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본교생의 반응은 다양했다. ‘아? 취미요? TV 보는 것도 취미가 되나...’, ‘제 취미는 취미라고 말하기 부끄러운데...’, ‘면접용 취미요? 현실적으로 취업이 워낙 어려워서 마냥 안 좋다고만 할 순 없진 않나요?’, ‘취미와 학업은 충분히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결국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취미죠.’

기자 앞에서 취미를 지우고 쓰고를 반복한 학생부터 보여주기식 취미 자체는 싫지만, 취업을 위해서라면 그럴싸하게 적을 순 있을 거라는 학생까지. 본지는 본교생 200명(안암 캠퍼스 150명, 세종 캠퍼스 50명)을 대상으로 ‘취미’에 대한 오프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해 본교생이 취미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면접용 취미, 타자화된 대학생

취업 공개채용 시즌,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를 쓰는 취업준비생들이 본인의 취미를 있는 그대로 적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자기소개서의 취미조차 직무와 연관 돼야 한다고 말하며, 이에 취업준비생들은 적지 않은 압박을 느낀다. 이 모(문과대 한국사12) 씨는 “이력서에는 생산적이고 질이 높은 취미를 적어야 하는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다. 면접용 취미를 말한 경험이 있다는 한 모(인문대 영문14) 씨는 “주어진 면접기회에서 과거 경험을 직무와 연결 짓는데, 취미도 그중 하나”라며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본교생의 생각은 다양했다. 본지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면접용·자소서용 취미’와 같이 보여주기식 취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19%(38명)의 학생들이 ‘취업난이 심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어서 ‘가식적이고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는 답변이 15.5%(31명)로 그 뒤를 이었다.

보여주기식 취미에 대해 본교생들은 현실적인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에서 각각 견해를 밝혔다. 보여주기식 취미에 대해 나쁘게만 볼 순 없다는 송하빈(공과대 건축14) 씨는 “대학입시를 비롯해 취업의 압박 때문에 취미를 즐길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었을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면접관이 물었을 때 취미가 없는 학생들은 당황하면서 둘러댈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보여주기식 취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장재혁(정경대 정경15) 씨는 면접용 취미에 대해 화장과 가면을 비유해 말했다. 장 씨는 “보여주기식 취미는 예쁜 가면을 쓰는 것”이라며 “얼굴에 화장하는 것과 달리 내 모습을 아예 가린 채 나를 평가하는 면접장에 들어가는 건 옳지 않은 행위”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암묵적으로 인지하는 면접용 취미에 대해 대학내일 20대 연구소 임희수 연구원은 ‘자소설 현상’의 일종이라고 봤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인 취미마저도 지원 회사의 눈치를 보며 써야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입장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윤태(인문대 사회학과) 교수는 “면접용 취미는 진실이 아니라 거짓인데, 이는 지나친 취업경쟁으로 인한 개인적 윤리의식의 약화라고 볼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적 신뢰를 약화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n포 세대에게 취미란

취업준비로 많은 것을 포기하는 청년들을 일컫는 n포 세대, 그들에게 취미란 과연 무엇일까. 편의점 도시락으로 혼자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는 ‘편도족’은 n포 세대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시간과 돈을 아끼며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이들에게 취미를 즐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본지의 설문조사에선, 본교생들은 그래도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취미는 남학생의 경우 운동과 게임, 여학생의 경우 영화 및 음악 감상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취미를 즐기는 이유에 주로 ‘재미있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과열된 경쟁사회에서 취미가 이들에게 쉼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편 취미가 없는 학생의 경우엔 잠깐의 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미가 없는 이유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이어서 본인의 취미가 ‘취미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심장현(문과대 한문13) 씨는 본인이 취미가 없는 이유에 대해 “취업준비에 전념하다보면 따로 취미활동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취미의 정의는 개인마다 다양하지만 ‘취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57.5%(115명)의 학생들이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26%(52명)의 학생들은 ‘쉴 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취미라고 답했다.

스스로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학업과 취업준비에 바쁘더라도 취미생활을 즐기는 본교생들은 취미가 개인에게 주는 긍정적인 면에 대해 말했다. 홍보희(정통대 컴퓨터통신10) 씨는 취미란 먹고사는 일처럼 삶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홍 씨는 “등반을 취미로 하면서 삶의 축이 생긴 기분”이라며 “취업준비도 중요하지만, 취미활동과 균형 맞추며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한울(문과대 사회15) 씨는 “스펙을 쌓는 것뿐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다”며 “작곡, 작사를 통해 음악으로 나를 표현하며 우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었고,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생산적이지 않은 취미를 하는 이들을 ‘잉여’, ‘한량’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에 안타까운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 취미로 켈리그라피 강의를 듣고 있는 박필하(경상대 경제13) 씨는 “취미에 대한 정의는 개인마다 다르다”며 “생산적이지 않은 취미를 ‘잉여 짓’으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가 씁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취미에 대한 본교생들의 견해에 교수들은 삶에서의 취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종석(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학업과 일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취미에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도 균형 있는 삶을 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윤태 교수는 “취미가 자신의 미학적, 철학적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감을 높이는 수단이 돼야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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