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이 아주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물물은 비누가 잘 풀리지 않아서 아이들 손과 얼굴은 트고, 물을 길어두면 하루 후에는 물이 뿌옇게 흐려지거나 붉고 고운 앙금이 바닥에 가라앉았다. 그 시절에는 우리 어머니들은 밤늦게 까지 잠을 못 주무시고 한밤중에 나오는 수돗물을 받아놓고 잠자리에 드셨다. 그런데 어디서나 수돗물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은 오히려 수돗물이 그냥 마시기에는 건강상 안 좋을 것 같은 찜찜함에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돗물은 전문적으로 다루어온 필자가 보기에는 안전하다.

우리가 늘 접하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수돗물의 생산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수돗물을 생산하려면 우선 수질이 깨끗하고 수량이 풍부한 수원이 필요하다. 물속에 중금속이나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없어야하며, 일 년에 최소한 335일은 계획량만큼 물을 퍼 올릴 수 있어야 좋은 수원이라고 할 수 있다. 수원으로부터 필요한 만큼 물을 퍼 올리는 것을 취수라고 한다. 호수에 조류가 많이 번식하는 시기이거나 장마로 수면이 쓰레기로 뒤덮힌 때는 취수하는 수심을 조정하여 가장 수질이 좋은 물을 퍼 올린다. 취수된 물은 정수장으로 보내진다. 강물에 부유하는 이물질 중에서 크고 무거운 것들은 금방 가라앉지만 입자의 크기가 10-6∼10-9m 가량 되는 콜로이드성 입자들은 한나절에도 거의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정수장에서는 콜로이드 입자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응집제가 투입된다. 보통은 황산알루미늄(Al2(SO4)3·14H2O)이라는 화학약품이 사용되는데 물속에 들어가면 알루미늄이 화학적인 반응을 하면서 물속의 콜로이드성 입자들을 서로 뭉치게 한다. 뭉치기 시작하는 작은 입자들은 플럭(Floc)이라고 불리는데 플럭들이 점점 커지도록 물을 잘 교반하여 준다. 서로 뭉쳐져서 눈에 보일 정도로 커진 플럭을 포함한 물은 침전지로 유입된다. 침전지는 보통 4시간에서 6시간 동안 40cm/분의 속도로 천천히 물이 흘러가도록 설계된 깊이 3.5m 가량의 커다란 콘크리트 박스인데, 물속의 플럭들은 대부분 침전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침전지에서 흘러나온 물에는 아직도 미소한 플럭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여과지가 사용된다. 여과지는 역시 깊이가 5m 가량인 콘크리트 박스이고, 평균입경이 약 0.5cm인 모래가 60cm 이상 쌓여있다. 침전지에서 유출된 물은 여과지의 모래층을 5m/hr의 속도로 통과하는데 이 과정에서 미소한 플럭들이 모두 제거된다. 물의 깨끗함을 재는 척도로서 ‘탁도’ 라는 지표가 사용되는데, 유리로 된 병에 물을 담고 빛을 비추어서 물속의 입자로 인하여 산란되는 빛을 포집하여 수치로 나타낸 값이다. 물이 더러워서 물속에 입자성 물질이나 빛을 산란시키는 물질들이 많으면 탁도는 높아진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탁도 5 NTU를 먹는물 수질기준으로 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먹는물의 수질기준으로 59개 물질들을 규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탁도는 0.5 NTU 이하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모래여과 대신 더 철저한 멤브레인을 이용한 막여과가 도입되고 있다.

여과지를 통과하여 이물질이 모두 제거된 물은 최종적으로 소독과정을 거치게 된다. 소독과정에서 수중에 혹시 존재할 수 있는 병원균들을 사멸시키기 위하여 염소가 주입되는데 보통 수중의 병원균들을 사멸시키고 최종적으로 약 0.5mg/L 내외가 잔류하도록 주입된다. 염소가 물속에 조금 남도록 하는 이유는 정수장을 떠나 관을 통하여 소비자에게 이송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세균이 유입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수돗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물속에 세균이 없다고 하는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염소가 있어서 해롭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최근에는 녹조가 번성하면서 수원이 악화되어 수돗물에서 맛이나 냄새가 나거나, 유해한 미량유기물질들이 함유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정수장은 고도정수시설을 도입한다. 고도정수시설은 기존의 정수시설에 오존시설과 활성탄 흡착공정을 추가하는 것이다. 오존은 매우 강력한 살균력과 산화력을 발휘하므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나 미생물을 사멸시키거나 유해한 물질들을 변화시키는데 활용하는 것이다. 활성탄은 상업용 흡착제인데 마치 고성능의 숯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물속에 있는 맛이나 냄새 유발물질 또는 미량의 유해한 비극성 유기물질을 흡착하여 제거한다. 오존과 활성탄으로 처리된 강이나 댐의 물은 유해 유기물질들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시민단체들과 연합하여 수돗물마시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친환경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먹는샘물을 담는 페트병이 미치는 환경적 피해도 간단히 지나칠 수 없기도 하지만 수돗물이 안전하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들이 수돗물에 대하여 불신을 불식하고 거리낌없이 마실 수 있도록 하려면 정부의 지속적이고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말로만 “수돗물은 안전합니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수도서비스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할 복지이므로 소비자는 관심과 사랑을 정부는 지속적인 투자를 통하여 수도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고 높여가야 할 것이다.

최승일 본교교수 환경시스템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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