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전 국가대표 감독이 선수와 훈련 중 소통을 할 때에는 ‘통역직원’이 존재했다. 진주 태생인 조 전 감독은 억양 센 사투리를 구사해 그의 말을 서울말로 선수에게 전달할 직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경기 중 조 전 감독의 지시는 윤빛가람, 정성룡 등 경상도 출신 선수가 도맡았다. 그런데 앞으로 대학리그에서 조광래 전 감독의 지시를 통역해 줄 선수는 더 이상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지방 고교 출신 선수의 서울 소재 대학 운동부 입학률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서울행 티켓
  서울권 고교에 체대 입시생이 몰리는 원인 중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해온 체육특기생이 지역 중·고등학교 대신 서울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다.
지역 변경에는 △상위 대학팀 진학 △향후 인맥구축 △경기 환경 등의 ‘선택적’인 이유도 있지만, 출신 지역 상급 학교에 해당 종목 팀이 없어 서울로 연고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비인기 종목 선수일수록 심화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농구다. 대학리그에는 관중의 관심도가 높지만 중·고교 농구리그는 축구·야구에 비해 인기가 떨어진다. 초등학교 팀의 경우 전국적으로 33개 팀이 대한농구협회에 등록됐지만 지역별로 비교하면 서울에만 6개 팀이 몰려 있고, 다른 시·도는 평균 2개 팀에 그쳤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이 같은 현상은 심화된다. 중학부 34팀 중 9팀, 고등부 30팀 중 10팀이 서울에 집중적으로 분포했고, 서울 외 행정 구역은 각각 평균 2.1개 팀, 평균 1.8개 팀이 소재했다. 제주도에는 대한농구협회에 등록된 고등학교 팀이 없다. 대학농구리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본교와 연세대 농구부 선수 32명 중 비 서울권 선수는 9명이다. 대구 칠곡초교에서 서울 홍대부속중·고교로 진학한 강상재(사범대 체교13, F) 선수는 “지방에는 고교 팀이 적어 연습 경기량이 서울 고교 팀보다 부족하다”며 “한참 기량을 키우는 고교 선수에게는 연습이 중요해 서울행으로 마음을 굳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는 고교 팀이 모두 수도권에 있다. 초등학교 팀의 경우 전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1개 팀 이상이 있지만, 고교 팀은 서울권 7개 고등학교 팀(△경기고 △경복고 △ 경성고 등)과 인천 신송고 팀뿐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배워온 지방 학생 중 ‘하키선수’로 진로를 확정한 선수는 경인지역으로 연고를 옮기는 것 외에는 운동을 지속할 방법이 없다. 특히 경상도는 중학교 팀조차 없다. 창원시 초등학생 아이스하키팀 창원데블스 김준현 감독은 “상급학교로 갈수록 팀이 적어 유소년 선수 중 20명 중 서울로 진학하는 1명 정도밖에 하키를 계속할 수 없다”며 “지방에 팀이 없어 종목 인지도도 떨어지니 창원에 팀을 신설했을 때 홍보도 어려웠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반면 축구와 야구는 럭비와 농구, 아이스하키에 비교하면 지방 출신 선수가 많다. 고려대 축구부 28명 중 13명, 야구부 23명 중 10명이 지방 고교 출신이다.
  전문가들은 ‘엘리트 체육인’ 양성에 중점을 둔 한국 체육 교육 체제가 지방 팀 육성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와 반대로 ‘사회체육 확산’을 장려해 온 일본이나 미국은 다양한 종목에서 지방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일본· 미국과 같이 지방 팀 활동을 장려해야 ‘싹’이 보이는 선수를 찾기도 쉬울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천희(사범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국가 체육의 뿌리는 엘리트 체육이 아닌 사회 체육”이라며 “많은 학교가 다양한 종목을 학생이 접하고 공부하도록 스포츠팀을 지방에 형성하는 것이 사회체육 육성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지방 유망주 유치 시작한 교육 당국
  엘리트 선수 육성으로 기록적 성과를 내는데 치중한 이른바 ‘엘리트 체육인 육성’은 1990년대까지도 체육 교육의 정설로 통했다. 모든 학생이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본인에게 맞는 스포츠를 찾는 생활체육을 육성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제도적 육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4년 문화체육부의 생활체육예산은 36억여 원으로 당시 엘리트 체육 지원 금액인 190억 원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현재 교육 당국은 엘리트 체육인 양성 위주의 체육 정책이 지방 학생 선수 육성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3월 ‘학교 체육진흥법’을 발의해 학교장이 학교 스포츠클럽을 운영해 학생들의 체육 활동 참여기회를 확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방 교육청 또한 체육 특성화고교를 개교하고 고등학교에 운동부를 신설하는 등 지역 내 유망주 육성과 유치에 만반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광역시 교육청은 울산 지역 우수 선수를 확보하기 위해 2014년 울산스포츠과학중·고 개교를 앞두고 있다. 울산광역시 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관계자는 “그간 울산시에 체육 특성화 고교가 없어 일부 중학생 선수가 불가피하게 다른 지역으로 진학하곤 했다”며 “울산스포츠고가 울산의 학생체육 성장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등 다른 지역 고등학교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스포츠 경영, 마케팅 등의 수업도 개설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세  종특별자치시(세종시) 교육청도 우수선수의 조기 유출을 막기 위한 방책을 고심하고 있다. 신생도시인 세종시는 그 특성에 맞게 다인 수 단체종목 대신 농구, 배드민턴을 비롯한 소인 수 단체 종목 팀 확충과 태권도·육상 등 개인 종목을 우선 육성하고 있다. 세종시 교육청 인성교육과 이종덕 체육 담당 부장은 “초중고등학교를 아우르는 연계 팀 창단이 우선 과제”라며 “그밖에 체육회와 학부모가 함께하는 교육공동체의 창설과 선수 장학금 지급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