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프로농구 선수가 길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흡연을 하는 중학생들을 훈계했다가 오히려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는 기사를 봤다. 프로농구 선수라는 ‘공인’이 바른 소리와 꿀밤으로 중학생들을 훈계한 것이 청소년을 폭력한 행위로 보여져 인터넷 상에서는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잠깐의 논란은 ‘잘했다’라는 반응과 함께 비판의 목소리는 도리어 어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한 중학생들과 그의 부모들에게 돌아갔다.

  대학생인 우리도 언제부턴가 쓴 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대학교에 와서 성적이 낮다고 나무라는 교수님도 없고, 밤새도록 방에서 게임을 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속해있는 수험생 멘토링 동아리에서도 나는 고등학생들에게 멘토로 불리지만 정작 쓴 소리에 익숙하지 못하다. 학생들이 때로는 스스로 공부에 동기부여가 안된다며 충고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때로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소리마저 영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지난주 있었던 스승의 날 때는 학창시절 유독 나에게 쓴 소리를 많이 해주셨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약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그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오히려 이제는 ‘힐링’이라는 명분으로 유명인사의 강연회만 성황인 세태를 보며 세상의 어른들도 쓴 소리를 피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어른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중학생들과 우리는 딱히 다를 것이 없다. 우리도 수업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들으라는 말을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1년에 하루, 스승의 날에만 쓴 소리를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 쓴 소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다. 다이어리에 다짐만 적어놓는 나도, 밤새도록 게임만 하는 룸메이트도, 그리고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쓴 소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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