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관 5층의 이른바 ‘수배자 방’에 거주하던 제 42대 안암총학생회장 정태호(정경대 행정05) 씨가 2월 21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으면서 공간이 비었다. 그동안 학내에선 수배자 방의 존폐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학생회관의 공간관리를 담당하는 동아리연합회(회장=홍해린)는 새로운 이용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해당 공간을 빈 상태로 유지할 계획이다. 본교 수배자 방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수배자 방’은 1998년 12월 학생운동 중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수배자가 된 학생들의 은신처로 이용되면서 탄생했다. 제 28대 안암총학생회장을 지낸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정태흥(법학과 91학번) 위원장은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수배자 방이 생겼다”며 “전직 총학생회장을 예우하던 차원의 방으로 총학생회가 관리했다”고 말했다. 2011년 반값 등록금 요구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던 제 44대 안암총학생회장 조우리(공과대 건축환경06) 씨는 “과거에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자가 된 학생들을 위한 생활방이 있는 대학이 많았다”고 말했다.

학생회관 5층에 위치한 수배자 방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초기의 수배자 방은 개인이 이용하기보다 여러 명의 은신처에 가까웠다. 1997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돼 한총련 대의원은 자동적으로 수배자가 됐다. 임광순(한국사학과 02학번) 씨는 “2000년대 초까지는 대부분의 단과대 회장들이 한총련 대의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2년 비(非) 한총련 계열의 총학생회 ‘최초를 꿈꾸는 사람들’이 당선되면서 자연스레 학생회가 한총련과 멀어졌고, 단과대 회장이 수배자가 되는 경우도 줄었다. 2002년 이후로는 제 36대 안암총학생회장 박재익(산업경영공학부 98학번) 씨, 제 38대 안암총학생회장 유병문(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 02학번) 씨와 정태호 씨 등이 수배자 방을 이용했다.

그동안 수배자 방에 대한 학교 구성원의 인식도 변했다. 그 존재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학생운동의 노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수배자’라는 단어를 낯설어하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선 ‘동아리 자치 공간도 부족한데 수배자 방을 꼭 빈 상태로 남겨두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제 44대 안암부총학생회장 유지영(정경대 정외06) 씨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과 자치공간의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학생 모두 학생사회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라며 “수배자 방이 원래의 목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자치 공간 부족과 상충되는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수배자 방의 의미에 대해 정 위원장 역시 “기성세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학생들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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