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단골 가게가 사라진다는 건 수많은 비밀과 추억을 간직한 타임캡슐이 사라진다는 거야.”
15년간 주인이 바뀌지 않고 안암을 지킨 카페가 10월 사라진다. 정경대 후문 앞에 위치한 ‘골든독(개다방)’이다. 골든독은 1999년 본교 정문 앞에서 개점했고, 2006년에 정경대 후문 근처로 이전해 그 자리를 지금까지 지켜왔다. 하지만 올해 건물주가 가게를 비울 것을 통보했고, 권리금도 못 받을 수 있다. 폐업을 앞두고 골든독 창업자인 최진선(여·46) 씨와 동업자이자 현 점주 박수희(여·39) 씨는 학생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음료를 할인하고, 이벤트 메뉴인 고기 도시락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 사진┃장지희 기자 doby@

인터뷰를 하기 전 레모네이드 한 잔을 주문하자 박수희 씨는 냉장고에서 레몬을 꺼내 솔로 씻고, 직접 즙을 내어 새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었다. “이 레모네이드 만드는데 몇 백 원짜리 인스턴트 레몬 시럽을 쓰는 방법이 있어. 그런데 이제는 장인 정신이 생겨서 비싸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만들려고 해.” 싱싱한 과일로 만든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부엌 맞은편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서 박수희 씨, 최진선 씨와 인터뷰를 나눴다.


박수희 씨는 골든독엔 고대생의 속 깊은 비밀이 구석구석 숨어있다고 했다. 단골 학생들은 연애, 가정사, 취업 등 깊은 고민을 감당하기 힘들 때 이곳 주인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친구한테 말하기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고, 부모에게 말하기엔 걱정 끼칠 것 같은 비밀을 나한테 털어놨어. 나는 학교 밖 카페 주인이니까 비밀이 퍼질 일도 없고, 어른으로서 충고도 해줄 수 있었으니까. 대화장소가 될 수 있다는 건 개인 카페가 갖는 매력인 것 같아.”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주인과 학생들은 친구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골든독 가게엔 단골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2006년 가게를 정경대 후문으로 이전하자 단골 학생들이 나서서 가게를 꾸몄다. 나무에 사포질하고, 골든독의 상징인 개 발자국을 페인트로 찍으며 인테리어 공사를 도운 것이다. 가게에 하나밖에 없는 작은 정사각형 테이블에선 주인과 손님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 주인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배고픈 학생을 위해 늘 저녁을 넘치게 준비했다. 학생들은 커피를 사지 않아도 저녁밥을 같이 먹기 위해 들르곤 했다. 골든독보다 더 자주 불리는 ‘개다방’이란 이름도 학생들이 지은 것이다. 최진선 씨는 골든독을 주인과 손님이같이 즐겼던 공간으로 기억했다. “손님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주인의 마음을 단골들이 알아준 것 같아. 손님이 ‘내 가게’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야 여긴.”

박수희 씨와 최진선 씨는 단골과의 추억이 담긴 이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졸업생들은 취업 후 좁은 골목으로 굳이 새차를 끌고 와 자랑하거나 배우자와 아기를 데리고 다시 골든독을 찾아왔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두 주인은 마지막으로 작은 소망을 밝혔다. “일이잘 풀리면 한적한 곳으로 이전하고 싶어. 우리 가게를 찾는 애들이 편하게 와서 대화하는 아기자기한 장소를 만들고 싶어. 안암 어딘가에서 명맥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써줘. 하하.”


초록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커피향 가득한 부엌, 부엌 맞은 편 벽에 한가득 채워져 있는 단골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이제 볼 수 없다. 하지만 사진 속 가득 차있는 개개인의 비밀과 추억은 두 주인이 마음속에 품고 간직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지트였고, 타임캡슐이었던 특별한 공간이 10월, 안암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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