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생활 2년여가 지나면서 생긴 향수병은, 한국이 가까이 있어서 더 절실한 듯 했다. 일견 생긴 외모도 비슷하고 문화적 환경이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피차간에 결코 융화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처음에는 그것이 경제수준의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여졌다-, 게다가 나의 개인적 특수성-이미 상당한 사회생활을 거친 만학도-이 가끔 주체할 수 없이 향수에 빠지게 하곤 했다.

그럴 때 헤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북경을 떠나서 살 때 어떤 것들이 그리워질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단연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로수이다. 북경은 모든 거리에 가로수가 있다. 작은 길일수록 그것은 오래된 길이기 때문에 더 큰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곳이 많다. 종류도 다양하다. 더러는 포플러나 버드나무들도 있으나 대개는 꽃이 아름다운 나무들이다.

북경중심을 가로지르는 장안가의 목련은 가히 환상적이다. 꽃의 작은 크기로 나무의 연령을 짐작하게 하는 이 목련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처음 이 목련꽃을 보았을 때 막 꽃봉오리가 터지고 있었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장안가의 북쪽으로 접한 자금성 주변의 길들은 크고 오래된 나무들로 하여 거의 숲이라 할 만하다. 고색적인 주변환경과 어우러져 역사적 분위기를 한층 돋구어준다. 도시 곳곳에 오동나무도 눈에 뜨이고, 하얀 꽃송이가 구름처럼 피어나는 나무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많은 나무들 중 하나, 제자리를 잡지 못한 듯 어색해 보이는 것은 소나무이다. 그런데도 소나무가 꽤 많이 보인다.

학교 근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아카시아. 5월에 하얗고 큰 꽃송이에서 진한 향기를 날리는, 멋대로 가지가 퍼져나가는 그런 아카시아가 아니다. 이 아카시아는 7, 8월에 작은 황록색 꽃송이가 열리고 은은한 향기에 절로 숨을 크게 들이쉬게 한다. 전체적으로 소박하나 품위있는 모습으로 작은 길에서는 쉽게 터널을 만든다. 이 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4월에 새잎이 돋을 때이다. 길 저 끝까지 아련한 초록의 대열을 보면서 나는 새롭게 힘을 내곤 했다. 북경의 칙칙한 분위기에 질려 있다가도 가만 눈을 들어 길가의 나무들을 보노라면 북경이 또 그런대로 살만한 곳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가을이 오고, 추석날이면 우리는 장성 아래마을에 갈 것이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두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그 마을은 소박한 중국산촌마을이다. 그 마을에서는 20분만 올라가면 바로 장성이다. 견고한 모습으로 수리되고 복원되어 있는 그런 장성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나타나는, 과거만이 존재하는 옛날의 그 장성이다. 산아래 마을 사람들은 더러 장성의 돌을 들어다 마당에 벤치를 만들기도 하고, 일부 몰지각한(?) 야영객들은 성곽 위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양고기를 구워먹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이 그곳에서는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즐겁다. 순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작년 추석날 저녁, 나와 몇몇 친구들은 그 장성에 올라 간단한 음식을 펴놓고 장성을 딛고서 한국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였다. 그리고 달을 보며 소원도 빌었다. 이번 추석날에도 다시 그곳에서 달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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