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는 눈물을 참으며 후보직을 사퇴했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울분을 토하며 그를 보내지 않았다. 특히 그의 가장 두터운 지지층인 20대에게서 이 현상은 도드라졌다. 한 20대 남성은 안철수 후보를 데려오라며 옥상에서 투신 소동을 벌였고, 20대 여성은 안철수 후보의 사퇴 번복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무엇이 20대가 이토록 안철수 후보에게 열광토록 했을까. 그것은 안철수 후보의 소통력(疏通力)에 있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안철수 후보는 20대와 직접 마주해 그들을 공감하고 소통하려 했다. 20대가 원하는 것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실제적 변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20대에게 안철수는 뭔가 다르다는 무조건 지지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냈다.

이 현상은 지금의 20대가 어느 세대보다 소통을 원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나는 지난 2년 동안 20대와 가장 소통을 많이 해야 할 대학신문 기자로서 그들과 소통을 제대로 했을까. 학생들의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그들과 소통할 만한 기사를 쓰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독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고대신문을 애독하는 지인은 “고대신문은 학생들은 별 문제라고 생각지도 않은 사안을 마치 많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다”며 “반대로 학생들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침묵해 공감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고대신문 기자로서 20대와 소통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내가 현직기자로 고대신문에 게재하는 마지막 칼럼이다. 나는 이제 학생기자에서 일반 독자로 돌아가야 할 때다. 지금 식으로 답습(踏襲)한다면 고대신문 독자는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제는 20대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과 소통해야 할 때다. 20대를 가장 잘 이해하고 대변해 그들을 무조건적 지지자로 만들 고대신문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