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겸 교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고려대학교 학문소통연구회 회장

1776년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분업이 가져온 놀랄만한 생산성 향상을 찬미한 이래, 세계는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영역에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 주력해왔다. 오늘날 전문화된 분업 체계의 발전은 스미스 시대의 사람들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부와 삶의 편리를 창출해냈다. 그 모두가 농부, 엔지니어, 의사 등과 같이 한 분야에 전념한 전문가들 덕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분업화·전문화가 늘 좋은 결과만 낳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찍이 베버는 현대 사회 발전의 근본 추동력을 합리화로 정의하며 분업화와 전문화가 인간 사고와 영혼을 옥죄는 쇠우리(iron cage)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사람들이 한 분야에만 몰두하도록 강제되면, 그들이 가진 사고방식과 가치 지향의 다양한 잠재력이 억압되고 그러면 세상을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하는 창의적 사고와 그에 바탕을 둔 학문적, 사회적 소통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21세기를 맞이하며 학문 융합이나 통섭, 학제 간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고 생각한다. 지난 세기 우리가 이뤄낸 산업화와 경제 발전은 어떤 측면에서는 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진국에서 이미 개발해놓은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따라 하기만 해도 그들의 업적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추격 단계를 넘어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면서 더 많은 가치들이 각축하는 디지털 세계화 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할 방법을 찾는 창의적 사고가 어느 때보다 크게 요구된다.

대학은 단순히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만이 아니다. 대학을 일컫는 ‘큰 배움’에는 자기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 특히 우리 고려대학교는 어떻게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학문 융합과 창의적 사고의 토대가 되는 소통의 의미부터 짚어봤으면 한다. 세 차원으로 나눠 이야기해보겠다.

첫 번째는 수평적 소통이다. 학문 융합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저 주어진 과제에 따라 단순히 다른 분과 학문을 묶는 소위 ‘블록 쌓기’ 식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융합의 기본 전제는 개별 학문이 그들 나름의 연구 목표와 방법론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 증진이라는 근본 목표를 공유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융합적 사고와 연구는 각각의 분과 학문이 어떤 방법으로 어떤 성취를 이뤄냈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데서 활성화될 수 있다. 즉, 교수라면 연구실에만 갇혀있지 말고, 서로 만나 지금 수행하는 연구가 무엇이고 어디에서 어려움에 봉착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학생들도 그룹스터디나 동아리 활동에서 비슷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좀 더 격식을 갖춘 대화와 토론을 원한다면, 매월 개최되는 학문소통연구회 워크숍을 활용해도 좋다.

두 번째는 수직적 소통이다. 수평적 소통과 달리 교수와 학생 간의 소통은 예상외로 드문 일처럼 보인다. 강의 시간을 제외하면 학생과 교수가 학문적 이슈든, 사회적 이슈든 함께 모여 진지하게 대화하고 토론할 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강의실에서조차도 학생 수가 많거나 대형 강의라면 역시 소통의 기회는 크게 줄어든다. 만약 학생들이 자기 세대의 제약을 넘어 좀 더 창조적이고 개방적인 사고와 지혜를 배우고 싶다면, 우선 학문과 인생의 선배인 교수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달리 선생이 아니다. 앞에 태어난 사람들의 연륜과 성과를 무시한 창의란 헛된 공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학생에게 교수는 여전히 어려운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변 동료들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자신들도 배운다는 말을 할 때가 많다.

세 번째는 대학과 사회 간의 소통이다. 과거 대학생은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교수는 시대의 양심으로 존중받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지금에서는 학생이든 교수든 자기 공부, 자기 과제에만 몰두해 상아탑 밖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보고 듣는데 꽤나 무관심한 듯하다.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정보와 지식과 지혜가 대학 안에서만 돌고 돈다면 얼마나 독창적인 생각이 자라날까? 그래서 여러 산학연 프로젝트도 좋지만, 학생들이 다양한 계층과 직업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기회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내가 함께 했고 지금도 자주 만나는 고려대학교 사회봉사단 학생들은 단지 봉사와 나눔의 기쁨만 얻는 것이 아니라 탈북 주민, 독거노인, 저소득·다문화 가정 자녀들과 만나 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듣고, 느끼고 배우기도 한다. 나는 봉사단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그런 경험이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사고의 토대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소통이 학문 융합과 창의적 인재 양성의 방향이라면,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키워드 강의’(Keyword Lectures)를 제안하고 싶다. 키워드 강의는 특정 소재를 중심으로 여러 분과 학문의 교수와 연구자들이 강의를 함께 진행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철도를 키워드로 삼았을 때 우선 철도나 기차, 전철을 다룬 문학을 가르칠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설국열차>, <은하철도 999>, <안나 카레리나> 말고도 강의에서 다룰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학적 관점에서 산업 혁명 시대 철도가 가져온 변화를 탐구할 수 있고, 기술공학에서는 증기 기관의 원리뿐 아니라 오늘날 최신 고속열차의 작동 원리를 가르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경영경제학에서는 철도 산업의 관점에서 그 현황과 ‘유라시아 대륙철도’ 같은 발전 잠재력을 말할 수 있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실제 철도기관사를 강사로 초빙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철도’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문학, 역사, 산업과 기술, 실제 현장의 다섯 가지 분야를 망라하는 강의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런 잠재력을 가진 소재 또는 키워드는 무궁무진하다.

시대는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내가 아는 고려대학교는 지난 역사에서 언제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왔다. 지금 시대가 창의적 인재를 요구한다면, 다차원적인 소통과 새로운 강의로 그런 인재를 키울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기 전문 분야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무지하지 ‘않기를’ 선택한 고대인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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