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돈키호테(Don Quijote)>가 완간 400주년을 맞았다. <돈키호테>는 유럽 최초의 근대소설로,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권에 번역된 작품이다. 다른 장르로도 각색돼 뮤지컬 과 발레 등으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최근에 해외토픽으로 17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트리니티 탁발수녀원에서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돈키호테>의 독서 포인트를 짚어보고, 우리 주변에서 돈키호테형 인간을 찾아봤다.

철학으로 가득한 근대소설
“포박을 끌러 편하게 가게 내버려 두라고 부탁드리고 싶소(...)하느님과 자연이 자유롭게 한 자를 노예로 삼는 것은 무자비한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이라오.” <돈키호테1> p316.
작품에선 정의와 자유, 평화와 계급제도 타파 등의 심오한 철학을 찾아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도적질을 해 노예로 잡힌 사람들을 풀어준다. 도적질을 한 사람이라도 신과 자연이 부여한 천부적 인권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천부 인권은 18세기 유럽에서 시민계급이 대두되며 등장한 개념으로 돈키호테는 100여 년 앞서나간 근대적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안영옥(문과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돈키호테는 대량 학살을 반대하고 계급을 타파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며 “작품 속엔 이처럼 숨겨진 철학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소설로 꼽힌다. 작품엔 근대성을 구성하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요소가 있다. 당시 시대보다 앞서나간 근대성을 작품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무대 밖의 세계와 무대 위의 세계가 서로 구분되지 않는 연극 속의 연극이라는 장치가 그것이다. 김경범(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돈키호테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 주체는 돈키호테의 정체성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까지도 건드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키호테에 투영된 작가의 삶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새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또다시 여드레를 생각한 끝에 ‘돈키호테’라 부르기로 했다. 이 이름에 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듯이 참으로 진실한 이 이야기의 작가들이 이 이름을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우리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이 부르고 싶어하던 ‘케사다’가 아니라 ‘키하다’일 것임이 분명하다. <돈키호테1>, p71
돈키호테의 이름은 본래 ‘돈키호테’가 아니었다. 그는 케사다, 키하다 등 수십 개의 이름으로 불려지다 스스로에게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과 더불어 작품 내엔 다른 등장인물과 돈키호테 고향에 대한 서술도 없다. 이는 주인공이 바로 작가 세르반테스의 삶이 투영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는 개종한 유대인이다. 16세기 당시 스페인은 기독교 순혈주의가 만연했다. 스페인인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순수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했다. 피의 순수성을 강조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국가는 비기독교의 피가 섞인 사람을 억압했다. 국가는 아프리카계 무어인, 유대인 등 이교도를 색출해 고문했으며,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대인은 스페인을 떠나거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려야 했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대신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존재했다. 안영옥 교수는 “개종한 유대인인 세르반테스 역시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창출해서 자신의 삶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광기

▲ 일러스트| 김채형 전문기자

돈키호테의 광기는 긍정적이다. 그의 광기는 자신만의 진리를 진득하게 추구할 줄 아는 정신으로 해석된다. 돈키호테를 단순히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싸운 미치광이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돈키호테는 광적인 독서를 해왔고, 특히 기사소설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돈키호테는 객줏집을 성으로 보기도 하고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한다. 이러한 행동 모두가 돈키호테의 관점에선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기 꺼려하고 망설이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광기에 빠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조민현(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과) 교수는 “이는 사회 내에서 전체적인 규범에 어긋나는 일탈적 행동이 오히려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역설한다”고 말했다.
한편, 돈키호테의 광기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 존재했던 매너리즘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안영옥 교수는 “당시 스페인을 지배했던 순혈주의 사상을 벗어나기 위해선 이성이란 ‘우물’ 밖으로 나와야 했다”며 “세르반테스는 그 방법으로 이성을 탈피하고 이상에 미친 돈키호테란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미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당시 사회가 돈키호테의 광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 죽음이 죽음으로도 /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 깨닫노라. /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 세상은 그가 무서워 /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 그가 미쳐 살다가 /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돈키호테2>, p886
결투에서 패배한 돈키호테는 기사를 그만두고 본명인 알론소 키하노로 귀향하게 된다. 그리곤 우울증에 걸려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진정한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다. 한 때 돈키호테였던 ‘알론소 키하노’가 죽은 것이다. 전념할 꿈을 잃은 그는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안영옥 교수는 “돈키호테가 이루고자 했던 꿈은 이상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키호테는 떠나는 모험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산초는 공작 부부에게 우롱당하며 좌절을 맞는다. 일부 독자는 이를 두고 “꿈과 이상을 좇는 돈키호테도 결국 실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가면에 불과하다. 안 교수는 “검열이 심했던 당시 상황에선 이상을 추구하라고 말하는 소설을 쓸 수 없는 시기였다”며 “세르반테스는 이를 작품 속에서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돈키호테>는 진리를 깊숙이 숨겨놓은 작품이기에 독자가 심층적이고 다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안영옥 교수는 “시대적, 문화적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이 작품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며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진리를 꿰뚫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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