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트렌드 키워드는 ‘놈코어’다. 놈코어는 평범함 속에서 사치스러움을 찾는 것이다. 모순돼 보이는 이 말은 일부러 평범한 것을 택하면서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보이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트렌드코리아 2015>의 공동저자 전미영(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를 통해 놈코어 소비 현상 전반에 대해 살폈다.

▲ 일러스트|김채형 전문기자

자신감과 도도함을 추구해
놈코어(normcore)는 노말(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로,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의미이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여유를 향유하는 게 바로 사치라는 것이다. 눈에 드러나는 것을 가지는 데에서 오는 사치가 아니다. 단순한 디자인에 고급스러움이 숨겨져 있거나,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시간적인 여유를 맘껏 향유하는 것도 놈코어다.
놈코어를 2015년의 트렌드 키워드로 선정한 저서인 <트렌드코리아 2015>는 놈코어에 대해 ‘트렌디한 것을 따르지 않는 트렌드’로 설명한다. 2014년 위키피디아에 공식 등재된 놈코어는 SF소설가인 윌리엄 깁슨(Wiliam Gibson)이 소설 <뉴로맨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히든 로고 브랜드는 놈코어의 대표적인 예다. 히든 로고 브랜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로 통한다. 품질은 최고급을 유지하지만 로고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특성 때문이다. <트렌드코리아 2015>에 따르면 이는 ‘남들이 인정해주기를 갈구하는 노출의 프리미엄이 아니라 자신감과 도도함을 추구하는 은밀한 프리미엄’이다. 럭셔리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함에서 드러난 자연스러움에서 멋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과시를 위한 ‘담 쌓기’ 전략
놈코어 현상은 부유층의 과시 소비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유층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대중과 차별화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담 쌓기와 다리 놓기’ 개념을 통해 보면, 부유층은 ‘담을 쌓으며’ 대중과 차별화하는 한편, 대중은 끊임없이 ‘다리를 놓으며’ 고급스러운 삶을 모방하고자 한다. 전미영(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부유층은 항상 자신만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담 쌓기를 시도한다”며 “기존에 부유층의 담쌓기가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가처분 시간’과 같은 여유가 바로 담 쌓기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결혼 후 ‘소길댁’이라는 별칭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생활하는 가수 이효리 씨 역시 놈코어 사례다. 이효리 씨는 직접 김장을 하고 작물을 재배하는 등 유기농 생활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미영 교수는 “소박해보일 수 있는 이 행위들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치”라고 말했다.
놈코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고급스러움을 알아봐주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본교 소비자광고심리연구실의 성영신(문과대 심리학과) 교수는 “놈코어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것을 소비하면서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꾀하거나, 혹은 남들이 다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일부 계층에서만 인정받기를 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체 통해 확산…큰 인기 끌어
2014년 여름을 강타한 ‘마이 보틀’ 열풍도 놈코어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이 보틀은 투명한 물통으로, 겉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MY BOTTLE’이라고 적혀있다. 단순한 디자인임에도 3만 원에서 7만 원을 호가했지만 한동안 인터넷 쇼핑몰에서 품절 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국내에서 유행했다. 단순한 멋에서 풍기는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이다.
마이 보틀의 유행에는 SNS의 위력이 크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마이 보틀 유행이 퍼졌다. 평범하고 가격도 비싸지만 친환경적이고 단순한 이미지가 SNS 상에서 강조됐다. 네이버 블로거 ‘연근’ 씨는 “비싼 가격이지만 많은 블로거들의 구매 후기를 보고 자연스레 구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놈코어 현상이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다. 유명 연예인의 일상을 가까이서 조명한 프로그램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룸메이트’, ‘나 혼자 산다’ 등의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일반인도 연예인의 삶을 낱낱이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연스럽고 편한 스타의 일상은 비싼 고급 상품들로 가득하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은 ‘조세호가 입은 실크 잠옷’, ‘엑소(EXO) 찬열이 사용하는 10만 원 상당의 베개’를 쉽게 접하게 됐다. 이은희(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중들은 매체를 통해 유명인의 일상을 접하며 자연스러움 속에 숨겨진 고급스러움을 직시하게 되며 이를 추종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왜 소비 원하는지 고민해야
일각에서는 놈코어 현상이 단순히 고급 사회의 일부인 여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은희 교수는 “단순히 가진 자들이 누리는 것의 일부를 누리는 데에 대한 보상 심리에 그친다면 소비 문화로 적절하다고 볼지 의문”이라며 “고급스러움을 향유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로 양분될 수 있어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맹목적으로 놈코어를 따르는 소비보다는 소비가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일상의 삶을 사치로 생각할 수 있게 된 점은 긍정적이나 이 역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해서 행하는 것이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미영 교수는 “단지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기 때문에 일상의 삶을 사치로 생각하는 현상을 따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영신 교수는 “수입의 범위 내에서 럭셔리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즐길 권리 측면에서 나쁜 것이 아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인정받기 위한 소비가 지나칠 경우 건강한 소비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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