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동아리 ‘그림마당’은 문에 가득 붙어있는 일러스트와 습작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안으로 들어서자 만화책으로 가득 찬 책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책장 위와 뒤에 있는 박스에도 만화책이 한 가득이다. 그림마당 이은헌(사범대 컴교10) 회장은 “책장의 만화책은 모두 선배들이 기증해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것들”이라며 “모두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반 정도 세어보니 2000여 권 정도”라고 말했다.

1985년 생긴 그림마당은 18년 전부터 매년 동아리원이 직접 그린 만화를 모아 ‘그림마당 창작회지’를 발간한다. 올해에는 ‘일상’을 주제로 회지를 만들었다. 얼마 전 회지 작업이 끝나 한결 여유롭지만 회원들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연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비었던 종이가 일러스트와 각종 만화로 그득하다. 그들에겐 ‘일상’이 모두 만화였다.

만화책을 넘기는 건 쉽지만 만화를 그리는 일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토리 구성이다. 회지 만화에는 기존 만화 캐릭터를 패러디하는 것이 금지돼있어 배경설정부터 등장인물의 프로필까지 모두 새로 구상해야한다. 콘티를 짜는 것도 일이다. 컷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어떤 대사가 들어가고 배경과 인물의 자세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치밀하게 결정해야 한다. 콘티를 그리고 연필로 데생을 한 후엔 펜을 덧입힌다. 안선정(문과대 인문11) 씨는 “한번 그린 것을 또 그려야 하는 펜 작업이 가장 지루하다”며 “펜으로 다 덧입힌 후 연필로 그린 것을 지울 때는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고 말한다. 스크린톤(명암이나 무늬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을 붙일 때는 세밀한 부분을 칼로 직접 다듬어줘야 하고, 대사를 적는 식자 작업은 프린터로 인쇄한 글자를 가위로 하나씩 오려 붙여야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만화 한 컷이 완성된다. 원고에 잉크를 쏟아버리거나 지우개 질을 하다가 종이가 찢어져 버려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배진현(정경대 통계10) 씨는 “만화를 그리다보면 처음 계획했던 스토리 일부를 생략하거나 컷을 줄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요즘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전자펜으로 태블릿 위에 그림을 그리면 컴퓨터 모니터에 그림이 그려지는 방식이다. 실수를 해도 복원이 쉽고 생략돼는 과정이 많아 많은 만화가들이 태블릿을 이용한다. 태블릿으로 한번 그려보라는 회원들의 말에 덥석 집어 들긴 했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태블릿을 보고 그려야 하는지 모니터를 보고 그려야 하는지부터 헷갈린다. 종이에 그리는 것보다 쉽고 간단하기는커녕 화면의 마우스 조정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전자펜에 싣는 무게를 조절해 선의 굵기를 조절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기자가 헤매고 있자 조영민(정경대 행정10) 씨가 시범을 보인다. 쓱쓱 간단한 손길 몇 번에 금방 멋있는 일러스트 하나가 그려진다. 배진현 씨가 레이어를 추가해 일러스트에 색칠을 하자 예쁜 옷을 입은 소녀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그림마당은 7개에 이르는 포근한 소파에서 벽면 가득한 만화책을 보고 싶은 사람을 찾고 있다. 그림 실력이 없어도 만화를 좋아한다면 찾아가보는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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