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학생은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술을 접한다. 친목과 소통의 매개체로 사용되는 술이지만, 누구에게나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는 네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사발식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셔본 성시원(가명, 여‧22세) 씨. 1회용 국그릇에 막걸리를 한 잔 마신 뒤의 기억이 없다. 그 때 술에 몹시 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원 씨는 올해 3학년이지만 대학 내에서 가깝게 지내는 선후배는 별로 없다. 술자리를 피하느라 과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술을 권해서 ‘저 진짜 술 못 마셔요’라고 했더니 ‘그럼 너만 마시지마’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가시가 느껴졌어요. 정색하던 선배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어떤 선배는 ‘술 못 마시는 사람 싫다’라고 대놓고 얘기를 했어요. 다른 테이블에서 한 얘기였지만 그게 제 얘기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술을 마실 수도 안 마실 수도 없는 상황들이 계속되자 그녀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술이 없는 자리에서도 선배들이 불편해서 눈치를 보게 됐다. 이후 시원 씨는 과 행사에 나가지 않았다. “친한 선배도 없고 동기들도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워요”
▲ 사진 | 김연광 기자 kyk@


안지원(가명, 남‧21세) 씨는 사발식을 하고 10번 가까이 구토를 한 뒤, 그는 1학년 1학기 내내 술자리를 피했다. 그러다보니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나 다른 친구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어 동기들과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지원 씨는 2학기부터 다시 동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동기들은 지원 씨를 많이 챙겨줬지만 선배들과의 술자리는 힘겨웠다. 선배들과 함께 있으면 술을 권유받지 않아도 항상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2학년이 된 지원 씨는 신입생에게 절대 술을 권하지 않는다.

“저는 소주 한 잔을 나눠 마셔서 항상 잔에 술이 남아 있어요. 선배가 소주병을 들면 술이 남아 있는 술잔을 내밀 수는 없어서 참고 마시죠. 가벼운 행동이지만 병을 드는 그 모습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지원 씨는 1년 동안 터득한 몇 가지 술자리 노하우를 알려줬다. 테이블 자주 이동하기, 빈 잔으로 잔 바꾸기, 화장실 자주 가기와 같은 방법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채기 전에 자리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지원 씨는 술자리에서 가장 빨리 귀가하는 사람이다.

김성우(가명, 남∙22세) 씨는 벌칙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술게임을 한다.
간에 문제가 생겨 술을 마실 수 없는 성우 씨가 걸리면 한껏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술게임을 자주 했던 1학년 때는 혼자서 술게임을 연습하기도 했다. 이미지 게임처럼 연습해서 되지 않는 게임을 할 때는 화장실에 간다며 슬쩍 빠졌다.

정지윤(가명, 여‧21세) 씨는 술자리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앞에 놓인 소주잔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엎어놓는다. 2년 여간 대학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비음주의 표현이다.
“왜 술 안 마셔?”
지윤 씨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하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음주 문화를 접하면서 지윤 씨가 가장 싫어하게 된 말이기도 하다. 단순한 호기심의 표현일 때도 있고, 가시 돋친 비꼬는 표현일 때도 있다. “왜 술을 마시냐고 물어보지 않듯이 왜 술을 안 마시는지 묻지 않으면 좋겠어요. 마치 ‘네 이유는 타당하니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좋아’라고 허락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지윤 씨에게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그녀는 신체적∙종교적 이유가 아닌 자신의 의사로 비음주를 선택했다. 그녀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부모는 술 때문에 자주 갈등을 빚었고, 무엇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술에 의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음주가 현실도피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개인적인 얘기를 아무한테나 구구절절 늘어놓을 수는 없잖아요. 제 선택에 대해서 이유를 꼭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할 필요도 없구요”

술자리를 피한 한 학기 동안 지원 씨는 술을 마시지 않는 단체를 찾아봤다. 그러나 막상 찾아보니 술을 마시지 않는 단체는 대부분이 종교 단체들이었다. 그렇다고 관심에 없는 종교 동아리에 들 수도 없어 결국 술 없는 단체를 찾는 일은 포기해야 했다.

대한민국에 술이 빠지지 않는 곳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술에 대한 부담감 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로 고등학교 친구들을 이야기했다. 술이 없었을 때 시작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시원 씨는 “술을 마셔야 친해진다고 하지만 술이 없어도 충분히 친해진다는 걸 어릴 때부터 경험해왔잖아요”라고 말했다. 성우 씨는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술을 마시는 MT보다는 관광이 목적인 여행을 다닌다. 술 없는 미팅도 한 번이지만 해봤다. “카페에서 만나 옛날 미팅처럼 파트너도 정해 롯데월드도 다녀왔어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지원 씨와 시원 씨는 입을 모아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분위기 망친다’, ‘뺀다’ 이렇게 얘기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믿어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음치, 몸치, 박치가 있듯이 ‘술치’도 있어요. 그렇게 편하게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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