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김연광 기자 kyk@kunews.ac.kr
사회를 향한 열정을 불태웠던 젊은이들의 모임이 있다. 사회과학 동아리 ‘한국사회연구회(한사연)’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현실에 특히 관심을 보이던 한 청년은 이제 ‘노동인권변호사’가 됐다. 꿈을 이뤘다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며 활짝 웃는 김종귀(경영학과 96학번) 변호사를 만났다.
김종귀 씨는 ‘한사연’을 1학년 때 동아리 박람회에서 처음 알게 됐다. 처음 알게 된 ‘한사연’의 이미지를 묻자 그는 웃으며 ‘잘 나가던 동아리’라고 표현했다. “집회 참여부터 역사 공부까지 안 하는 게 없는 만능 동아리었죠” ‘역사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삼는 ‘한사연’은 자신의 열정을 마음껏 표출하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순간 ‘나를 위한 동아리구나’ 싶었죠. 책자에 소개된 다른 동아리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요” 한사연에서의 농촌 활동과 세미나,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한 연구 활동은 김 씨가 노동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한사연’에서 소외계층의 문제를 공부하며 ‘평생 소외된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는 자신만의 소신을 세웠다. 고민 끝에 처음 가졌던 꿈은 기자였다. 소외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회계사가 되길 원하셨다. 부모의 뜻에 따라 회계사 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결국 노동인권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회계사 시험에 ‘법’ 과목이 있었어요. 법을 잘 몰라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진로를 바꿨죠” 노사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 인권을 보호해주는 노동인권변호사는 한사연 활동을 하면서 결심한 자신의 소신과도 딱 맞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학창시절의 동아리 활동과 관계없는 일을 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김종귀 씨는 동아리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힌트를 주는 곳”이라고 말한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후배들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려면 현재의 경험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돼요” 동아리를 통해 스스로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김 씨는 한사연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이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는 그. 이런 겸손이 사회에서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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