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비춰지는 대학은 취업만능주의와 재단의 물질주의로 병들어있다. 학문의 전당이었던 대학은 없다. 취업만을 향해 달려가는 학생들은 자기중심적 나르시스트이며 가벼워지기만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3월 27일 진행된 학문소통연구회 워크숍에서 김찬호(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해지는 청소년을 지적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11년 발표한 ‘청소년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36개국 중, 35위였다. 김 교수는 “이는 낯선 존재와 관계를 맺고 원활하게 소통하며, 일을 도모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나타낸다”며 “유유상종의 경향이 짙어지는 사회에서, 타인 대한 이해력과 포용력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창호(사범대 교육학과) 교수 역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의사소통 능력이 바로 글로벌 마인드(Global mind)”라고 했다.

▲ 사진|서동재 기자 awe@

신창호 교수는 고려대가 양성해야 할 인재에 대해 “구체화가 필요하다”며 “자유·정의·진리, 교육구국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대학이 같은 BK21 사업을 갖고 경쟁하고, 누구나 대학에 들어오는 사회이다. 대학이 비슷해져가고 있다. 고등 교육 기관이 나름의 특성화된 철학을 갖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재를 육성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은 전공교육과 교양교육, 이 두 개의 큰 축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 교양교육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몇몇 대학은 교양교육만 담당하는 기관을 하나의 학부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큰 규모로 운영 중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연세대 학부대학, 성균관대 학부대학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에 본지는 본교 교양교육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교양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좌담회를 실시했다. 이번 좌담회는 인문사회계와 이공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3월 27일, 4월 3일에 진행됐다. 6명으로 이뤄진 각각의 그룹은 1,2,3학년 각 2명씩으로 구성됐다.

“본교 교양교육은 71점”
좌담회에 앞서 참가자들에게 본교 교양교육의 만족도 점수(100점 만점 기준)를 물었다. 참가자들의 평균 점수는 71점이었다. 계열별로 나눴을 때는 인문사회계 평균 58점, 이공계 평균 82점으로 이공계가 인문사회계보다 높았다. 인문사회계의 경우, 고학년으로 갈수록 점수가 높아졌다.
가장 낮은 점수인 35점을 준 김훈섭 씨는 “입학 직후 그동안 배운 주입식 교육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사발식을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학 수업도 주입식 암기 교육이 많아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다”고 말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참가자는 95점의 방예림 씨였다. 방 씨는 “전공과 무관하게 들었던 교양들이 어떻게든 생활 속에서 많이 도움이 돼서 좋았다”고 말했다.
점수를 낼 수 없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김용미 씨는 교양교육 과목 간 차이가 심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이공계는 시간표가 거의 정해져 있어 교양에 대한 선택권이 별로 없다”며 “관심 있는 분야라 선택했던 교양은 만족도가 높지만,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들었던 것에 대해서는 낮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 우리가 원하는 교양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위 사진은 연출된 사진입니다. 사진|서동재 기자 awe@

“교양은 ‘비빔냉면의 달걀’ 같다”
교양을 음식에 비유해달라는 질문에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주 메뉴가 아닌 음식을 떠올렸다. 김민기 씨는 ‘비빔냉면의 달걀’에 빗댔다. 그는 “계란은 비빔냉면의 매운 맛에서 위를 보호해준다”며 “교양수업은 보다 심층적인 전공수업으로부터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김훈섭 씨는 전공을 ‘감자탕’에, 교양을 ‘스무디’에 비유했다. 김 씨는 “감자탕에 스무디를 세트로 파는 곳을 본 적이 있다”며 “교양은 전공이랑 상관없어 보이지만 서로 상호작용하고 식견을 넓혀준다”고 말했다.
부정적 의미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김유강 씨는 교양이 ‘돈까스와 함께 나오는 샐러드’와 같다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먹고 싶지 않은데 먹을 게 없어서 건드려야 하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전공 이외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
그렇다면 교양이 대학교육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전공 이외의 분야를 접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서지원 씨는 “빈곤을 예로 들면, 전공에서는 이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지만 경제, 복지 관련 수업에서는 다른 시각으로 빈곤을 바라본다”며 “교양을 들으며 다른 방식의 생각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학생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도 교양의 장점 중 하나로 꼽혔다. 박소원 씨는 “교양 수업은 다른 학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말했다. 서지원 씨는 이에 동의했다. 서 씨는 “토론식 수업의 경우 다른 학과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며 “다른 분야, 처음 보는 시선을 접한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신홍규 씨는 이런 장점들을 ‘경험’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그는 “교양수업이 예측할 수 없는 학습들을 통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느끼고 배우며 성장한다는 측면에서 대학생에게 이롭다”고 말했다.

“깊은 내용 다루지는 못 해”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지만 겉핥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좌담자들은 많은 내용을 짧은 시간에 배우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박소원 씨는 “다른 사람은 수 년, 혹은 평생에 걸쳐 연구하는 것을 한 학기에 다 얻겠다는 것은 욕심”이라며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양을 다루다 보면 들고 나서도 ‘뭘 배웠지?’ 라는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 때문에 전공수업으로 교양수업을 대체한다고 했다.
이공계 참가자들은 교양교육이 인문계 쪽에 초점 맞춰진 것이 아쉽다고 했다. 방예림 씨는 “핵심교양에서 과학과 기술 영역은 이제 이과생들도 들을 수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문과 쪽 과목에 초점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본교의 핵심교양은 7가지 영역(△세계의 문화 △역사의 탐구 △문학과 예술 △윤리와 사상 △사회의 이해 △과학과 기술 △정량적 사고)으로 이뤄져있다. 이 중 이공계 전공에 해당하는 영역은 2가지 영역(과학과 기술, 정량적 사고)이다. 전체 과목 수로 따져 봐도 인문사회계 전공과 관련된 5가지 영역의 과목은 45개, 이공계와 관련된 영역의 과목은 27개이다.

교양교육 비중, ‘현상유지’ 대 ‘축소필요’
그렇다면 전체 대학교육서 교양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인문사회계는 40%대, 이공계는 20%대 이하라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박혜정 씨는 40~50%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박 씨는 “전공에서 얻을 수 없는 지식을 교양에서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여러 지식을 융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원 씨도 40%를 제시했다. 서 씨는 “요즘 사회는 전공 하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구조”라며 “장점을 융합해 나의 상품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전공만 배우는 것으론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교양이 그들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공계 참가자들은 교양교육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유강 씨는 15~20%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교양을 듣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최소한의 문과 소양을 갖추기 위해 들어야겠지만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대부분의 교양 수업은 듣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승희 씨는 15%라고 답했다. 한 씨는 “학년이 올라가면 전공수업만 따라가기에도 어려울 것 같다”며 “교양 수업을 줄이고 전공수업의 비중을 높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를 흔들어 줄 강의면 좋겠다”
그렇다면 좌담자들은 어떤 교양강의를 원할까. 인문사회계 참가자들은 교양 수업이 자신이 가진 기존 통념을 깨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신홍규 씨는 “전공수업은 우리가 이 분야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꼭 배워야 하는 것, 알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덧붙여지는 식의 교육”이라며 “교양수업이 전공에서 생각지 못한 부분을 사고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애리 씨도 “사고를 깨워줄 수 있는 수업을 바란다”며 “주입식 교육으로 답이 정해진 방식이 아닌 학생 스스로 답을 도출하는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공계 참가자들은 교양 수업에서만큼은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학생을 다른 선상에 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종문 씨는 “교양 수업은 주로 서술형 시험을 많이 보는데, 이공계 입장에선 정해진 답이 없고 개인의 생각을 어떻게 측정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이공계와 인문사회계는 전공수업의 방식이 서로 달라 교양에서도 평가방식의 기준을 조금 다르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철학관련 수업을 들은 적 있다는 김유강 씨는 성 씨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는 “철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파이프 사진을 하나 보여주시더니 이건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시더라”며 “생각을 하는 방식을 완전히 달리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공계 참가자들은 과학 교양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예림 씨는 “응용과학, 응용기술과 같은 수업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방 씨는 “의외로 이공계 전공끼리는 교류가 거의 없다”며 “전공과학 간에 너무 고립돼있어 다른 분야의 과학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강 씨도 이에 동의했다. 김 씨는 “기초과학의 여러 분야에 대해 배우고 이들을 융합한 새로운 영역을 알려주는 강의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성종문 씨는 이런 의견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티칭 방식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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