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과 지역의 관계 맺기

대학 교육이 어디에서 처음 시작하였느냐는 질문은 대학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에서 출발할 것이다. 많은 근대적 의미의 학문들이 서구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뒤, 전세계로 이식된 것처럼 여러 학문들을 함께 교육하는 ‘근대적 대학’은 유럽에서 12세기경에 시작되었고, 이후 여러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이 시기의 대학은 오늘날처럼 캠퍼스를 형태를 갖지 않았고,  배우려는 학생들이 교사와 기숙사를 먼저 구비한 후, 교수를 모셔왔다고 한다. 즉, 도시내에 물리적 시설을 마련한 후,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므로, 대학과 동네가 구별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이후, 여러 형태의 진화를 거듭했던 서구의 대학들은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물리적 유형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단일 캠퍼스 유형, 분교형태로 분리되어 있는 유형부터 단과대별로 분리되어 있거나 딱히 캠퍼스라고 할 만한 곳이 없는 경우까지 그 유형이 아주 다양하다. 서구의 많은 대학들은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건물의 합이 대학이 되고, 대학과 주민들이 사는 동네가 엉켜있는 곳도 많다. 즉, 대학과 대학이 위치한 주변 지역과의 경계가 느슨하여 그만큼 대학과 지역의 관계 맺기가 수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구형 대학’이 이식되어 건립·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개항기 이후, 19세기 중엽부터로 선교사들 및 국내 선각자들에 의해서였다. 따라서, 당시 설립된  대부분의 대학들은 사립이었고  재원의 한계로 인하여 단일 교사 또는 개별 건물 안에 입주한 형태를 가지고 교육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물리적 여건만 보면, 우리네 대학들의 시작 역시 서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출발했던 우리의 대학은 광복과 6.25 전쟁, 그리고 근대화과정을 겪으면서 달라졌다. 우리는 대학하면 수십만 평의 넓은 부지와 그 부지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 캠퍼스에 들어앉은 거대한 건물군 등을 떠올린다. 대학들의 입지 역시 도시 내보다는 교외에 위치하고 있거나 도시 내에 있더라도 주변과는 이질적인 분위기와 경관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과 대학의 관계 맺기는 처음부터 시도되지 않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대학가 주변은 일종의 경계지역과 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학을 지역의 발전에 활용하는 데, 무관심했다. 대학도 지역의 발전에 기여해야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고, 지역 역시 대학을 지역 발전의 매개로 활용해야한다는 것에 큰 이해를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동안 대학과 지역은 서로의 도움 없이도 성장이 가능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간혹, 대학내에 산학협력센터를 세워서 지역 관련 연구를 하고 제품을 생산하거나, 대학의 평생교육센터를 주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었으나, 이러한 사례가 지역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제 전국적으로 도시 재생이 화두가 된 지 오래이다. 지역에 뿌리내려온, 뿌리를 내려야 하는 대학은 젊은 인구를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고, 지역의 싱크탱크로 작용할 수 있는 기관이다. 아울러, 지역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지역 발전의 촉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갖고 있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도시 재생에 지역내의 대학을 적극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타진해 보고자 한다.     

2. 대학 및 대학가의 현황과 당면 문제

현재 전국의 대학은 2011년 기준으로 347개교가 대학교육협의회 및 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등록되어 있는 데, 대학교는 202개교이며, 전문대학은 145개이다. 이들 대학교를 지역과 관계 맺기에 따라 유형화 하면 표1과 같은 데, 많은 대학들이 독립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347개 대학 및 대학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보면, 대학 내적인 공간 문제와 대학 외적인 문제로서 대학과 대학 주변과의 문제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대학 내적인 공간 문제인 데, 대체로 대도시내에 입지한 대학들은 캠퍼스 내부의 개발가용 면적이 부족하다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캠퍼스내 개발가용 면적의 부족 문제는 이미 2000년 전후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러 대학들이 지하공간을 활용하거나, 캠퍼스 인근 부지를 매입하여 캠퍼스 확장을 시도하는 등의 방식을 시도한 바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2007년 회계 기준으로 전체 교육비 중, 건물 신축 및 토지 취득비에 해당하는 '자본적 경비' 비율 명목으로 OECD 국가 평균의 약 2배에 가까운 17.4%를 지출했다. 이는 전체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나 당장 대학 입학정원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 외국인 학생수의 꾸준한 증가, 국제적 경쟁력 강화 및 대학의 사회적 봉사·연구 기능 확대에 따른 추가면적 확보 필요성 증가, 부족한 기숙시설로 인한 기숙시설 확보의 필요성 증대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러한 국내 대학들의 ‘자본적 경비’에 대한 고지출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사료되는 데, 이러한 경비 지출은 대학내 가용 토지의 부족과 맞물려 많은 문제를 도출하고 있다.

다음으로 대학과 대학 주변과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국내의 대학가 주변지역은 일종의 경계지역과 같이 인식되어지고 있다. 일단, 서두에서 밝힌바와 같이 대학 자체의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으며, 점차 대학들이 캠퍼스 내 안전문제를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로 인한 대학과 주변지역과의 교류는 사실상 상업기능 외에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캠퍼스 주변 지역은 여타 다른 지역의 재개발과는 달리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생들에게 받는 월세로 살아가는 주민, 학생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상인, 학교 주변의 경관 훼손을 원치 않는 학교, 자신의 임시거주지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 학생 등 보다 다양한 집단들의 이익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캠퍼스 주변은 상대적으로 그것이 담당하고 있는 활기찬 기능에 비해 노후도가 높고 기반시설이 불량한 경우가 많으며, 지가 역시 낮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러한 복잡한 갈등 양상이 여실히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대 정문 앞 제기5구역 재개발 사업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캠퍼스타운 활용에 있어서의 문제점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도록 하고자 한다.

3. 문제 해결을 위한 작은 시도: 고려대 정문 앞 제기5구역 사례

동대문구 제기2동 136번지 일대는 왕복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고려대학교와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일명 막걸리촌으로도 유명하며, 오랜 시간 고려대학교 학생들에게 식사와 오락, 하숙, 원룸등 주거 기능 등을 제공해오며 지금에 이른 곳이기도 하다. 옛 골목과 한옥, 노후 저층주거지 등 과거 모습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는 곳인 데,  이곳이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05년 즈음으로 제기 제5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지정을 놓고 찬반 논쟁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 그 이유였다.

이 곳을 아파트 위주로 재개발하자는 계획안을 놓고 학생, 상인, 주민(월세방, 하숙을 운영하는 주민 포함), 학교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찬반논쟁을 하게 되었다. 제기5구역 추진위는 지난 2003년 6월부터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2004년 7월, 관할 동대문구청으로부터 추진위 인가를 받았다. 당시 동의율은 토지 등 소유자 411명 가운데 208명의 찬성으로 50%를 간신히 넘긴 수준이었으며, 지난 2005년 1월 변경 승인 당시 동의율도 전체 384명 가운데 200명 찬성으로 동의율은 52%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개발 구역지정을 위해서 해당 사업이 수면위로 부상하자 이에 대한 찬성·반대 위원회가 대상지에 개별적으로 설치되었다. 또한 사업에 대한 고려대학교 교수들과 학생회, 교우회 등의 반대성명 발표 등이 줄을 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찬·반 대립은 점차 격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문·휘경 뉴타운 지정으로 인하여, 인근 경희대·외대 학생들의 하숙, 원룸등 학생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문제가 이슈화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학생과 학교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역지정은 연기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여러 인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대학과 지자체(서울시, 성북구) 측에서는 새로운 계획안 제시, 인센티브 방안 강구, 대학의 부지 매입검토 등의 다양한 해결책을 주민측에 제시했고, 6여년 간의 의견조사 및 조율, 각 주체의 양보와 협상 끝에 결국 2011년 4월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안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로써 제기5구역은 ‘아파트’와 ‘대학기숙사’가 공존하는 새로운 개념의 정비사업 모델인 ‘캠퍼스타운’으로 조성될 수 있는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9~27층의 아파트 10개동으로 총 800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며, 이중 90여 가구는 1~2인 거주공간으로 도시형생활주택(46가구)으로, 학생 하숙등을 감안한 부분임대(47가구)로 계획했다. 또, 구역 내에 마련된 약 4,500 여㎡의 기숙사 부지는 고려대학교에서 매입하여 6층 규모의 기숙사를 건립할 계획으로, 600 여명(286실)의 학생 수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학생들은 학교 주변의 문화를 지킬 수 있고, 하숙, 원룸등 학생 주택의 가격 상승을 저지할 수 있었으며, 주민들 입장에서 볼때도, 그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여러 종류의 상점과 하숙 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번에 도출된 안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각종 인허가와 시공을 하기 전까지 여러 단계의 합의와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으나, 이러한 안의 도출은 그동안과는 다른 새로운 재개발 유형으로 대학을 도시 재생의 매개로 활용하였다는 데에 큰 의미를 갖는다.    

제기5구역 사례는 대학 인근의 캠퍼스타운 조성형 도시재정비 방식으로서 비교적 관련 주체들의 주장을 잘 조율한 결과물이다. 특히, 국내에서 시도된 최초의 사례이며, 인센티브 등을 통한 주민의 이익과 학교·학생의 요구사항, 주변 상인과 하숙집 주인들의 이익이 충분히 고려되고 계획안에 반영되었다는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할 것이다. 다만, 제기5구역은 캠퍼스타운으로서 갖추어야할 여러 물리적인 시설물중에서 기숙사 정도만을 확보했을 뿐 장기적인 시각에서 학교와 지역사회와의 연계 프로그램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것은 향후 추진 과정에서 보완해야할  과제로 남는다. 이러한 개발을 더욱 진작하기 위하여 앞으로 지자체와 대학이 함께 다양한 노력을 해야할 것으로 사료된다. 

4. 결론

대학을 활용한 도시 재생 방식은 향후 다양하게 여러 지자체에서 각자 상황에 맞게 진행될 것으로 사료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이 갖는 장점을 활용하여 주변 지역의 재활성화를 시도하고, 재개발 사업에서 학생 및 소규모 가구에 대한 배려를 하고, 이로 말미암아 대학 인근 지역의 문화가 계승되고 활성화되게 하는 시도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다양한 전문가 및 실무자 등에 의해서 이 새로운 유형의 재정비 방식에 대한 고민과 이슈 생산, 실제 적용에서의 고민 등이 풍부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이 새로운 방식이 우리 도시를 관리하는 훌륭한 재정비 유형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김세용 공과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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