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비밀을 알게 된 한 노인이 말할 곳이 없어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 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다. 말하고 싶은 것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나무 숲이 SNS에도 생겨났다. 2012년 9월, 트위터에서 ‘출판사 옆 대나무 숲’ 계정이 처음 생긴 뒤로 대나무 숲은 지역 별 혹은 단체 별로

▲ 일러스트 | 김채형 전문기자
점차 확산했다. 대나무 숲이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온 후 대나무 숲의 성격이 익명의 제보를 보고 실명으로 답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2013년 11월 만들어진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을 시작으로 각 대학 별 대나무 숲 페이지가 우후죽순으로 페이스북에 개설되기 시작했다. 1월 18일 개설된 ‘고려대학교 대나무 숲(고대숲)’도 12일 오후 3시 기준 페이지 좋아요 수가 5862개에 달했다.

 가장 많은 글은 ‘연애’
  고대숲이 개설된 이후 현재까지 약 2200개의 제보가 올라왔다. 이 중 8월 12일부터 9월 12일까지 최근 한 달 동안의 제보를 유형별로 분류했다. 그 결과 총 284개의 제보 중 △연애(80개, 28.1%) △고민(62개, 21.8%) △학교생활(53개, 18.6%) △기타(45개, 15.8%) △공론화될 수 있는 문제(26개, 9.1%) △고대숲 운영 관련(18개, 6.3%) 순으로 비율을 차지했다.

  연애 유형 제보는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짝사랑하는 사람과 약속을 잡아 설렌다는 것부터 헤어진 그 사람이 계속 생각난다는 제보, 그리고 성에 관한 것까지. 5월에는 연애 관련 글이 너무 많이 올라와 관리자는 ‘들어오는 사연이 다 연애 위주라 어쩔 수 없다’며 제보의 다양화를 권고하기도 했다.

  고대숲을 즐겨 보는 한지현(문과대 사회11) 씨는 “20대 대학생의 주 관심이 연애에 집중되어 있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주로 연애 분야라서 관련 글이 많은 것 같다”며 “게다가 연애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분야이기 때문에 조금 더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 글을 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주제로 이뤄지는 소통
  고민 분야 또한 외모에 관한 신체적 콤플렉스부터 진로에 관한 것까지 다양했다. 7월 18일에 올라온 글의 한 제보자는 가족의 체벌과 학교에서의 왕따 등으로 생긴 트라우마로 예스맨이 되었다는 자신의 처지를 길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자신은 사람들이랑 소통을 하는 것에 문제가 많은 새내기’라며 ‘이제는 긴장이나 두려움 없이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에 사람들은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하지 말라,’ ‘글만 봐도 괜찮은 사람이니 자신감을 가져라’ 등의 격려하는 댓글을 남겼다. 고대숲에 종종 댓글을 달곤 하는 최경석(정경대 정외07) 씨는 “오지랖이 넓어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편”이라며 “내가 겪었던 고민이나 문제를 비슷하게 겪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댓글을 단다”고 말했다.

  고대숲에는 고연전, 개강, 동아리 등 학교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학교와 관계없는, ‘공론화될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이 올라온다. 질문은 ‘영적 존재는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에서부터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같이 시의성이 담긴 것까지 다양했다. 이에 사람들도 강의를 추천하는 것부터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각각 표현하는 것까지 물음에 대한 크고 작은 답변을 달았다. 또한, 이런 글이 고대숲에 올라와도 되는 것인지, 소위 필터링 여부에 관해서도 찬반이 나뉘기도 했다.

 익명이라는 가면
  고대숲 제보자는 게시 내용 말고는 인적사항이 필요 없는 사이트(구글 설문지)를 통해 제보하기 때문에 페이지 관리자도 제보자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제보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한편, 논란의 근원이 되는 글도 쉽게 작성한다.
 
  10일, 한 제보자는 ‘세월호 유족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대생의 의견이 궁금하다’며 ‘이 문제에 대해 지겹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을 남겼다. 그는 댓글도 익명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장문의 댓글로 여러 개 달리며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다.

  고대숲에서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청춘버스에 관한 글이었다. 7월 20일 본교 안암총학생회(회장=최종운, 안암총학)가 시작한 청춘버스 사업에 관한 글이 대나무 숲에 게시됐다. 청춘버스란 안암총학이 경기지역 거주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학버스를 운영하는 사업이다. 제보자는 ‘수도권 일부 지역만 이득을 취하는 것 아니냐’며 ‘기숙사나 자취, 하숙을 해야 하는 지방 학생들에게 이는 불공평한 처사’라는 의견을 밝혔다. 익명으로 제보자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면 기숙생을 뽑을 때 지방 학생을 우대하는 것도 서울권 학생에게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가 아닌가 싶네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기숙사가 있는 것처럼 통학하는 사람들을 위해 통학버스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나요’ 등 196개의 댓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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