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아산시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수사교육기관 경찰수사연수원. 정문에 들어서서 보초를 서던 의경에게 방문증을 지급받고 연수원 건물로 들어가자 마중 나온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이 보인다. 국내 최초 프로파일러로서 21년간 과학수사 분야에 종사한 그는 200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영철 사건을 비롯해 2006년 정남규 사건, 2009년 강호순 사건, 2010년 김길태 사건 등의 범죄자 분석을 도맡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잔혹한 범죄에 가장 깊이 접근하는 직업특성상 냉정하고 무뚝뚝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권일용 경감은 따뜻하고 유한 인상을 지녔다. “저는 이곳 경찰수사연수원에서 프로파일링 수사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어요. 또한 교수로서 후배양성을 위해 범죄분석 과정을 만들어 과학수사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과학수사의 한 기법인 프로파일링은 범죄 현장을 분석해 범인의 습관, 나이, 성격, 직업, 범행 수법을 추론한 뒤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미 연방수사국의 인간행동 분석팀에서 처음 도입한 수사방법인 프로파일링은 2000년 서울 경찰청이 당시 경위였던 권일용 경감을 프로파일러로 지정하면서 한국에 도입됐다. “미국에서 FBI가 1970년대에 프로파일링을 시작한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에 처음 시작했어요. 그 이전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범죄의 동기가 뚜렷해 프로파일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지존파, 막가파 사건 이후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범죄들이 등장하면서 프로파일링이 도입됐다.
 
▲ 모의범죄 실습장 세트 중 원룸텔의 내부. 이불위에 인공 피가 뿌려져 있다.
 권 경감은 과학수사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경찰수사연수원 본관 지하 1층에 위치한 모의범죄 실습장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술집, 아파트, 원룸텔, 보석가게 등의 장소를 실제 범죄 현장처럼 상황을 꾸며 수사관들이 수사기법을 실습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가령 강도 살인사건을 구성해놓으면 연수생들이 폴리스라인 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현장에 남아있는 지문과 족적, 혈흔을 분석하기도 하면서 순서대로 수사를 진행해요. 동물 피와 사람 피는 점도와 굳는 속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예전에는 수사관들이 직접 자기 피를 뽑아서 실습하기도 했어요. 그야말로 피 흘리는 노력이었죠.(웃음)”

 이어서 권 경감은 과학수사 전문 기법을 훈련받는 과학수사 실습동으로 향했다. “모의범죄 실습장과 달리 이곳은 교육받은 내용을 수사기법별로 나누어 실습하는 곳입니다.” 족윤적감식, 총기감식, 화재감식 등을 실습하는 총 6개의 실습실 중 혈흔형태분석감식 실습실에는 야구방망이, 망치, 식칼 등 보기만 해도 섬뜩한 범행도구들이 마련돼 있었다. 권 경감은 직접 시범을 보이며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때 피가 어떻게 튀는지 설명했다. “현장에서 혈흔을 보고 범인이 피해자를 앉아서 찔렀는지 서서 찔렀는지 등을 알아낼 수 있어야 해요. 만일 방망이를 휘둘러 가격한다면 한 번 가격하고 나서 방망이에 피가 묻고 이를 다시 휘두르는 과정에서 천장에 피가 튀게 돼요. 즉 세 번 가격했다면 천장에는 피해자의 피가 두 번 튀겠죠. 또한 피가 튈 때 날아온 방향으로 꼬리가 남아요. 이때 삼각함수를 이용해 공격이 어디서 발생해서 피가 어떤 각도로 날아왔는지 파악하기도 해요. 이러한 혈흔분석을 통해 공격당시 범인이 화가 나서 공격했는지, 대화 도중에 갑자기 공격했는지 등의 행동을 파악하고 현장을 재구성합니다.”

▲ 권일용 경감이 지문감식 실습장에서 감식 시범을 보이고 있다.
 법인류·족윤적 감식 실습실에서는 유골 발굴과 족적분석 실습이 이루어진다. 권 경감은 2m 길이의 모래세트 위에서 석고 모형을 보여주며 족적분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곳에서는 발자국이 패인 곳에 석고를 붓고 본을 떠 발자국 감식을 실습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현장에서 나온 족적을 분석해 그 신발이 어떤 회사에서 언제 생산한 모델이라는 정보까지 다 찾을 수 있어요.”

 같은 과학수사 분야에 속해있지만 과학수사대(KCSI)는 범죄에 자연과학적으로, 프로파일러는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다. 때문에 과학수사대가 현장에서 지문과 발자국 등 범인이 남긴 흔적을 찾는데 주력한다면 프로파일러는 범죄현장의 특징을 파악해 범인의 행동을 분석한다. 권 경감은 서울 서남부에서 25건의 강도 및 살인을 벌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2006년 정남규 사건 당시 현장에 특이점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정남규는 가정집에 침입하면서 항상 작은 방으로 향했어요. 큰 방에는 어른들이 있고 작은 방에는 아이와 여자가 있어서 범행에 수월하기 때문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족적을 채취하는 게 과학수사대의 일이라면 '이 발자국은 왜 큰방이 아니라 작은 방으로 가고 있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행동을 분석해 범행 동기와 목적을 알아내는 게 프로파일러의 일이에요.”

 또한 권일용 경감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드라마틱한 모습과 실제 프로파일링은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프로파일링은 범죄현장을 딱 보고 '범인은 30세 전과 있는 남성'하고 특정하는 게 아니에요. '문이 열렸는데도 왜 창문으로 들어왔는가'와 같이 행동을 분석해 우리가 우선순위를 가지고 수사해야 할 유형을 추립니다. 많은 사람들 중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범위를 압축하고 수사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죠.”

 연쇄 살인, 연쇄 성범죄, 연쇄 방화가 프로파일링의 우선대상이다. 권 경감은 이 세 범죄의 특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내면의 폭력성을 표출했다는 의미에서 한 형제들이에요. 즉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놈은 살인도 저지를 수 있다는 거죠. 프로파일러는 평상시 이와 같은 연쇄적 범죄사건을 모니터링 합니다. 모니터링 중 위험성이 보이거나 각각 다른 관할지역에서 유사한 패턴을 가진 범죄가 발생하면 즉시 투입됩니다.”

 연구 활동은 발전된 프로파일링 수사를 위한 밑거름이다. 권일용 경감은 범죄자를 인터뷰하면서 모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범죄유형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저는 2000건이 넘는 사건현장을 보고 960명 정도의 범죄자들과 면담을 했어요. 가령 시체를 유기하는 사람, 매장하는 사람, 토막 내는 사람은 특성이 다 달라요. 이때 프로파일러는 각각의 행동에서 맥락을 찾아냅니다. 유영철 같은 경우 들고 가기 편해서 시체를 토막 냈다고 하더군요. 이런 정보가 쌓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죠.”

 연구활동의 목표는 유사한 범죄자가 나타났을 때
▲ 권일용 경감은 의문을 가지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링은 '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빨리 검거하려는 것이다. “저에겐 똑같은 놈이 나타나면 반드시 잡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경험을 쌓으면 직관이 생겨요. 나중에는 대충 봐도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프로파일러는 지식과 직관이 모두 필요한 직업이에요.”

 이어 그는 이론과 실제 수사가 다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세미나’에 참석해 사례분석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유영철을 잡기 위해 몇 년간 현장에서 뛰었기에 그것이 탁상공론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한 교수님께서 하신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건 둘 중 하나가 틀렸다는 것'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보통 심리학과 석사이상 전공자가 특채로 채용되지만 프로파일링 이론을 현실과 일치시키기 위해 심리학 외에도 사회학, 광고론,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을 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꼭 심리학 전공자만 프로파일러가 되는 건 아닙니다”

 권일용 경감은 대학생들에게 조언의 말을 덧붙였다. “힘들게 사세요. 저는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못할 겁니다.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러나 그 힘들었던 날들이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들었어요. 만일 지금 힘들다면 잘 하고 있는 겁니다. 확신을 가지고 계속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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