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관 6층 복도의 앰프에서 흘러나온 웅장한 민중가요가 학생회관 전체에 가득 퍼진다. 투쟁의식을 담고 있는 노래에 맞춰 여섯 명의 학생이 몸짓을 이어간다. 한쪽 다리는 곧게 펴고 다른 다리는 무릎이 땅에 닿을 정도로 굽힌다. 날카로운 손끝을 크게 휘두르는가 하면 이내 주먹을 굳게 쥔 채 바닥으로 내려찍는다. 
이들의 동작은 ‘문선’이라 불린다. 문선은 민주화운동이 진행되던 1980년대 중반 민중가요에 몸짓을 붙이던 행위인 ‘문예선동’을 줄인 말로 알려져 있다. 민중가요와 문선이 일상에 자리 잡았던 8,90년대와는 달리 현재는 공과대, 사범대, 정경대 등 일부 단과대에서만 문선의 맥을 찾을 수 있다.

▲ 3월 중순부터 4월 18일까지, 정경대 행정5반 문선단의 하루는 문선으로 시작해 문선으로 끝난다. 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

문선단은 각 학과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온다. 그중에서도 정경대 행정5반의 문선단은 조금 다르다. 계승되는 문선을 익히기보다는 문선을 ‘창작’하는데 힘을 쏟는다. 올해 행정5반은 4.18을 기념하기 위해 15학번 20명으로 3개의 문선단을 꾸렸다. 두 문선단은 빠른 박자에 격렬한 동작을 선보이는 ‘전투문선단’이고 하나는 짝을 이뤄 비교적 가벼운 동작을 하는 ‘쁘띠문선단’이다. 이들을 돕는 14학번 ‘문선지원단’도 15명이 있다.
이들은 4.18 구국대장정이 끝난 후 각 과반이 모두 참여하는 ‘정경대 전체판’에서 문선을 선보인다. 문선단 소속이 아닌 학생들도 이날만큼은 민중가요를 크게 따라 부른다. 그 순간 단 한 번의 몸짓을 위해 땀 흘리며 4.18을 맞이하는 그들과 일주일을 함께했다.
문선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하루
문선지원단인 장창엽(정경대 행정14) 씨의 하루는 학생회관 6층에서 시작된다. 후배들의 문선 연습에 필요한 공간을 맡아두기 위해서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학생회관 3층과 6층의 복도는 인기가 많아 아침 일찍 자리를 잡지 않으면 다른 문선단이나 동아리에 뺏기기 쉽다. “보통 아침 7시면 학생회관으로 향해요. 아침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으면 아예 학생회관에서 잠을 자기도 하죠.”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사이에도 세 명이 장 씨에게 다가와 혹시 자리를 잡은 것인지 물었다.
문선단은 매일같이 학생회관으로 향한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주중에는 3시간, 주말에는 8시간 이상을 문선 연습으로 보낸다. 3월 중순부터 4월 18일까지, 한 달 동안 4분 남짓의 노래에 동작을 입히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질서정연하게 대형을 이뤄 절도 있는 동작을 하는 이들은 하나의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한 박자에 한 동작을 하다가도 노래가 절정에 이르면 한 박자 안에서 두세 동작을 집어넣는다. 새로운 동작을 만들고 기존의 동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버린다. 동작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막차 시간을 훌쩍 넘겨 추가 연습을 가진 날도 많다. “당연히 힘들어요. 초반에는 이런 연습이 정말 싫었죠. 하지만 모두가 내색하지 않고 동작 하나하나에 온 힘을 쏟고 있더라고요.” 안성민(정경대 정경15) 씨는 요즘 모처럼 치열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며 가볍게 웃었다. “요새 잠자리에 들면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어요. 와. 드디어 하루가 끝났구나.”
부담감을 떨치는 길은 연습 뿐
문선 연습을 하다보면 바닥에 부딪히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충돌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무릎이 시큰하고 손 뼈마디가 욱신거리기 일쑤지만, 그 누구도 연습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음악이 멎어 스피커에서 잡음이 흘러나오는 그때서야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는다. 말없이 주무르는 발목에는 파스를 여러 번 붙였다 뗀 까만 자국이 선명하다.
육체적 고통은 견디면 그만이지만, 매순간 다가오는 부담감은 그들도 떨쳐내기 힘들다. 정경대 전체판에서 다른 과반 문선단에 비해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앞선다. “문선을 보러와 준 친구들은 물론 지원단 선배들에게도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문선을 이미 경험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과거의 문선 영상을 보다보면, 당시의 선배들과 비교해 저희들이 너무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막연함이든 두려움이든 어떤 형태로든 다가오는 부담감을 떨쳐내는 방법은 오로지 연습이다. 끊임없이 ‘다시, 다시’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 휘젓는 손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든다. 과제와 시험 준비에 몰두하기에도 모자란 4월의 하루를 학생회관에서 꼬박 새는 ‘전통’을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 이어가고 있을까.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저 역시 처음에는 ‘대체 이런 걸 왜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4.18의 가치가 문선을 하면서 점점 와 닿았어요. 불의에 저항하자는 그 정신이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김훈섭(정경대 정경15) 씨의 대답이다. 이내 냉수로 목을 적신 그는 지금껏 그랬듯 대열로 돌아가 문선의 첫 동작을 준비했다.
학생회관 6층 복도의 앰프에서 흘러나온 웅장한 민중가요가 학생회관을 휘감고 민주광장까지 가득 퍼진다. ‘길을 열어라 청년이여, 역사를 다시 건설할 청년의 시대를 향해.’ 가사 한마디 한마디를 또렷하게 곱씹으며 문선단은 오늘도 동작을 이어간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