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젊은 층에서 주목받는 유명한 시인이지만 학창시절에는 그냥 ‘웃긴 애’였단다. “학교에서는 그냥 얘기 재밌게 하는 학생이었어요. 글쓰기는 해본 적도 없고 별로 관심도 없었어요.”

최대호 작가는 SNS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과 투박해 보이는 손글씨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첫 시집 ‘읽어보시집’은 시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꾸준히 머물며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그가 두 번째 시집 ‘이 시 봐라’로 다시 돌아왔다.

글쓰기에도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그가 어쩌다 시의 세계에 빠졌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편입을 통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전공이 바뀌니까 수업을 못 따라가겠는 거예요. 그래서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데 문득 ‘웃긴 시 써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렇게 처음 썼던 게 ‘원한다면’이라는 시다.

지금은 누구나 알 만한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처음부터 스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냥 한 번 써본 시인데,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별 반응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2014년 초 인스타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다시 시를 올렸는데, 의외로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어요.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 비해 저를 모르는 분들도 쉽게 글을 접할 수 있으니까, 제가 아닌 글 자체를 객관적으로 봐주셨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장난삼아 시작했던 시였지만 SNS 팔로워 50만을 보유하고 최근 두 번째 시집도 출간한 그는, 이제 어엿한 시인이 됐다.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썼더니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얘기보다는 남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해요. 아무리 멋있는 말을 해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가끔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있어요. 어려우니까요.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제 시의 인기 요인이 아닐까요?”

시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방법은 오히려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는 시를 잘 쓰는 본인만의 방법으로 메모, 고민 그리고 경험을 들었다. “저는 재밌는 소재가 생각나면 즉시 메모를 해요. 심지어는 자다가도요. 그리고 끊임없이 고민해요. 나만의 것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뭔가 나오더라고요. 제 못난 손글씨가 저만의 특징이 된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편입도 꿈꾸게 됐고, 결국 시도 쓰게 됐죠. 이게 저만의 시를 쓰는 방법이에요.”

많은 독자가 최대호 작가의 시를 읽다 보니, 그의 시를 통해 희망을 얻고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생겼다. “제 시 중에 ‘생각’이라는 시가 있어요. 어떤 분이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그 시를 읽으면서 희망을 품었대요. 그분을 위해서 쓴 시는 아니지만 제 시를 통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고 하니 보람을 느꼈어요. 저도 제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면 뿌듯한데, 그 글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죠.”

그는 쉽고 공감할 수 있는 글로 젊은 층 사이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시의 수준이 떨어진다, 울림이 남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제가 쓰는 글처럼 쉬운 글을 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거잖아요. 젊은 세대들은 이런 모습의 시도 원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쉬운 단어를 쓰고, 내용이 간단하다고 해서 시의 울림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어가 어려워야만 울림이 있고 깊이가 있는 건가요? 독자분들이 잘 판단해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한 명의 취업준비생이던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어준 시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에게 시는 명품 동아줄이에요. 사실 제가 졸업하고 취직 준비를 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게 힘든 시기에 글을 쓰다 보니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 시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저를 구해준 셈이죠.”

그는 앞으로도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했다. “우리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 군대도 갔다 왔고, 취직도 해야 하고요. 그런데 갈수록 헤쳐가야 할 관문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여러분이 남의 눈이나 부모님의 바람을 따르지 말고, 자기를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행복한 삶인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내용의 시를 많이 쓰려고 합니다.”

사진|서동재 기자 a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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