낭을 메고 도서관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 어스름을 가르던 때가 생각난다.

알마타 대학에서 늘 궁금한 것이 학생들이 여학생은 손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핸드백 수준-수업에 들어 온다는 것이었다.  전공서적은 폼이 안나서 아니면 귀찮아서 안 들고 다니는데 요즘 너도나도 토플책 한권씩은 필수품이 됐다.

거기다 제 2인지 제3인지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고….

지난주 우연히 소개받은 까작인 대학생이 반갑다는 듯이 한국말로 얘기하길래 한국어과 학생이냐고 묻자, 영어가 전공인데 한국어는 부전공으로 배웠다고 하면서 일자리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다음 주면 이곳 대학은 졸업 시험이 시작된다.


작년에 카작 국립대학에서 경제학부 전체 수석 -여기선 금메달을 수여한다-을 차지한 나딸리아가 일자리를 못 찾고 일년을 놀다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친구들은 나딸리아가 영어를 소홀리 했으니  당연히 취업이 안 되는 거라고들 한다.

한국이나 카자흐스탄이나 ‘영어’는 취업의 아킬레스건인가!
 
아니 인생의 아킬레스건일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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