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의 메카’로 불리며 많은 이들이 찾았던 대학로는 현재 차가운 기운만 감돌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와 경영난으로 소극장들도 하나씩 떠나고 배우들의 경제적 사정도 넉넉지 않다. 연극배우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한 달 77만 원의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이경미(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 교수는 한국의 연극이 현재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말한다. 연극이 위기와 직면해있는 상황에서 본교 학생은 연극을 위해 오늘도 무대에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 사진 | 차정규 기자 regular@kunews.ac.kr


“연극은 스컹크 같아요. 냄새나요. 땀 냄새.” 권면철(문과대 중문13) 문과대 소모임 연극회 회장이 연극을 동물과 비유하며 답한 말이다. 교내에도 연극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학생들이 있다. 본교 문과대 △노어노문학과 △불어불문학과 △서어서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 연극 소모임 학생들이다. 문과대 소모임 연극회에는 다른 연극 동아리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작품은 전공과 관련된 희곡을 선택하고, 공연은 원어로 이뤄진다. 문과대 연극회 소모임 회장들을 만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연극이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원어로 연극해요
문과대 소모임 연극회 중 불어불문학과, 서어서문학과, 중어중문학과는 원어로 연극을 한다. 김찬수(문과대 서문14) 씨는 원어공연에 있어 작품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품은 지도교수님이 직접 추천해 주세요. 교수님의 추천을 통해 스페인 희곡 작품을 접하죠. 도서관이나 논문을 통해 대본을 구하고 번역하기도 해요. 작년 정기공연 때는 <프라도 미술관 싸움의 밤>이라는 작품을 공연했어요. 스페인의 역사와 세계적 화가인 고야(Goya)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었죠.” 권면철 씨는 러시아 연극연구회의 역사가 깊다고 말한다. “1975년 안톤체홉의 <청혼>을 시작으로 지난 40년간 러시아 문학작품을 공연해왔어요. 총 35회의 정기공연을 열었고 안톤체홉을 비롯하여 푸쉬킨, 고골, 톨스토이, 막심 고리기 등의 고전 작품을 무대에 선보였습니다. 최근에는 밤삘로프, 류드밀라 라주모프스까야 등 문학, 작가, 연극에 관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죠.”

▲ 문과대학 연극회 소모임 학생들은 다양한 고전 희곡 작품을 원작으로 매년 정기공연을 열고있다. 사진 | 연극회 소모임

원어로 진행되는 연극이 갖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정민성(문과대 불문12) 씨는 원어로 공연 할 때의 장단점을 이야기한다. “원어로 공연을 하면 대사를 그대로 외우고 표현하면 되기에 오히려 배우는 편해요. 그리고 원어로 하면 있어 보이잖아요.(웃음) 다만 원어 공연은 관객과 배우의 소통에 있어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자막을 띄워도 꼭 문제가 생기고, 전달력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상상도 못했던 배우생활
그들이 처음부터 연극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호기심과 과거의 추억 때문에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 권면철 씨는 “연극을 본 적도 한 적도 없었어요. 심지어 연극이 뭔지도 몰랐죠. 그냥 호기심에 시작했던 연극이 제 대학생활에서 메인행사로 자리 잡았죠” 김진호(문과대 영문13) 씨는 어려서부터 상황극을 좋아했다. “문득 어렸을 때 혼자 거리를 걸으며 중얼거리던 게 생각났어요. 제가 한 게 바로 상황극이었죠. 그때 기억을 무대에 녹여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조금 특별한 계기도 있다. 정민성 씨는 선배에 이끌려 억지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불문과에 남자가 두 명 밖에 없었죠. 연극반에 강제로 차출됐어요. 저는 연기하기 싫어서 부산 집으로 도망도 갔어요. 결국 선배들에게 혼나고 서울로 다시와 연극했죠. 지금은 연극에 빠져있어요.”
배움을 위해 연극을 선택한 학생도 있다. 김찬수 씨는 스페인어에 관심 있어 연극반을 선택했다. “소모임을 선택하던 중 스페인어 원어 연극학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스페인어를 잘하진 않지만 스태프로 활동하더라도 배울게 많을 것 같아 시작했죠. 그런데 지금은 회장이란 자리에서 서문과 연극회 ‘Pasió́n’을 이끌어 나가고 있어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매력
배우는 극중 역할을 표현해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은 이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김찬수 씨는 잠시라도 타인의 삶을 살 수 있어 매력있다고 말했다. “연극을 하는 가장 큰 매력은 잠시라도 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군인, 마녀, 선생님 등 평소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체험하는 것이 매력있어요” 그들이 맡는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감정에 몰입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권 씨는 몰입에 있어 중요한 것이 상상이라고 말했다. “제 개인적인 감정이 배역에 들어가면 몰입이 아니에요. 배역이 나라고 생각 해야 해요. 나이부터 성격, 생활배경, 경제적 상황까지 모두 고려하고 상상하죠. 몰입이 안 될 때는 다른 스태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요. 가끔 너무 몰입을 하면 오히려 대사도 못 하고 다른 배우와의 호흡을 망가트릴 때도 있어요.”
김진호 씨는 가끔 연극이 끝난 뒤에도 몰입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제 자아와 캐릭터 사이에 혼란이 왔어요. 당시 인간의 욕망을 갈구하는 살인자 역할이었죠. 연극 연극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욕망을 추구하던 캐릭터에 사로잡혀 원래 내 모습이 아닌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다 같이 만드는 무대
화려한 배우들의 연기 뒤에는 ‘제2의 배우’도 있다. 비록 무대에 서지는 않지만, 무대 위의 배우보다 더 값진 일을 해내는 스태프다. 권면철 씨는 스태프가 차지하는 공이 크다고 말한다. “연극만을 위한 전문적인 무대가 없으니 저희가 다 설치해야 해요. 보통 회원은 40여 명 내외로 운영되는데 실질적으로 무대에서는 회원은 15명 정도예요. 이 인원으로 조명부터 음향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설치하죠.”
김찬수 씨는 세세한 소품까지 챙기는 것도 스태프의 몫이라고 말했다. “연극 작품에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에 맞는 소품을 설치하고 준비해야 해요. 1900년대 작품에서 기름램프가 아닌 LED램프가 등장한다면 어색하겠죠.”
김진호 씨는 대본 각색도 연극회 모두의 일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존재하는 희곡을 연출가의 의도에 맞게 다시각색 해요. 이때 공연의 새로운 재미와 이야기가 생겨나죠. 따로 작가나 대본을 연구하는 스태프는 없어요. 하지만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과 순수함으로 자율적으로 다 같이 힘을 모아요.”
‘자신감’으로 바뀐 내 모습
다소 상투적이지만, 그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주영혁(문과대 중문14) 씨는 “연극을 통해 잠재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 같아요. 소위 미친 놈이라고도 하죠. 조용하던 사람도 무대에 서면 내면의 모습을 표현할 기회를 얻어요.” 권면철 씨는 뻔뻔함을 얻었다고 말했다. “100여 명의 관객 앞에 떨지 않고 내가 해야 하는 방대한 분량의 대사와 동선을 빼먹지 않았다는 것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대에서 정확히 해내고 나니 자신감이 더 붙었죠.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뻔뻔함도 생겼어요.” 김진호 씨는 방황하는 자신을 연극이 잡아줬다고 말했다. “대학을 목표로 공부만 했던 저도 20대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죠. 하지만 연극을 하면서 삶에 행복을 찾았고, 연극은 지금 제게 너무나 소중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길잡이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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