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포털 게시판, 블로그 등에 올린 글은 당연히 자신이 원하면 수정이나 삭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취중에 또는 사춘기에 올린 글을 제정신을 차린 후 지우고자 할 수 있다. 어차피 그런 수정이나 삭제의 기능을 제공하지 않아 이용자의 실수를 영구히 가혹하게 처벌하는 인터넷서비스는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또는 도태되지 않더라도 소비자보호의 원리가 그런 자기삭제 및 수정 기능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터넷업체들은 수많은 무료이용자의 페이지뷰를 또다른 고객에게 파는 일종의 양면시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 페이지뷰를 이끌어내는 글을 이용자들이 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용자들과 인터넷업체들과 서비스이용권과 글을 맞바꾸는 일종의 거래를 하는 것이며 당연히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자신이 올린 그 글을 수정이나 삭제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잊혀질 권리’라고 부른다면 나는 찬성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대중에게 공개한 글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퍼나른다거나 그 글을 발췌하거나 언급하여 새로운 글들을 생성했을 때 이 새로운 글들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권한 또는 검색결과에서 숨길 권한을 원글의 저자에게 부여할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내가 멋진 이야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고 가정하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껏 퍼가라고 표시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퍼가서 그대로 또는 패러디해서 또는 자신의 논평을 곁들여 자신의 블로그들에 올렸다고 하자.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글을 퍼가거나 발췌하거나 논평한 글들을 모두 지우거나 숨길 권리가 나에게 주어져야 할까? (저작권 문제는 별론으로 하자.)
또는 원래의 글이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 글에는 나에 대한 아무런 허위도 없고 내가 비밀스럽게 보호해왔던 정보도 없으며 도리어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며 했던 연극배우 아르바이트에 대한 정보만 있다.
내가 그 후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나는 이제 과거의 극장 아르바이트 경험이 그 글에 쓰여진대로 타인에게 기억되는 것이 싫다. 나에 대한 글이라고 해서 내가 수정하거나 삭제할 권리가 있어야 할까. (또 글의 저자가 그 글을 삭제하고 수정할 권리와는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되어야 할까.)
그런 권리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타인들의 기억을 조작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자료들을 없애거나 숨김으로써 기억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른 일일까? 나에 대한 글 또는 나의 글을 보고 느낀대로 표현한 것은 내가 아니고 타인들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또는 내가 쓴 글이 그들의 반응의 촉매였다는 이유로 내가 그들의 기억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글을 지울 권리가 있을까?
자기가 올린 원본삭제권을 넘어서는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런 잊혀질 권리는 반문명적이다. 인류문명의 반은 사물에 대한 평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나 소설은 아름답게 보인 것에 대한 ‘아름답다’고 말하는 하나의 평가의 방식이고 내용에 따라 추하게 보인 것은 ‘추하다’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물에는 인간들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 또는 모든 사물은 인간들과 어떤 관계가 맺어질 수 있고 사물에 대한 평가는 항상 인간에 대한 평가로 전화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소가 가혹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는 항상 그 소의 주인에 대한 평가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면 소 주인은 그 내용이 허위도 아니고 비밀도 아닌데 자신에 대한 평가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평가글을 지우거나 숨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더욱 가까이는, 이렇게 진실이며 공개되어왔던 사실들을 자유롭게 다시 널리 알리고 평가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진실유포죄’(형법 제307조의 진실명예훼손죄)를 두고 있어 이미 정보의 유통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여기에 ‘잊혀질 권리’까지 만들어지면 정보유통을 더욱 저해할 것이며 과적이나 감염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터져버린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 등의 재발에 기여할 수도 있다.

박경신 본교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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