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 친구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고 10초가 흐르자, 메신저 창은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해졌다. ‘스냅챗’은 수신인이 내용을 확인하고 10초가 지나면 그 내용이 사라져 기록이 남지 않는 메신저다. 젊은 층의 인기를 기반으로 월간 순 이용자 수 1억 명을 넘어섰다. 스냅챗은 페이스북의 10억 달러의 인수제의를 거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기록을 남기는 것에 민감한 현대인의 성향을 파악한 SNS의 위상인 것이다.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에서 최초로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법제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2013년 2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저작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는 온라인 회사에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고 이를 요청받은 서비스 업체는 즉시 삭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잊혀질 권리의 도입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초청해 연구반을 꾸린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찬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공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잊혀질 권리’가 자리 잡지 못한 지금, 삶의 절반 이상을 인터넷과 함께해 온 20대는 자신이 잊혀지길 바란다. 취업에 방해되는 자신의 게시글, 지금 애인과의 관계를 흔들리게 하는 과거 애인과의 사진, 그리고 철없던 시절 멋모르고 올린 부끄러운 기록까지 말이다.

과거 기록이 흉터로 남을까 ‘노심초사’
#1 취업준비생인 A씨는 취업 준비를 앞두고 걱정이 생겼다. 인터넷에 본인의 이름과 즐겨 쓰는 ID를 검색해보니 포털사이트와 SNS 등에 남긴 글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A씨는 20대 초반 트위터에서 정부와 특정 기업을 욕하면서 활발히 활동했다. A씨는 모든 기록을 지우고 싶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미 탈퇴한 계정으론 게시물을 삭제할 권한이 없고, 게시글도 이곳저곳 퍼져있어 일일이 삭제하기가 힘들었다.

취업을 앞둔 20대에게 과거의 기록은 부담스러운 존재다. 자신이 언제 어떤 기록을 어디에 남겼는지 기억하기 힘든 상황에서, 행여나 그 중 취업하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내용이 있진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기업 인사담당자 4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14)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지원자의 SNS를 확인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크루트 홍보팀의 박영진 씨는 “면접과 서류 전형을 통해서는 지원자에 대해 100% 알아볼 수 없기에, 기업에서 지원자의 평소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관심사가 묻어나는 SNS를 참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취업 문화에 따라 지원자들도 ‘보여주기’ 식의 SNS 계정을 만들기도 한다.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14) 결과, 84.2%의 구직자가 취업용 SNS 계정을 따로 운영하는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취업을 위한 SNS를 운영하는 장수현(인문대 북한12·가명) 씨는 “공기업과 사기업 모두 SNS를 기반으로 홍보를 요구하는 대외활동이 늘어났다”며 “스펙도 쌓고, 전공관련분야 대외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SNS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곤HR연구소의 송영웅 대표이사는 “20대에게 SNS는 ‘보여주기’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됐다”면서 “SNS를 통해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대인관계, 공모전 수상경력, 대외활동 경험 등을 강점으로 어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 B씨는 결혼을 전제로 남자친구와 1년 넘게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B 씨는 페이스북에서 전 남자친구와 연애할 당시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다. 놀란 마음에 사진을 얼른 삭제했지만, B씨는 예전 연애 흔적이 어딘가에 또 있을까 불안해졌다.

20대는 연애에서도 인터넷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터넷 사용이 삶의 일부가 되면서, 20대는 이를 통해 애인과의 일상을 기록하고, 추억을 공유한다. 하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겼던 기록이 나중에 발목을 잡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발견된 과거 애인과의 흔적이 현재 애인에겐 불쾌감을 줄 수 있고, 심하면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기록엔 전 애인의 흔적뿐 아니라, 과거 자신의 적나라한 치부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성형 전 사진이나 성관계 동영상, 청소년 시절 생각 없이 찍었던 신체 사진 등은 무엇보다도 숨기고 싶은 흔적들이다. 쌍커풀 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 백주연(23, 가명) 씨는 SNS를 일절 하지 않는다. 그는 “남자친구에게 성형수술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며 “혹시라도 과거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 수 있어 SNS 계정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연애하지 않는 20대에게도 인터넷 기록은 관리의 대상이다. 결혼정보업체 가연에서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2013) 결과, 약 70%가 소개팅 상대의 SNS를 미리 검색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학생 한수미(23, 가명) 씨는 소개팅 상대의 SNS를 미리 살펴보곤 한다. 그는 “소개팅 전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다”며 “SNS를 통해 그 사람의 과거와 인간관계를 확인한다”고 했다.
이처럼 20대가 인터넷에 남긴 기록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송영웅 대표이사는 “기술이 발전하고 젊은 사람들이 SNS 등의 인터넷 매체를 많이 활용하다 보니, 인터넷이 누군가의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장이 됐다”고 말했다. 김형중(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인터넷에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가 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묵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라며 “정보의 이동 속도가 빠르니 신중하게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록을 삭제해드립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예전 기록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세탁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디지털 세탁소는 개인의 정보와 게시글 등은 물론이고, 사진이나 동영상도 대신 삭제해준다. 통계청이 2014년 발표한 유망 산업 분야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부터 디지털 세탁소업을 시작한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의 경우 연간 약 2900건의 개인의뢰, 220건의 기업의뢰를 받고 있다. 김호진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대표는 “10대와 20대가 전체 이용자의 90% 정도를 차지한다”며 “개인신상정보, 사진과 동영상 유출, 포털 검색결과 삭제와 관련된 의뢰가 많다”고 말했다.
게시물 삭제는 그 유형에 따라 방법이 달라진다. 문서의 경우는 관련 자료들을 모두 모아 빅데이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키워드별로 분류한다. 분류 후에는 직원이 직접 삭제할 만한 자료인지 판단해 각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한다. 동영상은 제목이나 글을 통해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모습을 패턴화해서 검색한다. 김호진 대표는 “동영상의 경우 웹하드, 토렌트 업체에 일일이 삭제 요청을 해야 해서 비용이 꽤 비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의 디지털 세탁소는 저작권법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 정보에 대한 삭제 기준과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잊혀질 권리에 관련된 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디지털 세탁소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기록, 남길 때 신중해야
현재 20대는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과 함께해온 최초의 세대이다. 이들은 오프라인 못지않게 디지털 문화에 매우 익숙하다. 이요훈 IT 전문 칼럼니스트는 “20대는 이전 세대보다 인터넷에 많은 흔적을 남기면서 살아왔지만, 올바른 인터넷 리터러시(Internet literacy, 인터넷의 내용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교육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수한(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한 20대는 정제되지 않은 내용을 즉흥적으로 남기는 경향이 있다”며 “20대는 취업, 결혼 등 중요한 이슈를 앞둔 세대여서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SNS가 널리 사용되면서 한 번 남긴 기록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기 쉽다. 김수한 교수는 “이제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기록을 검색해볼 수 있는 사회”라며 “수많은 정보가 축적되는 디지털 사회에 대한 공포감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가 과거에 올린 글이나 사진이 뒤늦게 논란이 되는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다. 얼마 전 개그맨 장동민 씨는 1년 전 팟캐스트에서 발언했던 내용이 논란이 돼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요훈 칼럼니스트는 “이런 현상은 단순히 20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시대의 흐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스스로 디지털 시대의 위험성에 대해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지호(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가 생산하는 정보가 모두 저장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승주(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외국 SNS를 사용하고 있는데, 외국 기업들은 관련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며 “이용자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글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무심코 남겼던 인터넷 기록이 훗날 삭제하고 싶은 흔적이 되기도 한다.


사진|서동재 기자 a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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