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동성애에 관한 각종 기록들에 의하면 그의 동성애 대상자로 최대 5명 이상이 거론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던 그의 동생 모데스트와는 달리 차이콥스키는 그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여인 밀류코바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그녀와의 결혼 결정을 내리던 해에 동생에게 자신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는 편지를 한 통 씁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다. ... 나는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꼭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모데스트 너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우리 둘에게 우리의 기질들이 행복을 지향하는데 있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본성과 싸워야만 한다. ...내 용기가 부족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내 습관을 영원히 포기하고야 말 것이다. 너도 나의 이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 언젠가는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언젠가는 이 진실을 알고 가엾게 여겨 용서해 주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꼭 결혼하고야 말 것이다’

이 편지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의 가설이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차이콥스키가 만약 자신의 성적 취향이 드러났을 때 자신의 가족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결혼은 파국을 맞지만, 그는 후에 폰 메크 부인의 금전적인 지원과 그녀와의 플라토닉 러브를 통해 더욱 아름작운 걸작들을 내놓습니다.

차이콥스키 탄생 100주년인 1940년까지는 그의 동성애설로 인해 많은 공산주의 비평가들이 그의 음악과 작품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많은 음악가와 노동자들은 그의 음악에 환호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에서부터 말러와 시벨리우스까지 그리고 발레와 영화음악에도 영향을 끼치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사회주의 음악도 아니고 동성애 음악도 아닙니다. 물론 단순하거나 평범한 음악은 아니지만 항상 내면의 고통과 싸워야 했던 그의 인간성이 음악에서 드러나기에 더욱 솔직하고 동시에 그의 인간성만큼 흥미롭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이념과 편견에 자신을 가두지 않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차이콥스키가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음악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지원(문과대 심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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