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네요. 벌써 며칠째 인지,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어요. 책을 들여다보다 잠깐 쉴 겸 휴게실에서 100원짜리 커피 한 잔 뽑아 들었죠. 후후 불며 마시고 있으려니 그대도 지루한지 열람실에서 나와 있네요. 아까 내가 뽑았던 바로 그 자판기에 그대도 서 있네요.

그대를 처음 본 건 언제였을까 하고 기억을 되살려 봤어요. 아마도 6개월쯤 전이련가. 내가 제대하고 열람실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그 때, 그대는 열람실 구석 책상 한켠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 때 그대가 보고 있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네요. 토익책이었을까 법전이었을까 두꺼운 회계학 책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전공 책이었을까.

매일 매일 열람실에 갈 때마다, 그대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죠. 그대가 펴 놓은 책도, 포스트잇이 붙어 있던 독서대도, 별자리가 박혀 있는 예쁜 헝겊 필통도 항상 그대로였어요. 아, 그대의 가방도 생각나는군요. 약간 큰 녹색 가방이었어요.

그렇게 한 학기동안 그대는 열람실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난 그대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었어요. 어느 날인가부터 난 그대가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면 그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혹시라도 그대 모습 늘 앉아 있던 자리에서 보이지 않으면, 내심 걱정이 됐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어디 아픈 건 아닐까. 하지만 그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면, 매우 기뻤어요. 그대 잘 살고 있구나, 건강하게 지내고 있구나 하고요.

하루는 그대 수업에 들어가는지 자리를 비운 사이 난 재빨리 지하 편의점에 내려가 과일 요구르트를 한 병 샀어요. 그리고 누가 볼세라 살며시 그대 책상에 요구르트를 놓고 왔지요. 수업에서 돌아온 그대, 요구르트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냥 책상에 내려놓더군요. 혹 주인을 잘못 찾은 요구르트가 아닌가 하고. 아, 뭔가 메시지를 남겨 놓아야 겠구나.

다음날에는 시원한 녹차 캔을 하나 사 들고 그대 자리로 갔어요, 곱게 접은 쪽지 하나와 함께. “공부 열심히 하세요^^ ” 자리로 돌아온 그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쪽지를 읽는 모습이 보였어요. 내 마음도 더불어 설레었답니다.

어제는 점심을 먹고 졸린 눈을 치켜들며 책에 시선을 집중하려 했어요. 하지만 잘 안되더군요. 고개를 들어 그대를 쳐다보니 그대도 피곤했던지 책상에 엎드려 곤히 자고 있었어요. 혹 그대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심했는데 그 시간만큼은 그대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네요. 엎드려서 오래 자면 얼굴에 자욱이 남는데...

아, 이제 그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나도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 겠어요.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공부하는 성실한 그대 모습에 미소 지으며. <인터넷 독자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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