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 ‘제136조 1항’을 적용하게 되면 비록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터넷 카페나 공유폴더 등에 원저작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2차적 저작물을 게시하면 일종의 권리침해로 본다. 법적 판단으로만 본다면 자막을 제작한 네티즌들은 해외드라마 제작사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합법과 불법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만 적용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송 드라마’라고 하는 문화콘텐츠의 제작과 유통, 방영 등을 종합적으로 염두에 둔다면 다른 지점에서 살펴볼 측면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해외드라마가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기 이전에 자국에서 화제가 되거나 시청률이 높은 작품의 영상 파일을 미리 입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누군가 자막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 후 공유사이트나 공유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러 사람이 다운로드를 통해 감상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불법’인 것은 맞다.
 
  다만 이러한 ‘불법’ 과정이 상당 기간 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져 왔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이제 와서 왜 단속하느냐는 항의와는 다른 측면이다. 이번 사건에 국한해서 ‘미드’를 중심으로 보자. 미드의 경우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한 이후 주로 미드 동호회 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막작업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상영되고 있는 드라마를 감상하거나 자막을 통해 공유하면서 동호회 회원들이 먼저 드라마에 대한 감상과 평가 작업까지 이뤄지는 것이다.  동호회에서 나누는 다양한 정보는 단순한 감상의 수준을 넘어 그 자체가 미드의 수입 기준이나 흥행 예측과 같은 다양한 기준이 되었고 이러한 정보를 통해 제작사뿐만 아니라 수입 및 배급사 역시 시장수요와 사전예측, 마케팅전략 등이 마련할 수 있었다.

  이번에 고소를 당한 미드 자막 활동을 한 네티즌들은 대부분 미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업적 목적을 갖거나 이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문화콘텐츠의 경우, 기본적으로 문화생산물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오늘날 대중문화에서는 원작을 토대로 하는 2차, 3차 생산물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텍스트에 대한 첨가나 변형이 가능하게 된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이러한 방식의 새로운 문화콘텐츠 생산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뒤늦게 고소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의아한 것은 사실이다. 결국 미드동호회와 같은 커뮤니티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업적 이익이나 개인의 사익보다는 구성원들 사이의 집단적 활동을 통한 취향의 공동체로서 일종의 팬덤 활동으로 이뤄져왔던 것이다. 그러한 활동이 미드의 대중화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으며, 나아가 미드 열풍이라는 사회적 현상까지 일구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과 같은 고소 입장을 취한 것은 이미 대중화된 국내 미드 시장에서 좀 더 세밀한 유료화 정책을 통해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사례는 한국 대중문화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1980년대 말을 전후로 일본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이전에 한국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본문화를 접할 수 있다. 특히 망가나 애니메이션 등은 대표적인 장르에 해당된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를 접하는 과정은 대부분 '불법'이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면서 ‘불법적인’ 과정을 거쳤던 세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감성을 충분히 간직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질감 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장의 규모까지도 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측면이 바로 '공유문화'의 관점이다. 공유문화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생산된 텍스트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등에서 일방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공유문화의 관점은 사회적 생산물로서 문화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한다. 그러한 입장에는 비록 개인이 어떠한 문화텍스트를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그 생산 조건과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사회공동체의 유산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내가 모든 것을 온전히 홀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공유문화의 관점은 문화생산물에 대한 생산과 소비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담고 있다. 원저 작물과 같은 문화생산물이나 새로운 원천기술과 같은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철저하게 자본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유문화적 관점은 비자본주의적 혹은 탈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새로운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방식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것은 자본 중심의 문화생태계를 비판적으로 사유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모든 지식과 정보, 권력이 독점되고 그를 통해 자본을 증식하는 방향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가 확산되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권경우문화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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