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기업화는 대학사회에서 꾸준히 문제제기 돼 왔다. 중앙대학교 학과 구조조정 문제로 여론이 들끓었고, 일부 대학의 학과들은 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학과가 통폐합됐다. 사립대의 위기라 일컬어지는 가운데 본교는 개교 110주년을 맞았다.
외부인은 현재 대학의 역할 및 고려대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이자 정치발전소 소장인 박상훈 대표를 만났다.

- 국내 대학, 그 중에서도 고려대의 현 상태를 진단한다면
“국내 대학들은 갈수록 동질화되고 있다. 입시 때 성적으로 매겨지는 가시적인 순위만이 유일한 차이다. 이건 대학의 정체성이 아니라 무정체성에서 매겨지는 ‘어거지 순위’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 학내외적으로 구성원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고려대도 그저 ‘가시적인 랭킹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높아질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되면 고려대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없게 된다. 특정 대학을 떠올리면 그 대학만의 정체성이 떠올라야 하는데, 고려대뿐 아니라 국내 대학들은 뚜렷한 그 대학만의 정체성이 없다.
지금까지 선출된 총장들은 재단과 관계가 깊었다. 앞으로도 계속 재단의 영향 범위 내에서 총장이 선출된다면, 총장이 개혁을 위해 나서긴 힘들 것이다. 최근 논란이 불거졌던 중앙대 학과구조 선진화 계획이 ‘기업의 밀어붙이기식’ 대학 경영이라는 학내 반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국내 사립대학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 재단은 학교의 행정 및 운영, 교육권에 대한 관여를 절제해야한다. 재단이 학교를 사기업처럼 다룬다면 대학총장도 결국 학교 재단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아이디어나 합리성만을 보여주게 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총장이 학생선발의 기준, 교수충원, 학내자원 분배 등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실행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학의 공공성과 자주성의 회복을 어렵게 하고, 학내구성원의 자유로운 사유와 정신적 에너지 발현을 막는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대학이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가지는 것에 반대하고 싶다. 대학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대학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선택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명제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국내 대학은 그 전제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모든 대학 내에 불합리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고려대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대학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형성해내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싶다면, 우선 학내문제부터 해결해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다.”
- ‘대학이 위기에 처했다’는 담론도 있다
“대학의 위기는 1990년대부터 얘기 돼 왔다. 위기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학 사회는 때때로 반성적 성찰을 하며 위기 담론을 펼치지만 대개 정형화 된 위기 담론을 겉핥기식으로 건드리기만 한다. 이래서는 대학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내기 힘들다. 위기론을 설정하며 문제의식이 있는 ‘척’만 하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반복되는 게 오히려 위기다.
시기에 따라 위기론도 다르게 보고 인식해야한다.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대학이 기여한 바가 컸지만, 현재 대학이 그 때와 같은 기준을 원하는 것인지는 재고해야 한다. 지금의 대학은 특별한 소명이 주어진 곳이 아니라 특정 나이면 누구나 다 가는 곳이 돼 버렸다. 그렇기에 대학에 대한 사회적 역할의 인식도 달리해야 된다. 과거엔 소수가 가족구성원의 희생과 도움으로 고등교육을 받았었다. 그 때 당시 정의구현을 위해 노력하거나 사회 공동체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이 교육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젠 시기가 변했다.”
 - 위기 담론을 극복하기 위해 학내구성원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균형이다. 대학은 이제껏 인문학 문제나 지식인이 갖춰야하는 보편적 문제에 아예 무관심하진 않았다. 오히려 대학 내 구성원이 우리나라 대학의 위기를 비현실적으로 본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필요하다. 대학은 겉으로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고결한 목적을 앞세운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기능 증 하나는 노동시장의 진입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이를 비정상처럼 여기는 풍토는 오히려 대학의 위기 담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 훈계를 하며 현실에 솔직하지 못한, 외려 위선적인 진단일 수 있다. 사회적인 책임을 부과해놓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대학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대학이 노동시장 진입 전 최종 교육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조직이 담론 부족의 책임을 개별구성원에게 전가하는 것도 좋지 않다. 이는 문제의 원인을 오진하거나 호도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 스펙을 열심히 쌓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그들의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열정을 발휘할 기회가 봉쇄됐기에 학생들이 정작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게 됐다. ‘좋은 시민은 좋은 정치가 만드는 것’처럼 좋은 학생은 좋은 대학이 만든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주문하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줘야 한다. 학생들에게 취업문제에만 관심 갖지 말라고 얘기하는 건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갖는 생각과 선호, 의지라는 건 기회와 조건의 함수다. 대학생들이 사회참여와 학교문제에 대해 열정과 관심이 식었다는 얘기는 결국 학교가 나빠졌다는 뜻과 같다. 학생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대학은 각 대학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애써야한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자유롭게 발언하는 장을 마련해야한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조직적 에너지가 발현된다면 대학은 한국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의미 있는 독립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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