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연구현장에서 연구소재 구축도 주목받고 있다. 안정적이고 지속성 있는 인프라 구축을 통해 연구소재를 보관하고 필요한 연구자에게 손쉽게 제공하는 ‘은행’이 있다. 연구소재중앙센터에 속한 고려대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과 연세대 의용절지동물은행을 방문해 보유중인 연구소재 데이터베이스와 은행의 활동을 살펴봤다.

감염성 질병의 소재를 공급하는 바이러스 은행

산중턱에 위치한 본교 의과대학 4층에는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이 있다.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의 모체가 되는 본교 바이러스병 연구소(소장=이호왕 교수)는 1973년에 설립돼 바이러스 분리, 배양, 연구와 소재 제공, 연구 및 진단시약개발, 바이러스 종 분리를 한다. 세계 최고의 바이러스 학자로 불리는 이호왕(의과대 의학과) 명예교수가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2005년 연구소재중앙센터가 지정한 본교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은 바이러스학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교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은 병원성 바이러스의 체계적인 수집, 보관, 동정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연구소재를 공급하는 은행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부여하는 바이오세이프티(Biosafety) 레벨 2(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미생물을 다루는 경우) 인 은행은 출입부터 제한된다. 혹시 모를 감염의 위험성 때문에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 방문자들은 출입 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방문자도 흰색 가운과 덧신을 신는 것이 원칙이다.

은행에 들어가자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광미 연구원이 “나가기 전에 꼭 손 닦고 가세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닦는다는 문 연구원은 감염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치료가 가능한 바이러스를 다루지만 반드시 조심해야 돼요. 연구원들은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감염 여부를 확인해요.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는 생물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어 항상 신중해야 하죠.”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의 주요 업무는 연구자들에게 50여 종의 연구 소재를 분양해주는 것이다. 바이러스 관리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연구자가 바이러스를 스스로 배양하는 일은 어렵다.

바이러스 관리는 바이러스가 선호하는 세포주를 선택해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 맞추고 5%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되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숙주인 세포가 신선해야 바이러스가 잘 자라기 때문에 신선한 셀 상태를 유지하는 것 또한 관건이다. “셀 조건이 가장 좋을 때의 모양을 알아야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새로 바꿔줄 수 있어요. 오랜 경험이 쌓여야 최상의 셀 조건을 알 수 있죠.”

연구 소재는 모두 알록달록한 뚜껑이 덮인 작은 유리병에 넣어 영하 78도로 유지되는 냉장고에 보관한다. 장기간 보관이 필요한 것은 질소탱크에 넣어 보관한다. 24시간 가동되는 보관 냉장고는 자가 발전기를 통해 가동된다. “혹시라도 보관 냉장고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이 오게 해놨어요. 한 번은 문제가 생겨 드라이아이스를 지고 와서 급하게 대처하기도 했죠.”

2005년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으로 지정된 후 국내 연구자들은 5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바이러스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이 생기기 전 연구자들은 병원성 바이러스를 글로벌 생물자원센터인 ATCC를 통해 구입했다. 바이러스 구입을 위해서는 1 바이얼(유리병) 당 약 30만 원이, 구입한 바이러스를 안전하게 받아보기 위해서는 170만 원 정도의 운송 비용이 들었다.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은 연구자들이 원하는 형태로 바이러스를 가공해 분양하기도 한다. “바이러스의 RNA 혹은 DNA만 뽑아내서 주기도 해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사람 중에서도 바이러스를 만지기조차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질병에서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병원체의 확보와 연구가 우선시돼야 한다. 본교 병원성 바이러스은행은 이를 위해 감염의 위험성을 감수하며 매순간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질병 치료 연구를 위해 병원성 바이러스 은행은 연구자들에게 양질의 바이러스를 제공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어요.”

감염체의 매개자를 사육하는 의용절지동물은행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옆에 위치한 의과대학에는 ‘의용절지동물은행’이 있다. 연세대 의용절지동물은행은 감염체의 매개 혹은 알레르기 유발 등 직간접적으로 인체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절지동물을 채집하고 사육해 연구자에게 제공한다.

의용절지동물은행에 들어서자 벽에는 수많은 표본이 꽂혀있다. 커다란 정사각형 유리 액자에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 진드기, 모기 등이 표본으로 정리돼 있다. 연세대 환경의생물학교실 용태순 교수는 연구를 위한 표본 보존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표본으로 만든 다양한 연구재료를 이용해서 관련 연구 분양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요.”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십 개의 통에 들어있는 크고 작은 흰색 실험용 생쥐들로부터 나는 냄새다. 안쪽에 있는 암실로 들어가 불을 켜니 플라스틱 통들과 실험용 비커가 즐비해있다. 플라스틱 통 뚜껑은 중간을 뚫어 망으로 덮어 놓았다. 그 안으로는 수 백여 마리의 바퀴벌레가 뒤엉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짙은 갈색 바퀴벌레들 사이에 눈에 띄는 흰색 벌레도 보였다. 이인용 연구원은 “탈피한 바퀴벌레는 하루 동안 흰 상태로 존재하게 되요. 가장 약한 시기이기 때문에 얌전해요”라고 말하며 흰색 바퀴벌레를 집어들었다. 손등에 올려놓으면 다리를 떼버리고서라도 도망가기 바쁜 짙은 갈색 바퀴벌레와 달리 흰 바퀴벌레는 정지된 상태로 웅크렸다.

물이 든 실험용 비커 안에는 진드기가 들어있다. 입이 없는 진드기는 수분을 취하기 위해 체피면을 이용해 수분을 충족시킨다. 이 연구원은 하루를 진드기가 들어있는 비커를 저어주고 바퀴벌레의 먹이와 물을 보충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절지동물을 사육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지만 온도와 습도 관리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5일 동안 휴가를 간 적이 있었는데 온도를 조절하는 기계가 고장이나 모든 연구 소재가 삶아졌어요. 연구 소재를 복구하는데 2년이 걸렸고 그 다음부터는 휴가를 3일 이상 가본 적이 없어요. 아기 다루듯이 항상 신경 써야 하는 아이들이죠.”

이들은 직접 야외에 나가 절지동물을 채집하기도 한다. 진드기나 바퀴벌레 채집을 위해 가정집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다. “가정집 말고도 채집을 위해 산이나 논에 갔다가 오해받아 경찰에 신고 당한 일도 있었어요.”

연구 소재를 분양할 때에는 연구자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해서 제공한다. 혹시 있을 수 있는 균 감염의 문제로 살아있는 절지동물은 분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은행에서는 살충제 개발에 필요한 실험처럼 수요자가 원하는 실험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연구 분야 뿐 아니라 관련 산업분야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용태순 교수는 절지동물이 병원체를 옮기기도 하지만 생태계에는 꼭 필요한 존재라 강조했다. “먹이사슬 중간에 있는 절지동물이 멸종하게 된다면 생태계 질서는 무너질 수 있어요. 학습된 두려움으로 절지동물에 대한 혐오를 느끼지만 생태계의 조화를 위해서 먹이사슬 중간에 있는 절지동물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예요.”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