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림은, 내가 절박하지 않은 그림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은 그리지 않아요. 이게 내 철학이에요.”
김호석 작가의 전시 ‘틈’이 본교 박물관에서 7월 6일부터 8월 16일까지 한 달여간 열린다. 김 작가는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미술계에 데뷔했고, 1999년에는 역대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한국 전통의 화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내는 한국 수묵화의 거장, 김호석 작가를 만나봤다.
 

인간의 정신을 담은 수묵화
김호석 작가는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수묵화를 접했다. “할아버지께서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였어요. 그래서 제가 5살 때부터 조선의 얼과 상징을 배워야 한다며 갓 쓴 독선생(獨先生)을 두고 수묵화를 그리게 하셨죠.” 또한 그는 산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선비의 정신을 익혔다. “할아버지께선 소나무가 굽었다고 소나무의 뜻까지 굽은 것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선비정신을 닮은 소나무의 정기를 그려야 한다고 배웠죠.”
이때부터 김호석 작가는 인간의 정신을 담은 수묵화의 매력에 빠졌다. “먹으로 사람의 얼을 그리는 수묵화는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드높은지 보여줘요.” 그는 인간의 정신을 나타내는데 하나의 색을 내는 먹이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먹은 가장 단순한 것이 가진 최고의 진리를 표현해요. 단색의 먹이지만 먹의 농담(濃淡)으로 최대 오십 가지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어요.”


비유·은유·상징으로 뜻을 전해
김호석 작가의 작품은 소재만으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사물을 대상화해 그 뜻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면 순간적인 감정을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즉흥적인 느낌은 단발성에 그쳐요. 그렇지만 비유와 은유, 상징은 작품에서 느꼈던 감정을 오래가게 하고 사람을 행동하게 하죠.” 김 작가는 이것이 수묵화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수묵화는 형상에 갇혀 있으면 제대로 된 해석을 할 수 없어요. 그림은 소재일 뿐,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야 해요.”
이어 그는 대조와 조화가 자신의 작품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극과 극이 만나 조화를 이뤘을 때 좋은 작품이 돼요. 예를 들어 수묵화를 그리는 먹은 불의 속성이 강한 재료죠. 먹은 나무를 태운 재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먹이 반대 속성인 물과 만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해요.”
김호석 작가는 본인의 삶과 작품세계에서 장식의 미(美)가 아닌 여백의 미(美)를 추구한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삶에서도, 작품에서도 본질을 드러내고 뼈만 추릴 수 있어요. 지나치게 꾸미는 사람은 그 사람이 허하다는 것이고, 자신이 없는 작가는 작품에 여백을 두지 못하죠.”


문제의식을 화폭에 담다
김호석 작가는 작품을 구상할 때 이 작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한다. 그가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낸 것도 깨어 있는 문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 사건이 터졌을 때 울분을 토했어요. 시간이 흘러 대중이 이 사건을 잊거나 혹은 슬픈 감정에만 파묻히지 않도록 작품으로 분노를 담담하게 표현했어요.”
김호석 작가는 등단 이후 근현대 사건을 주제로 한 역사화를 많이 그렸다. <열사의 행렬1-죽음을 넘어 민주의 바다로>는 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 투쟁을 하던 명지대 학생 고(故)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사복경찰 체포조)에 집단구타를 당해 사망한 ‘강경대 사건’을 다뤘다. 이때 직접 그 사건을 목격한 김 작가는 고(故) 강경대 열사의 장례식 행렬을 가로 185cm, 세로 97cm의 큰 화폭에 담았다. “누구도 강경대 사건을 그리려 하지 않았어요. 저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면서 강경대의 그림을 구상했죠.”
김호석 작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염원하기 위해 역사화를 그린다고 설명했다. “역사는 반복되죠. 우리는 잘못된 역사가 미래에 반복되지 않도록 지난 과거를 성찰해야 해요. 이걸 역사화를 통해 설명하고 싶었어요.”
김호석 작가의 작품에는 스님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이것이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는 <성철스님 초상>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성철스님을 보면 산에서 나무해오는 사람의 모습이에요. 실제로는 열심히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득도해 한국 최고의 도승이 됐죠. 작품은 성철 스님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에게 겉을 치장하지 말고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어요.”


북아시아 미술을 새로운 동력으로
김호석 작가는 조선시대에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 수묵화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수묵화의 고유한 특성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중국의 수묵화를 ‘임모(臨摹)’한 한국 수묵화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임모’는 원작을 대조해서 윤곽을 본뜨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수묵화는 작품에서 인간의 계급이 드러나요. 조선 사대부들의 그림이 중국 미학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죠. 반면 조선시대 이전의 한국 수묵화에는 자연 앞에 겸손한 인간이 있어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린 ‘다시점(多視點)’기법이 쓰이기도 했죠. 이것이 중국 미학체계에서 벗어난 한국 수묵화 특유의 매력이에요.”
김호석 작가는 북아시아 미술을 우리 시대 미술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북아시아 지역을 수년간 60여 차례 방문하면서 북아시아 미술에 영감을 받아 <조드>, <하늘에서 땅으로>, <경계> 등 많은 작품을 그렸다. “지금의 한국 수묵화는 고구려 수묵화의 장엄함을 잃었어요. 북아시아 미술에 남아 있는 거침없는 유려함과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 찾아 한국 수묵화의 본질을 지켜야 해요.”
끝으로 김 작가는 수묵화가 갖는 의미와 가치에 집중했다. “서양화에서는 그림을 잘 그렸을 때 ‘근사하다’, ‘기가 막히다’라고 표현해요. 반면 동양화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집중하기에 ‘뜻을 얻었다’라는 것이 품평의 잣대가 되죠.”
그는 전시가 끝나기 전 박물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묵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이번 전시뿐 아니라 한국 수묵화에 대한 관심을 두기를 기대했다.
글|심정윤, 유가영 기자 news@kunews.ac.kr
사진|서동재 기자 awe@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