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박물관 가는 길에는 담장마다 벽화그리기가 한창이었다. ‘평화가 있는 골목’ 벽화프로젝트는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벽화로 옮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고자 하는 의도로 진행됐다. 31°C가 넘는 날씨에도 50여 명의 봉사자들이 촘촘히 담장 아래 앉아 빨갛고 노란 꽃을 그리고 있었다. 벽화봉사를 위해 SNS를 통해 모였다는 이들 중에는 엄마와 함께 온 10살 남짓한 아이도, 친구들끼리 온 10대 소녀들도 있었다. 밝은 원색으로 그려진 꽃들은 주택가 깊숙이 자리 잡은 박물관을 향한 이정표로 보였다.

박물관의 아픈 역사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기억하고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인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5월 5일 마포구의 한 주택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은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건립될 예정이었지만,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진 독립유공자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현재의 장소에 세워졌다. 골목 입구로부터 오르막길을 따라 5분 정도를 걸어가 오른 편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보였다. 박물관의 겉모습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진회색 벽돌로 이루어진 웅장한 주택 같은 모습이었다.

여정의 시작
  입구에 위치한 ‘맞이방’이 방문객을 반겼다. 바닥에는 빛으로 된 원이 그려져 있다. 원 위에 올라서자 움직임을 인식하고 벽에 노란 나비가 날아다니는 영상이 비쳤다. 나비들은 넓게는 여성, 좁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한다. 그들이 자유롭게 날갯짓하는 것으로 박물관의 여정이 시작됐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지하 1층에서 2층을 거쳐 1층으로 나오는 독특한 동선을 가지고 있었다. 박물관 실내에 들어와 맞이방에서 관람을 시작하면 입구 오른쪽에 있는 다른 출구를 통해 다시 실외로 나와야 한다.

  그 출구를 여는 순간 큰 총성이 관람객을 일깨웠다. 이윽고 전쟁의 한 가운데 있는 듯 자갈길을 군화로 저벅저벅 걷는 소리도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길에는 거친 자갈들이 깔려 있고 양 벽에는 각각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그림과 양각조소가 걸려있었다.

사진제공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좁은 쇄석길에 들어서자 왼쪽 벽에 그려져 있는 소녀 네 명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이들은 철조망이 깔린 길 위에 하얀 꽃을 품은 채 서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가혹한 운명을 아직 알지 못한 채 앞을 향해 걸어가는 모양새였다. 반면, 오른쪽 벽에는 가혹했던 세월을 모두 견딘 후 주름진 그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석고로 양각을 뜬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과 양 손도 보였다. 눈을 감은 그녀들의 주름에서 세월의 고달픈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오른쪽에는 생존자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에 한복을 입은 소녀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일본군은 웃으며 그 옆에 서 있었다. 1998년 1월 24일에 김복동 할머니가 그린 이 그림은 14살 끌려가던 날 당시 기억을 직접 그린 것이었다. 이 외에도 해골더미 위에 일본군과 함께 벚나무가 그려져 있고 한 여성은 나체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도 있었다. 그림들을 보며 지하로 내려가니 쾨쾨한 냄새가 먼저 코를 찔러왔다.

  어둠에서 빛으로
  지하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앞에 보이는 벽에 영상이 비쳤다. 피해자들의 일생을 담고 있는 영상증언으로, 영상 속에서 김학순 할머니는 울먹이며 “이렇게 나와서 지껄여야겠냐. 지껄여도 안 된다, 지껄여도 안 돼”라고 말했다. 주름 사이로 그녀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상이 끝나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세 개의 영상액자가 걸려있었다. 각각의 액자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벽에는 당시 일본군 위안소로 사용됐던 건물과 터가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서는 전쟁의 잿더미를 형상화한 바닥 전시가 놓여 있었다. 잿더미에는 잡초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사이사이엔 당시 군인들이 사용했던 낡은 수통과 수신기가 놓여있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영상증언 소리와 함께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전시(戰時)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른쪽 구석에서 조금 앞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자그마한 입구가 보인다. 계단 두어 개가 놓여 있어 허리를 잔뜩 숙여야 할 만큼 들어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입구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자 피해자의 삶이 사진을 통해 보였다. 왼쪽 벽에는 피해자들의 젊었을 적 모습이, 오른쪽 벽에는 삶을 보내고 난 뒤 그녀들의 모습이 있었다. 젊음과 늙음 사이의 빈 공간에는 거친 멍석 위 두 켤레 신발이 놓여 있었다. 이들이 걸어 온 험난한 인생을 상징하는 이 신발은 그들이 실제 신던 것이었다.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을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그들이 느꼈을 세상과의 단절을 짐작케 했다. 
  
▲ 호소의 벽사진제공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향하면서 주위가 점차 밝아왔다. 벽 곳곳에 박힌 메시지 또한 점차 희망을 내포하고 있었다.  메시지들은 ‘내가 살아남은 게 꿈 같아. 꿈이라도 너무 험한 악몽이라’부터 점차 희망적으로, 마지막은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로 끝이 났다. 메시지마다 박혀있는 할머니들의 모습 또한 점차 웃는 사진이었다.

 


기억 그리고 추모

  추모의 벽을 보며 2층으로 올라오자 일반적인 전시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층에는 ‘위안부’ 역사관부터 운동사관, 생애관 그리고 추모관이 자리했다. 전쟁이 낳은 기형적 제도인 ‘위안부’ 제도에 관해 설명돼 있었다.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관부터 이후 최초 증언으로 침묵을 깨뜨리면서 시작된 운동사관까지 보고나니 전시관 끝 한 편에 소녀상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어깨에 한 마리 새가 앉아 있는 소녀의 얼굴은 슬픈 듯 아닌 듯 담담해 보였다. 소녀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는 또 다른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의자에 앉아 소녀의 손을 잡아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추모관이었다. 벽돌은 그 틈새로 빛이 들어오도록 엉성히 쌓여 있었고 그 틈마다 꽃들이 꽂혀 있었다.(사진3) 벽돌에는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 235명의 사진과 이름, 사망날짜가 적혀 있었다. 이름 없이 역사 속에 묻힌 피해자는 빈 벽돌로 함께 자리했다. 건물의 가장 밝은 곳에 위치한 추모관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직접 헌화할 수 있었다.
▲ 추모관사진제공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전시를 구경하던 김민선(여·24) 씨는 “현재도 전쟁과 같은 외부 환경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이 줄지 않고 있다”며 “계속해서 이런 문제를 조명하고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층 한쪽엔 세계분쟁과 여성폭력을 주제로 한 상설 전시와 함께 ‘콩고의 눈물 2014: 끝나지 않은 전쟁, 마르지 않는 눈물’이라는 특별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 전쟁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었다. 과거에 이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의도였다.

  관람을 끝내자 1층 전시관 옆 뜰에서 담장에 꽃과 나비를 그리던 벽화 봉사자들이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옷에 물감을 묻힌 채로 1층 전시를 구경하고, 각자의 염원을 담아 노란 나비 모양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적는 그들의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선 박물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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