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입시 제도에 불만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2015학년도 수학능력시험(수능) 만점자인 부산 대연고 이동헌(남·20) 씨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첫머리다. 그의 글엔 수험생으로서 느꼈던 한국 입시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교육부는 2013년, 대입 간소화를 제시하며 대입전형이 간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운영되도록 하려 했다. 학생, 학부모의 부담을 경감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동헌 씨가 느낀 대입의 실체는 복잡했고 그의 글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었다. 수험생으로서 그가 본 한국 입시의 민낯은 수험생 64만여 명이 느끼고 있는 바다.
▲ 사진∣장지희 기자 doby@

본교에 입학한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 전형에 치이고 또 치이면서 ‘고려대’에 올 수 있었다. 고대생이 된 후 우리는, 입시 전선을 잊었다. 구태여 되돌아보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입시에서 패배하지 않은 우리에게 이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린 치열했던 입시 현장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문제의 입시제도는 자리에 남았다. 왜 우리는 입시문제를 보고도 목소리를 내려하지 않을까. 그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입학관문을 뚫은 지 얼마 안 된 14, 15학번을 만나봤다.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
#본교에 논술전형으로 합격한 신준호(문과대 사학15) 씨는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했었지만 지원할 수 없었다. 그는 수험생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준비하긴 했지만, 당시 자사·특목고 학생들이랑 게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교내 및 교외활동 면에서 확실히 질적 차이가 있고 면접에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015학년도 전체 모집인원의 수시 모집 비율은 64%, 2016학년도는 66.7%의 비중이 배정됐다. 특히 수시 전형 중 학생부 중심전형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엔 본 전형으로 전체 모집인원의 44.4%를 선발했으며, 2015학년도엔 55%, 2016학년도엔 57.4%를 선발할 계획이다. 학생부중심전형은 크게 학생부 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나뉜다. 교과 성적(내신)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달리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2007년부터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부 비교과를 중심으로 교과 성적, 자기소개서·추천서·면접 등을 통해 학생을 종합 평가하는 전형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은 ‘상위권 고등학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전형’이라 입을 모았다. 강동구·노원구를 중심으로 입시학원에 10년 이상 근무한 한 입시컨설턴트는 “실제 특목고 혹은 하나고, 상산고와 같은 전국단위 모집 자사고 학생들의 가정환경이 일반고보다 좋다”며 “대학 입학처에서도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일반고가 아닌 자사고·특목고를 중심으로 방문입학설명회를 연다”고 덧붙였다.
이에 입학관리팀 이정호 과장은 “국제인재전형과 같은 특별전형은 특목고 툴신 합격자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융합인재전형과 같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선 일반고 학생들을 많이 뽑으려 노력한다”며 “그 결과 올해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 합격 비율이 5대 5 정도 된다”고 말했다.
말 많은 논술 전형
# 송하빈(공과대 건축14) 씨는 논술전형으로 합격했다. 그는 논술전형의 높은 경쟁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논술전형은 붙어도 그만, 안 붙어도 그만이란 생각으로 쓰는 학생이 많다. 그래서 모집인원이 약 1000명인데도 5만 명 넘게 지원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논술전형은 논술답안지를 쌓아두고 선풍기를 틀어 제일 멀리 날아 간 답안지가 합격이란 얘기를 할 정도다.”
논술 전형은 모집인원이 △2014학년도 1만 7737명 △2015학년도 1만 7417명 △2016학년도 1만 5349명으로 점차 축소되는 추세다. 입학관리팀 함승우 씨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논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논술전형 비중을 줄이라 권고했다”며 “대부분 대학이 이에 따르는 추세”라 말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논술전형은 전체 수시 전형 비중의 평균 3분의 1을 차지한다. 2015학년도 본교 논술전형 모집생은 총 1210명으로 전체 수시 전형 3003명의 3분의 1 정도였다.
대학마다 다른 논술 문제유형과 비싼 논술 학원비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큰 부담이다. 황혜진(정경대 행정14) 씨는 “논술 준비는 학교에서 거의 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1회 4시간에 11만 원 씩 하는 강의를 학교별로 몇 개씩 들어야 하니 금전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논술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듣는 파이널(Final) 수업은 가격이 더 뛰지만, 불안한 수험생 입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들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논술전형으로 합격한 김태훈(자전 경영14) 씨는 모든 전형을 준비해야 하는 입시 환경의 부담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인문사회 논술의 경우 언어학부터 생물학까지 광범위한 사전지식을 공부하는 게 필요한 데 이와 학교 공부를 병행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EBS 70% 연계, 그 이면
# 김기연(문과대 사회15) 씨는 쉬운 수능으로 덕을 봤다. 골칫거리였던 수학이 2015학년도 수능에서 쉽게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수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수능이 쉽게 나와 이득을 보긴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전체적인 분위기를 봤을 때 실수로 문제 하나를 더 틀려 재수하게 되는 친구를 보면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실력과 노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 줄이기’를 목표로 2010년 EBS와 수능 연계율을 70%로 할 것을 발표했다.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10월 교육부 국감 보도 자료를 통해 ‘2014년 수능 분석 결과 대부분의 EBS 연계 지문이 변형 없이 출제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4학년도 수능 영어 23번과 24문항은 각각 ‘수능완성- 유형편 18강 1번 지문’, ‘고득점 230제- 9강 195번 지문’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류효정(정경대 경제14) 씨는 “영어 고난도 문제 중 빈칸유형은 지문 전체 내용과 빈칸이 포함된 문장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려는 의도의 문제인데 EBS와 연계되면서 시험문제 내용은 같으니까 아예 빈칸에 나올만한 단어만 외운다”고 말했다. 목동 학원가에서 10년 간 고등학생 영어강의를 한 영어강사는 “EBS 연계율이 높아질수록 단순 암기식 공부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EBS 연계 70%와 더불어 ‘쉬운 수능’의 바람은 지나치게 쉬운 ‘물 수능’을 가져와 학생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도 한다. 2015학년도 이번 수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교육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영어 만점자 비율은 3.37%(1만9564명)로 수능 사상 최고 수치를 기록했으며, 수학 B형 역시 만점자 비율이 4.3%로 역대 수능 중 가장 높았다. 수학 B형 응시생들은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 됐다.
재수로 본교에 입학한 김소리(문과대 한문14) 씨는 쉬운 수능 경향이 오히려 사교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가 쉽게 출제되면 변별력이 없어져 수능이 아닌 다른 조건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고, 그것은 또 다른 사교육과 빈부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며 “수능 난이도를 꾸준하게 유지해 사교육, 수능 출제오류와 같이 수능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중되는 입시 부담
‘내신-수능-입학사정관제’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불렸다. 2008년 후 입학전형의 상당 부분이 바뀌면서 두 개의 꼭짓점이 추가돼 ‘수능-내신-논술-공인인증시험-학생부종합전형’의 ‘죽음의 오각형’ 모습을 띠게 됐다.
현역 당시 입학사정관제, 논술, 정시를 모두 준비했지만 반수를 한 김수연(국제학부15) 씨는 “입시생 입장에선 합격 가능성이 낮다고 한 전형을 포기할 수 없다”며 “그래서 모든 전형을 다 준비하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시간도 부족하고 불안감은 가중된다”고 말했다.
최영(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는 입시에 대한 대학의 소극적인 자세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학들이 정부의 각종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혹은 정부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경우 받게 될 여러 불이익을 고려해 교육부의 지침을 따르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여러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에, 입시 관련해서 수십 개에 이르는 입시방식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관(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러한 복잡한 입시제도가 불러올 사회적 문제에 대해 말했다. 류 교수는 “수능 문제가 쉽고, 입시가 복잡할수록 부모의 영향력과 같은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작용할 여지가 커지게 된다”며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효율적이지 못하며 교육을 통한 부와 신분의 대물림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자가 해결하긴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현 입시제도가 갖는 문제점은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 입시 현장에 있지 않은 제 3자에겐 문제의 본질이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입시를 경험했던 당사자가 입시 제도를 바꾸는 주체가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승연(정경대 경제14) 씨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사법고시에 대해서 비판하는 거와 합격을 하지 않고 준비만 하는 사람이 사법고시를 비판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이처럼 고등학생이 입시를 비판하는 건 힘들지만 대학 합격자인 우리는 입시 제도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기에 입시를 비판한다는 게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구교현 팀장은 학생이 입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로 구조적 문제와 수직적 사회를 원인으로 꼽았다. 구 팀장은 “현실적으로 입시를 치러야 하는 고등학생 입장에서 입시에 거리를 두고 그들의 목소리를 낼 매체와 공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학생이 입시제도 문제에 대해 말하면 ‘너 대학 안 갈래?’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간접적으로라도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동의했다. 최영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대해 어떤 비판적 인식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좌절하고 있는지를 수렴해 입시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각 대학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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