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차트에 가득 찬 의미 모를 노래들 말고, 클럽에서의 무아지경 말고, 하루하루 업데이트 되는 웹툰 말고. 진득하게 앉아서 ‘오래된 것’들을 파고드는 젊은이들이 있다. 수백 년도 더 된 음악을 듣고, 천천히 정성껏 먹을 갈고, 역사 속 지성에게 고민의 해결책을 묻는다. 이들이 말하는 고전의 매력은 무엇일까. 학내 중앙동아리 ‘고전음악감상실’과 ‘서화회’, 학외 연구공동체 ‘수유너머N’ 구성원들을 만나봤다.

학교 안의 작은 클래식 다방 - 고전음악감상실
고전음악을 통해 보다 많은 학생들이 음악을 접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동아리, 고전음악감상실. 고전음악감상실은 클래식을 듣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고전음악에 푹 빠져있었다. 감상실의 전직 임원인 윤경언(미디어10) 씨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드라마에 나오는 클래식을 찾아 듣게 되면서 고전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윤 씨는 고전음악의 매력을 ‘미개척 정글을 탐험하는 것 같은 재미’라고 꼽았다. “지금 인기 있는 음악들은 어디선가 한 번씩 들어본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느낌이에요. 그런데 고전음악은 굉장히 종류가 다양하고 양도 방대하죠. 음악을 하나하나 발견해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요즘 곡들이 5분 이내에 끊어지는 것에 반해 클래식은 20분 넘게 들어야 되는 경우가 많아 대학생들에게 익숙지 않다. 대학생에게 고전음악은 ‘졸리고 딱딱한’ 이미지다. 이에 고전음악감상실 임원인 유설희(문과대 철학09) 씨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하나의 악기에 평생을 바치며, 그렇게 탄생한 음악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깊이와 감동이 차원이 다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윤 씨는 클래식이라고 꼭 잔잔한 음악만 있는 것도 아니라며 웃었다. 윤 씨는 이른바 ‘고전음악의 멘탈붕괴 3대 음악가’ 말러, 브루크너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를 소개했다. ‘멘붕’이 왔을 때 이런 음악들을 들으면 마치 자신의 상황을 공감해 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고전음악에 거리감을 느껴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은 모두 ‘편견을 버려라’ 라고 말한다. “고전음악은 공부하고 들어야 하는 음악이 아니에요. ‘교양’을 쌓기 위해 고전음악을 듣는다면 오히려 얻는 것이 별로 없어요. 아무런 배경 없이 들어도 그 깊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고전음악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에요”

글씨와 그림의 경계에서 예술을 찾다 - 서화회
서예를 하는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든 역사 깊은 동아리, 서화회. 들어가면 붓글씨나 유화 중 하나를 골라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서화회의 서(書)실장을 맡고 있는 박유빈(문과대 심리11) 씨는 동아리에 들어가기 오래 전부터 이미 서예에 재미를 붙여 왔던 케이스다. “서예작가인 이모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서예가 지루할 거라고 예단하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자주 보다 보니 자연스러웠어요”


박 씨가 꼽은 서예의 매력은 마치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리듯 여러 글씨체를 골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나타나는 글씨체에 따라 그 느낌이 제각각 달라지는 것이 서예의 묘미다.

서예를 한다고 하면 신기하게 보는 사람도 많지만 재미없고 고리타분할 것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적잖은 게 사실이다. 그녀는 “서예를 즐기는 다른 친구 중에 ‘뿌리 깊은 나무’의 포스터 글씨를 쓰고 신세경의 손 대역을 하는 등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며 “서예는 하면 할수록 그 특유의 재미를 알 수 있고 집중력과 인내심을 기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전, 그 너머를 찾는 사람들 - 수유너머N
대안지식공동체를 표방하며 철학, 미학, 고전 강좌와 세미나를 활발하게 개최하는 연구공동체 수유너머N. 수유너머N의 세미나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주제를 직접 선정하고 구성원을 모으며 시작된다. 스스로를 ‘고전 애호가’라고 자처하는 박종윤(정경대 정외07) 씨가 진지한 자세와 열기가 방안을 가득 메운 이곳의 반장을 맡고 있다. 평소 인문학, 사회과학 책을 좋아했던 박 씨는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고 한다. 새로운 지적 자극을 원하던 차에 수유너머N의 다양한 고전 세미나들을 접하게 됐다. “혼자 읽을 때는 느낄 수 없던 점들을 세미나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며 알아갔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점점 고전에 매혹됐지요” 박 씨는 고전을 ‘시원한 음료수’로 비유했다. 어려운 고전을 완독했을 때 느끼는 청량감은 어느 것에도 비할 데가 없다고 덧붙였다.


대학생이 있어도 신기한 그 단체엔 고등학생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인 김지안 씨는 교실의 암기 위주 공부의 강압적인 구조를 보며 그 원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수유너머N에서 진행되는 강좌를 알게 됐고 고전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오늘날 사회문제들을 깊숙이 탐구해보면 그 해답은 고전에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대학생이 되면 취업 걱정 등 힘든 일이 많겠지만 일찍부터 개인적 문제에 갇혀있기 보다는 고전을 통해 문제의식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고전에 빠져든 사람들. 그들은 고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더욱 진지하게 자아를 탐구하고 있었다.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실천이라는 문 너머에 숨겨져 있고 그 문을 열 열쇠는 우리들 스스로가 쥐고 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