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 아웃도어라이프의 화두는 ‘걷기’다. ‘지리산둘레길’과 ‘제주올레’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희미하던 길을 다시 찾거나 새로 스토리를 엮고 만들어 내며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켰다. 몇 해째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둘레길을 개발해서 소개하려는 움직임이 번져가고 있다.

그동안 정상을 향해 땀 흘리며, 숨 가쁘게 오르고 또 오르는 데만 익숙하던 등산문화가 최근에는 옆으로, 수평을 지향하며 ‘함께’, ‘도란도란’,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소통의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걷기가 국민적인 관심이자 대세가 되었다.

걷기란 무엇이고 사람들은 왜 걸으려고 할까? 인간이란 원래부터 걸어 다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걷기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다. 소 팔러 장에 갈 때, 이웃집에 마실을 갈때, 가마 타고 시집가던 옛날은 말할 것도 없고 근래까지도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모든 곳을 걸어서 갔고, 모든 관계를 걸어가서 맺고 풀며유지했다. 그런데 우리 환경이 산업화, 도시화되면서 걷는 자는 뛰는 자에게, 또 차로 달리는 자에게 뒤처지는 시대가 왔다. 자연스럽게 걷지 않고 쏜살같이 달리고 날아서 이동하는,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문화가 우리를 지배하게 됐다.

그렇게 오랫동안 걸으려는 생각을 잊은채 살던 이들이 고향을 찾듯이, 추억을 더듬듯이 걷기 위해 길을 나서고 있다. 물론건강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 느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도 돌아보는 여유도 부리고 싶었을 게다. 여러 이유로 걷기는 ‘나를 비움’이자 ‘너에게 길손이 되는 근사한 여행’으로 우리 삶에 정착해 가고 있다.
‘북한산둘레길’은 모두 70km쯤 되는 코스로 가끔 도심과 도로, 농원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지막한 산길이 주를 이루고 그 사이에 산성과 절, 유적지를 에두르며 구절양장으로 뻗어간다. 높은 봉우리와 능선에 올라 천하를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험상궂은 바위가 아닌 푹신푹신한 낙엽과 정겨운 흙길이 솔숲 따라, 밭길 따라, 마을길 따라 이어진다. 북한산 둘레길의 최대 장점은 접근성이 좋고 탈출은 더 쉽다는 것이다. 대부분 30분 거리 안에 탈출로와 접근로를 만난다. 또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정표와 구간 상세도가 잘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길잃을 염려가 없다. 13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짬나는 대로 끊어가기도 좋다. 여유로울 때는 몇 구간을 이어 가고 중간에 갑자기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곳에서 내려서면 된다.

그래서 누구나 ‘훌쩍’ 떠날 수 있는 게 북한산 둘레길이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보면 어머니와 딸이, 아버지와 그의 늙은 아버지가 손 잡아주고 물을 건네며 환한 웃음으로 함께 걷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선생과 제자가, 멀리 떨어져 지내던 친구가, 부부와 아이들이, 그리고 험하고 멀던 북한산과 북적이던 서울 도심이 소통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을 걷노라면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당신에게 근사한 하루를 선물할 것이다.

이승태 월간 <사람과 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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