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회의 초창기에는 번역 작품을 주로 무대에 올렸다. 당시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주로 대학생이 번역을 해서 외국 유명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곤 했다.
1970~80년대 대학가 연극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시대정신이었다. 예술로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것이 최종지향점이던 시대, 극예술연구회(고대극회)는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최대 전성기를 누렸다. 시대와 가장 첨예하게 맞물린 극회에서는 목적의식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공동창작작품이 유행이었으며 이를 마당극, 창극 형식으로 풀어냈다.

원종수(국어국문학과 84학번) 씨는 “그 시절 연극에 관심있던 학생들은 모두 민족극대본선을 읽었다”고 말했다. 민족극대본선이란 민중 연극을 모아 엮은 책으로 1980년대 연행예술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1980년대 연행예술운동은 1970년대 지식인 중심의 문화운동을 넘어, 민중과 공동체의식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이다.

특히 고대극회가 1984년 11월 김지하의 장편 풍자시 <분씨 물어>를 재구성해 공연한 <똥>은 당시 학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원종수 씨는 “정통극의 메시지로는 암울한 80년대를 치료할 힘이 없었다”며 “예술과 현실의 접점에서 연극을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연극이 지나치게 사회문제와 결부돼 예술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1990년대부터 예술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기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 전통극을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연극을 도입하기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기존의 작품을 공연하더라도 극 중간에 탈춤과 왈츠를 삽입한다든지 무대에 관객을 직접 참여시키는 등의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였다.

창작극에 있어서도 정치적 성향에서 벗어나 요즘 세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연극의 목적도 사회의식보다는 참여하는 개인의 만족도에 더욱 중점을 맞추게 됐다. 최원철(화학생명공학과 03학번) 씨는 “운동권 참여의 목적보다 개인적으로 연극을 좋아해서 극회에 들어온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극이 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고대극회가 2005년 공연한 브레히트의 <사천의 착한 사람>은 인촌기념관에서 이틀 동안 2000명의 학생들이 찾아와 성황리에 무대에 올려졌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 이용당하며, 선하게 살 수 없게 만드는 1920년대 중국 사천의 현실은 현재도 공감하는 사회 문제다. 이승호(공과대 전전전03) 씨는 “예전보다 연극이 사회와 멀어졌다고 하지만 연극은 현실과 맞물려가는 것”이라며 “한 발자국 물러선 채 여전히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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