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김연광 기자 kyk@kunews.ac.kr
“금메달! 자랑스런 태극낭자 선수들이 또 한번 금메달을 안겨주었습니다!”
런던올림픽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항상 올림픽에서는 수많은 스타들이 나왔고,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탄생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떠올린다면 양궁 여자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이은경(체육교육과 91학번)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21살 어린 나이의 그녀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선배 선수들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그 이후 강산이 한번 바뀌는 동안에도 그녀는 10년간 국가대표 자리를 지켜냈다. 그것도 국가대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양궁’에서. 이제는 선수가 아닌 지도자이자 올림픽 양궁 해설자로 한국 양궁 발전을 위해 달리고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도 KBS에서 양궁 해설을 맡게 된 이은경 LH공사 양궁팀 코치를 만났다.

- 올림픽에 나갔던 1992년은 벌써 20년 전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가장 아쉬웠던 순간중 하나에요. 당시 올림픽 선발전도 굉장히 잘했고, 누가 금메달을 딸지 몰랐는데 개인전에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어요. 선발전을 워낙 많이 치르다 보니 올림픽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큰 대회이다보니 아쉬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아쉬움으로 이후의 국가대표 선수생활동안 계속 세계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계속 가지는 계기가 됐죠”

- 당시 막내로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선배들이 어떤 조언을 해주었나
“김수녕 선수는 학교 선배이면서 88올림픽 2관왕 경험도 있기에 시합준비하면서 김수녕 선수를 따라서 준비했어요. 또 단체전에 팀워크가 중요하다보니까 서로 호흡을 맞췄죠. 하지만 개인전에서는 서로가 라이벌이기에 약간의 긴장감은 항상 있었어요”

- 어떻게 10년동안 국가대표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나
“국제대회 엔트리는 정말 많은 선발전을 치러요. 이번 런던올림픽 선발전은 9차례나 실시를 했어요. 64명부터 매번 하위선수들을 탈락시키면서 실시를 해요.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의 기록이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날 자신의 컨디션이 선발전 결과를 좌우하는데, 워낙 단기간 준비하다보니까 정말 피가 말라요. 그래서 저는 양궁선수로 있던 순간만큼은 오로지 양궁만을 생각하려 했고, 성실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제가 선수생활을 길게 한 원동력이 되었어요”

- 대학생이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더 그렇죠. 당시에는 고등학교 시절 때 고등부가 강세, 대학시절에는 대학부가 강세, 세대적으로 강세인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양궁 대표팀에서는 학업과 병행하는 대학생들보다 실업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대표선발에 유리한 점이 있죠. 또한 실업팀 선수들은 많은 선발전을 거친 경험이 있기에 대학생이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어려워 졌어요”

- 선수시절 10년 동안 가장 큰 목표가 있었다면
“저는 올림픽 뿐만 아니라 매년 그 해에 있는 대회를 항상 목표로 세웠어요. 그 해에 치르게 되는 대회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 저의 목표였어요. 비록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못 땄던 것은 아쉽지만 제가 세워놓은 목표들은 다 이뤘어요”

- 선수생활에서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적어보인다.
“올림픽 출전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94년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고 나서 95년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는데 당시에 4명을 뽑는 선발전에서 제가 5등을 했어요. 또 그해의 올림픽 선발전에서는 3명을 뽑는 선발전에서 4등을 했고요. 그래서 당시를 생각해보면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못 나갔던 것은 저에게 많이 아쉬웠죠”

- 운동선수 생활에서 고비시기라면
“96년 대표 선발전까지 떨어지고 97년에 태릉선수촌 랭킹에 들지 못해 퇴촌할 때는 선수생활을 그만둘 생각도 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선수생활을 그만둔다면 미래에 자신이 없을 것 같았어요. 이후에 지도자로 다른 선수들을 가르칠 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할 입장이 못 될 것 같은 생각에 다시 도전 했어요. 그 때의 결정 덕분에 제가 98년 다시 국가대표로 돌아올 수 있게 됐죠”

- 2000년 현역은퇴를 하고 체육학 박사까지 받았다
“은퇴를 하고 나서 제대로 학교를 다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학부생일 때도 태릉선수촌 스케줄에 맞춰 다녔고,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도 그랬죠. 그래서 저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또 박사과정은 제가 지도자로서의 꿈과 교수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었기에 했어요”

- 선수 은퇴 후 세운 목표는
“솔직히 아직 결정을 못 내렸어요.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항상 대회가 있고, 그 대회를 위해서 달려가면 됐는데, 은퇴를 하고 보니 제가 무얼 해야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평소 새로운 일들은 자꾸 해보려고 하기에 지금 팀에서 지도자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 선수시절과 코치, 해설로 바라보는 느낌이 모두 다를 것 같다
“코치와 해설 모두 긴장되는 것은 똑같고 그 활 쏘는 순간마다 선수 때처럼 떨리는 느낌은 같아요. 하지만 대표팀 코치 때는 아무래도 성적에 대한 책임 때문에 뒤에서 해설을 하면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죠”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초등학교부터 선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시련, 아픔 등을 느꼈어요. 모든 운동선수들이 다 힘든 시기가 있겠죠. 그래서 혹여 자신에게 오는 시련이나 아픔이 있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버티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그런 고비에서 버텨냈기에 지금 ‘금메달리스트 이은경’으로 남아있지 않나 해요. 그래서 후배 선수들도 그 나이에 즐기고 싶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 유혹을 잘 이겨낸다면 분명 한 단계 큰 선수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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