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보는 한국문학
그동안 한국문학은 세계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고은 시인의 작품이 번역 문제에 부딪혀 수차례 노벨문학상 수상실패의 고배를 마시는 동안, 한국문학은 세계시장의 관심 밖에서 정체돼 있었다. 그러나 김영하, 조경란, 신경숙과 같은 작가들이 해외 저명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고 현지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국문학은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고 있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외국인들은 어떻게 한국문학을 인식하고 있을까. 본교 외국인 교수와 학생에게 한국문학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아픈 역사에서 우러나온 독특한 콘텐츠
유럽에서 읽히는 한국문학은 주로 역사소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식민지, 한국전쟁, 그로 인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의 소설들은 이미 유럽 문학시장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기욤 교수는 “문학을 통해 그 나라 고유의 문화를 접할 수 있다”며 “일본, 중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에는 그 나라만의 특징이 들어있는 작품이 다수 포함돼있다”고 말했다.

역사 소재의 문학은 스페인에서도 인기를 끄는 장르다. 미구엘 마틴(Miguel G. Martin, 문과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인상깊은 작품으로 한국어를 배울 당시 읽었던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꼽았다. 미구엘 교수는 “한국전쟁 때 서울에 남겨진 여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사상을 바꾸는 모습에서 한국의 슬픈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담긴 소설을 접하며 전반적인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도 있다. 아론 밀러(Aaron R. Miller, 국제어학원 한국어플래그십) 씨는 “독재정치를 비판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다”며 “다른 한국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자전적인 소재와 미묘한 표현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문학의 장르에는 자전적 소설도 포함된다. 1946년 출판돼 한국인 작가로는 최초로 독일문단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미륵의 <압록강을 흐른다>, 작년 4월 미국에서 출판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저자의 삶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미구엘 교수는 “재미 위주의 소설이 많은 스페인과 달리 한국 소설에는 저자의 깊은 생각이 담겨 있다”며 “자전적 소설은 한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읽고 공감하기 쉽다”고 말했다.

한국어 묘미를 살린 한국문학만의 문체적 특성도 있다. 미구엘 교수는 “같은 표현이라도 더 세밀하고 다양하게 할 수 있어 미묘한 언어표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어가 생략돼 문맥을 통해 추리해야만 알 수 있는 애매모호한 문장도 많다. 기욤 교수는 “작가들이 일부러 소설의 재미를 위해 독자가 추리하도록 빼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재 면에서도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것과 북한이 등장하는 소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외국인들의 흥미를 끌었다. 외국인에겐 더욱 미지의 나라인 북한의 이야기는 한국 문학을 통해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외국인에게 아직 인지도 낮아
해외에서 충분히 어필할 매력이 있는 한국 문학이지만 인지도 측면에서는 갈 길이 멀다. 한국문화번역원 등에서 세계 각지로 출판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출판시장에서 극히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출판됐다고 하더라도 한국문학 대부분이 학교나 공공기관의 출판사를 통하기에 책이 출판되더라도 보편화됐다고 보기 어렵다. 크리스틴 파렌(Kristen Parren, 경영대 경영12) 씨는 “한국문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며 “주변 네덜란드 친구들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미구엘 교수는 “한국문학을 읽는 독자층은 이미 한국문화를 다 알거나 깊은 관심을 갖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문학보다 사회과학 도서가 더 유명한 경우도 있다. 크리스토퍼 오더마트(Christopher Odermatt, 대학원·경제학과) 씨는 “한국문학은 들어본 적 없지만,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은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한국어 전공하는 외국인력 필요
한국문학이 보다 원활한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번역문제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해외번역서들은 보통 국내의 전문번역가가 책을 번역한다. 한국문학은 반대로 한국 번역가가 외국어로 번역을 하고 원어민이 잘못된 표현과 오탈자를 잡아내는 과정으로 번역작업이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에서 비롯한 내용상, 의미상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체도 제대로 살리기 어려워 원문과 다른 번역이 이뤄지기도 한다. 기욤 교수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한국어로 읽을 때는 작가로서 삶의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었지만, 영어로 읽었을 때는 그런 부분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번역문제 해결을 위해선 한국문학을 수요하는 국가에 번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유럽 대학은 한국어 전공자는 일본어, 중국어 전공자의 2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미구엘 교수는 “석·박사 과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수준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한국어 교육기관을 확충해 번역가들을 양산하면 우수한 번역 작품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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