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대학 입시생만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서울 내 명문 고교로 진학을 결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운동부 선수들은 서울권 고교 운동부에 들어가려 ‘서울 유학’을 온다. 서울 고등학교 리그는 초등학교·중학교 선수들에겐 ‘꿈의 리그’다. 프로 스카우트에게 눈도장을 찍을 기회도 많고, 또래 명선수와 겨룰 수 있으며, 이미 프로에 진출한 선배의 후원도 든든하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운동부에 입부할 기회는 대부분 해당 고등학교의 연계 중학교 운동부 학생에게 돌아간다. 18명 내외로 구성된 고교 농구부의 한 해 입부 정원은 5~6명 수준으로, 지방 출신 학생이 자리를 꿰차려면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올해 농구 고연전에서 최다 득점을 올리며 승리를 이끈 박재현(사범대 체교 10, G, 마산 회원초에서 경복고 진학) 선수의 어머니 김도연(여·45) 씨는 아들의 서울행에 많은 걱정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어린 아들을 홀로 서울로 보낼 만큼 서울 생활이 선수에게 장기적으로 많은 장점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서울은 지방보다 팀이 많아 고등학교 팀뿐 아니라 대학팀과도 겨룰 수 있어요. 다양한 경기가 열리니 선수 스스로 ‘직관’을 통해 타 팀 선수의 장단점을 익힐 기회도 많고요. 프로팀 스카우트의 이목이 서울에만 집중되다 보니 기량이 월등히 뛰어나지 않으면 지방에선 주목받기 힘들다는 부담감도 있었죠.”

  부상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는 선수의 부모에게는 ‘선수 재활병원’이나 ‘3차 병원’의 존재도 고려 대상이다. 지방에는 특수 병원이 드물고, 있다 해도 여건상 선수의 상해 수준에 맞춘 세밀한 간호를 받기 힘들다. 부모 입장에서는 지방에서 경기 도중 부상을 입으면 즉각 치료를 받기 힘들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이승현(사범대 체교11, F, 대구 칠곡초에서 용산고 진학) 선수의 아버지 이용길(남·56세) 씨는 “한창 자랄 나이에 농구선수가 무릎을 다친다면 정말 큰 일이에요. 이런 경우 지방 선수라 해도 선수 전용 개인병원이나 재활병동이 많은 서울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겁니다. 처음부터 서울에 팀을 두고 있으면 의료 서비스를 받는 데도 유리하겠죠.”

  서울 시내에는 중학교 기숙사가 없어 불안한 학부모는 중학교 팀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와도 서울 진학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운동을 시작한 초등학생 때부터 서울행을 염두에 둔 부모는 함께 서울에 올라와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승현 선수는 14살에 어머니 최혜경(여·49) 씨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재능이 보여 여러 학교에서 스카우트를 받아 진학한 경우지만 계약금 같은 ‘물리적·객관적 수치’를 비교해서 학교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감독이 어린 선수를 잘 보살펴 줄 수 있을지 고려했다. “자식의 서울 진학을 앞둔 부모님에게 운동 실력과 인성을 함께 길러줄 수 있는 감독님을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승현이가 용산중 진학을 선택한 것은 용산중 이효성 감독님께서 가장 승현이의 경기를 꼼꼼히 보셨고, 승현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이에요. 또 진학 초기에는 감독님이 엄하셔서 승현이가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경기 외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홀로 상경한 선수들은 지방에서 올라와 겪는 외로움과 보살핌의 부재를 홀로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문성곤(사범대 체교 12, F, 부산 성동초에서 경복고 진학) 선수는 서울권 중학교 진학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했다. 문성곤 선수의 어머니 전미정(여·48) 씨는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아들이 마냥 안쓰러우면서도 서울 진학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고등학교 팀 대신 서울 고등학교 팀으로 진학한 것을 이기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도 아들을 홀로 서울에 보내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요. 그렇지만 한창 기량을 키울 나이에 더 큰물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게 장기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울팀에서 스카우트를 받았다고 바로 선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의 경우 최장 1년까지 실전에 투입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방 학생이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것은 대한농구연맹과 고교농구연맹의 규정 탓이다. 현재 대한농구연맹은 6개월, 고교농구연맹은 1년 동안 연고지를 옮긴 선수에 한해 경기 투입을 제한하고 있다. 겨울에 진학하면 하반기에 열리는 대한농구연맹 주최 전국체전과 종별농구선수권은 참가할 수 있다. 이용길 씨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 선수와 부모가 잘 계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린 선수의 경우 선배들의 경기를 보고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선수가 실전에 오랫동안 투입되지 못하면 경기력에 영향이 있기 때문에 감독과 충분히 소통하고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어떤 훈련이 필요할지 고심해야 해요.”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할 나이에 떨어져 있는 선수의 정서적 희생도 무시할 수 없다. 역시 ‘지방보다는 서울’이라는 데 뜻을 모았지만, 부모와 떨어져야 하는 아들의 외로움에 공감했다. “선배에게 혼나고 풀죽어 전화가 오면 속상하지만 ‘묵묵히 견디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어요. 경기 중에 다쳐서 끙끙 앓아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으니 또래보다 빨리 제 몸 살피는 법을 깨우쳐야 하죠. 곁에서 부모가 보듬지 못하니 재현이는 어린 나이에 ‘훅’ 철이 들었어요. 부모 입장에선 자식이 힘들어 철이 들면 고맙기도 하지만 내 욕심으로 상처를 준 것 같아 많이 속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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