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동아시아 국가의 정신적 뿌리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한 때 유교는 서구 문명의 유입과 함께 신지식인들 사이에서 혹독하게 비판받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유교는 호오(好惡)의 대상이기 이전에 그 실체조차 불분명하다. 공자의 말씀이 좋은 것은 알아도 그것이 생활이었음은 알기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 유교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본교 이승환(문과대 철학과) 교수를 만나 근대 이후의 유교 담론을 물어봤다.

- 동양의 근대화 과정에서 유교관은 어떻게 인식됐나
“일반적으로 전근대적 유산으로, 근대화의 장애로 인식됐다. 서구의 과학기술이 준 충격 속에서 동양에도 과학화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비단 유교뿐 아니라 동양사상 전반을 비합리적·미신적이라고 보는 시선이 늘어났다. 조선의 쇄국 과정에서 유교가 망국의 원인으로까지 지적 받았던 게 사실이다”

- 당시 서구의 유교관은 어땠나
“서구의 동양관, 즉 오리엔탈리즘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는 결핍된 것에 대한 동경, 둘째는 상대방을 지배·정복하고자 하는 권력욕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근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서구는 동양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전제군주제에 한계를 느낀 지식인들은 자신들에게 결핍된 부분을 유가의 계몽적 군주 모델에서 찾았다. 덕스러운 군주를 배워야 한다는 의식이었다. 볼테르(Voltaire)는 공자의 초상을 집에 걸어두고 숭배하기도 했다. 반면 근대화를 성취하고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는 동양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상품을 판매할 시장과 생산을 위한 자원 공급의 필요성에 직면한 서구는 동양으로 눈을 돌렸다. 제국주의 서구의 관점에서 동양은 신분제 등 예속관계가 존속하는 전근대·야만적 문명이었다”

- 현재 유교 담론이 찾고자하는 의미는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수용하며 근대화를 성취했다. 하지만 이제 역으로 근대성의 폐해가 나타났다. 사회제도·법제도는 갖춰졌지만 운영주체인 사람의 덕성 문제가 일고 있다. 검찰이 뇌물을 받고 부정부패 방지법이 도리어 주체에 의해 악용되기도 한다. 이젠 근대화를 점검할 시점이다. 전통 유학이 얘기해온 덕스러운 사람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서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등 고대 철학자의 ‘덕성윤리학(Virtue ethics)’이 부활하고 있다.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잊혀진 덕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인격 개개인의 덕이 다시 중시되는 전환점에 도달했다” 

- 서구에서 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배경은
“근대 후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었다. 서구 사유의 도구적 이성은 효율성, 계산가능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효율성은 자연파괴와 자원고갈을, 계산가능성은 물신 숭배의 풍조를 초래했다. 또 인간관계를 투쟁하는 개인들의 관계로 파악해 삭막한 개인주의를 불러왔다. 이에 물질적 가치 말고도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의미의 영역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원자적 개인에서 벗어나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구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다시 동양에 투영했다. 후기 근대적 해석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로저 에임스(Roger Ames)’는 서구가 유학의 사유방식을 재해석해 수용하길 권고했다”

- 서구적 해석틀을 유교에 적용하는 시도를 어떻게 보나
“때론 동양철학자들이 서구의 사유틀로 해석된 동양철학을 역수입하기도 한다. 여기엔 분명 긍정적 측면이 있다. 열린 시각과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이다.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알게 되듯 타인의 시각을 통해 참신한 관점에서 나를 알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서구인들의 유교 재해석은 그들의 수요에 맞춘 것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수요가 있다. 때문에 연구의 주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시대 상황이 필요로 하는 전통 사상의 가치는 무엇인가’하는 부분을 선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 유교적 가치의 계승에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학벌주의, 학력주의, 지역주의, 연고주의, 가족이기주의 등 유교적 구습은 한국 사회에서 비명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통 유학이라고 지역주의, 연고주의, 가족이기주의를 권한 것은 아니다. 유교에는 ‘서(恕)’라는 개념이 있다. 같은 마음으로 타인을 대우하는 것이다. 이는 서양 철학의 ‘보편화가능성(universalizability)’에 필적하는 개념이다. 지역, 연고주의 등을 넘어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윤리적 원칙이 담겨있다.

또 성리학에는 ‘공(公)’의 이상이 있다. 정의롭고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세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들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을 받아들이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서 보면 정치지도자 뿐 아니라 고위공직자, 심지어 법조인들마저 사적 세계에 매몰돼 전통유학에서 그토록 강조해온 ‘공’의 이상을 도외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가 유교전통으로부터 계승하고 발휘해야할 긍정적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 한국 고유의 유교적 가치란게 있을까
“중국유학이나 조선유학이나 가치 지향점은 ‘인(仁)’으로 동일하다. 다만 기능적·효용적 부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중국과 달리 조선의 유학은 절대 군권을 견제하고 도의(道義) 정치를 구현하는데 있어 더 강한 열정과 지향을 보여줬다. 중국은 황제 일인이 사실상 견제세력 없이 권력을 독점했다. 하지만 조선에는 사림(士林) 또는 산림(山林)이라 불리는 지식인 선비계층이 끊임없이 절대권력의 탈주를 견제하고 도의에 입각한 정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 오늘날 유교 연구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우선 현실에 대한 민감성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현대사회의 한계를 교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긍정적 가치, 적극적인 측면에 대한 재조명과 재해석이 필요하다.

또 언어에 대한 민감성이 요구된다. 조선 성리학의 핵심개념들은 모두가 1음절 낱글자다. 리(理), 기(氣), 심(心), 성(性)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개념에는 각기 최소 10여 개에서 수십개에 이르는 의미가 중층적으로 내포돼있다. 이런 의미의 층위가 명료하게 분간되지 않으면 성리학의 주장을 선명히 이해하기 어렵다. 1음절 낱글자들은 현대인들이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번역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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