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에 찾아오는 부끄러움이 있다. 이를테면 밤 열한시 사십팔 분, 고개는 오십 도 정도 치켜들고 눈은 가볍게 감은 채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탱고 음악을 따라 부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문득 발견하게 될 때가 그렇다.

 

탱고.

 

자정. 하루가 오롯하게 걸어온 23과 59와 59라는 자취를 단 일초 만에 00과 00과 00이라는 절대적 무(無)로 소멸시키는 냉혹한 형리(刑吏)의 시각. 그로부터 정확히 십이 분 전이었다. 그런 비장한 순간을 앞두고 고작 부르고 있다는 노래가 탱고라니. 저 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들로부터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라 좀 더 중후하고 우아한 장르의 음악을 불렀다면 보다 덜 민망했을 것이다, 하며 부끄러움을 달래던 도중 노래가 끝났다. 잠깐의 침묵 이후 디제이가 나왔다. 불규칙하지만 듣기에 방해가 되진 않는 잡음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는,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발성이 으레 그렇듯 맑고 청아했다.

 

...우리말 뜻은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언더월드에.> 언더월드라는 말이 인상적이죠. 한국어로는 지하세계, 정도 되겠지만 그 단어로는 언더월드, 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너무 사후세계 같은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사실 스페인에도 지하 세계를 나타내는 단어가 있긴 있다고 해요. 그렇지만 원곡 가사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언더월드, 라는 영어를 쓰거든요. 다른 가사는 다 스페인어고. 왜였을까요? 언더월드라는 단어가 주는...음...공간감 때문일까요? 적어도 저승은 아닌 것 같은, 그러면서도 현실이라고 하기엔 조금 신비한, 딱 그런 공간.

 

잡음이 조금씩 심해졌다. 주파수를 맞춰보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용히 라디오를 껐다.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둔 펜을 원고지 위에 올려두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들려오던(혹은 들려왔을) 라디오의 소리가 사라지니 왠지 섬뜩하리만큼 어색했다. 세계의 공기(空氣)가 반 정도 없어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상상을 했다.

 

밖에 비가 오고 있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닫아놓은 창문으로 빗방울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마치 어설픈 피아노 연습생이 연주하는 아르페지오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단편적인 타, 탁, 투둑, 투, 하는 음들이 순차적으로 연주되면서 만들어지는 비가 옵니다, 라는 화음. 아직 건반에 익숙하지 않은 여섯 살 정도의 아이가 천진한 웃음을 띠고 연주한다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매력적인, 그런 소리가.

‘완벽하지 않아서 매력적인 소리’에는, 또 다른 ‘완벽하지 않아서 매력적인 소리’와 조화될 수 있는 여백이 있다. 어느덧 빗소리의 천진한 아르페지오 사이로, 방금 전까지 내가 따라 부르던 – 결국 기습적 부끄러움으로 귀결된 - 탱고 노래가 은은하게 융화되었다. 조금 전까지와 다른 점은 그것이 실제 소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가수의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 두 가지였다. 목소리는 나보다 조금 중저음의 음색을 띠고 있었다. 어렵지 않게 나는 그 형이상학적 가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이는 아버지의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군인’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특성들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깔끔하게 깎은 머리와 가무잡잡한 피부, 오십 세가 넘는 나이에도 떡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팔 근육이 그랬다. 또 ‘잘 웃지 않음’이라던가 ‘엄격함’이라던가 ‘냉정함’과 같은 성격이 그랬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군인’이란 직업이라기보다 본질 쪽에 가까웠다. 백과사전의 <군인> 항목에는 어설프게 총을 메고 있는 청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진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하곤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태어날 때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신답니다, 정말요? 그럼요. 어렸을 때 잠깐 다녔던 교회 초등반에서 하루는 전도사님이 그런 말을 했다. 그럼 여러분의 가족들은 각자 어떤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지 소개해 볼까요? 나는 준비를 금방 끝냈다. 소개할 가족이라곤 아버지와 나 둘 뿐이었으니까. 몇 분 후 전도사님은 아이들을 발표시켰다. 저희 아버지는 전구를 잘 고치는 달란트가 있어요, 저희 어머니는 요리를 잘 하는 달란트가 있어요, 저희 동생은 인형 머리를 잘 빗겨 주는 달란트가 있어요. 수없이 쏟아지는 타인들의 달란트 세례 이후에 전도사님은 나를 지목했다. 조용히 일어나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는 군인을 잘 하는 달란트가 있어요. 나는 전도사님의 표정에 의아함이 잠깐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제 달란트는 음악을 좋아하는 거예요.

전도사님은 끝내 내가 어머니의 달란트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는 그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뚜렷한 것은, 내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의 반대급부였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두 살 때 엄마는 돌아가셨다.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0월의 어느 날,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 슬퍼해야 할 소식이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년이 지나 빛이 바랜 시간의 페이지를 굳이 들추어 보기 싫었다. 그리고 애초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아 그리워할 대상조차 없었다.

 

그 때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에는 감정의 농도가 없었다. 만약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그 때 아버지의 말을 들었었다면 아, 저 사람이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쓰레기봉투를 뜯고 있는 길고양이라도 본 모양이군, 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인간의 체온을 생각했다. 섭씨 삼십육 점 오 도. 그러나 나는 체온 말고도 ‘인간의 온도’가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를 보아오며 생겨난 믿음이자 내 나름대로 정립한 과학이었다. 내가 측정한 아버지의 온도는 섭씨 십일 도, 였다. 여름이 지나간 10월 말, 새벽 세 시쯤에 현관을 열면 문득 느껴지는 바깥공기의 그 서늘함이 아버지에게는 있었다. 아버지와 새벽 세 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의 온도는 항상 섭씨 십일 도, 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온도’에 대해 나는 여러 이론들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인간 변온 이론’이었다. 외부적 조건에 변화가 생기면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온도 역시 변화한다. 그것이 이론의 골자였다. 사실 나는 여기에 인간 변온 ‘법칙’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내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렇다는 게 법칙의 보편성을 확보해주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태양 영웅처럼 섭씨 몇 천 도가 넘어가는 온도를 가졌던 사람이, 별 것 아닌 일 하나 때문에 결빙(結氷)의 영하로 침잠해 가는 모습을 나는 종종 보곤 했다.

그러나 법칙은 철저해야 했다. 단 하나의 반례라도 법칙 전체를 무너뜨릴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스코틀랜드의 목장에서 검은 백조의 옆모습을 보았을 때 스코틀랜드에는 검은 백조들이 있습니다, 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에는 적어도 한쪽 면이 검은 색인 백조가 적어도 한 마리 이상 존재하는 목장이 적어도 하나 이상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철저함이 법칙에는 필요했다.

 

인간 변온 법칙의 철저함을 무너뜨린 반례는 아버지였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아버지는 섭씨 십일 도를 넘어서는 따뜻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천박할 정도의 차가움을 발산하지도 않았다. 그저 섭씨 십일 도와 섭씨 십일 도. 그래서 아버지는 나에게 절대적인 온도의 균형이자 완벽한 열평형의 표상이었다.

 

그게, 그랬다.

 

초등학교에서 재능 발표회라는 행사를 했다. 방과 후 학교에서 바이올린 수업을 듣고 있던 육학년의 나는, 얼떨결에 재능 발표회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안내장을 건네며 말했다. 아버지, 저 바이올린 연주를 해요. 바이올린? 네. 알았다.

 

친구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부르는 아빠, 라는 이름을 당시의 나는 부르지 못했다. 아빠, 라는 단어와 나의 군인 아버지의 모습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아빠, 라고 부르는 것을 두어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지만, 마치 찬 강물에 발가락 끝을 담근 것처럼 몸서리가 쳐져 슬그머니 관두고 말았다.

나의 아버지, 는 재능 발표회에 왔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은 카메라니, 꽃다발이니 가져와서 사진을 찍었고 무대를 마친 아이들에게 꽃을 건넸다. 아버지는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나 손에는 학교 앞에서 파는 듯한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바이올린 독주가 끝나고 대기실로 가서 아버지를 만났다. 수고했다.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뽀뽀를 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난리를 치는 다른 부모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단지 그렇게 말했다. 수, 고, 했, 다, 네 글자. 그리고는 꽃을 건네주었다. 아버지와 꽃이라는 조합이 선사하는 짙은 어색함에 나는 잠깐 균형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 머뭇거리다 꽃을 받았다. 그 때 아버지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아버지가 여느 때처럼 절도 있게 돌아서 대기실을 나갔다는 사실 만큼은 기억한다.

 

음악을 공부하려고요. 라는 말을 했던 건 고등학교 삼학년 여름이었다. 공부에 그렇게 큰 흥미가 없었던지라 학업 성적도 그렇게 좋지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특출 나게 잘하는 분야도 없었다. 다만 적어도 흥미라는 것을 느낄 수 있던 유일한 분야인지라 막연하게 선택한 진로가 음악이었다. 언제 이걸 말할 것인가,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 군인 아버지는 한 번도 음악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으니 분명히 나를 이해할 리가 없다. 아주 박살이 나도록 질책이나 받겠지, 라는 것이 아버지와 같이 살아온 십구 년의 세월로부터 추론된 판단이었다. 그 판단을 떠올릴 때마다 나의 용기는 바싹 마른 낙엽처럼 부스러졌다. 결국 원서를 써야하는 팔월 말쯤에야, 저녁식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할 수 있겠냐.

 

사내놈이 무슨 음악이냐, 음악 공부해서 먹고살 수는 있겠느냐 등 내 예상 시나리오에 있던 멘트들을 모두 제치고 아버지 입에서 나온 대사는 그게 다였다. 할, 수, 있, 겠, 냐. 그저 다섯 글자의 결합. 그러나 그건 예상했던 어떤 문장들보다 나를 당황하게 하는 물음이었다. 아버지의 의도가 비웃음이었는지, 아들놈의 미래를 생각한 걱정이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당시의 나는 후자 쪽을 믿었다. 고민 끝에 나는 네 – 라고 했다. 아버지는 캔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크아. 그렇게 아버지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를 허락했다.

 

그 다음 해 1월에 아버지는 군에서 퇴직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던 2월쯤 아버지에게서는 벌써 퇴역 군인의 향 비슷한 것이 났다. 모니터 스크린에 파란색으로 떠오른 합격하셨습니다, 라는 문구를 보고 아버지를 불렀다. 수고했다, 아버지는 그뿐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아버지의 눈꼬리가 가볍게 내려가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건 분명한 미소였다.

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이 조금 기묘했다. 아버지와 미소라니. 물론 아버지가 미소 짓지 못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본 아버지의 미소는 내가 지금껏 느껴왔던 섭씨 십일 도의 서늘함이 아니었고, 바로 그 사실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아버지가 미소 지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섭씨 십일 도라는 균형이 흔들렸다는 바로 그 사실.

 

음악대학에서 나의 전공은 평론이었다. 음악 지식도 글 솜씨도 없는 놈이 음악평론이라니, 스스로도 조소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선택을 해버린지라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래 글 실력이 없으면 음악이라도 많이 들어두자.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고 그날 저녁 나는 근처 음반가게에서 손에 잡히는 음반들을 모두 사왔다. 시디 케이스를 한 아름 들고 온 나를 본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아버지는 음악을 모르니까. 아버지를 보아 왔던 이십 년의 세월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며칠 후 아버지가 혹시 탱고 음반 있니, 하고 물었을 때 내가 놀란 것도 당연했다.

 

탱고요? 그래, 요즘 듣고 있다. 아...네. 책장에서 Tango 라벨이 붙여져 있는 시디 두 개를 꺼내서 드렸다. 아버지는 고맙다, 라고 하시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잠깐 동안 균형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탱고. 1880년 무렵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의 하층민들로부터 발생한 춤의 장르. 대부분 두 명이 같이 추며, 탱고라는 이름은 ‘만남의 장소’라는 아프리카 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본다. 라고 책은 말하고 있었다. 탱고에도 온도가 있다면 적어도 섭씨 십일 도보다는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그건 교향곡이나 오페라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고상하고 점잖은, 무엇보다 딱 섭씨 십일 도 정도인 그런 음악들. 그러나 아버지는 나에게 오페라 음반이 아니라 탱고 음반을 빌려 간 것이다.

 

며칠 후 저녁상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좋더구나. 무엇이요? 네가 준 음반 말이다. 아, 네. 그 중에서도 갈색 시디의 세 번째 곡이 좋더구나. 어떤 곡이요? 글쎄, 된통 서어로 되어있어서 모르겠다만 언더월드, 언더월드 하던데. 아, 그거요. 뜻이 지하세곈가? 네, 그렇죠. 한번쯤 가볼 만 하겠구나. 아, 그런가요. 만약 아버지가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기껏해야 다섯 글자를 넘지 않는 저 짧은 대답들을 말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셨을 것이다. 흔들리는 신체의 균형을 잡기 위해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박을 만났다.

박은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고등학교 후배였다. 그는 나의 1년 후배였고 ‘XX고 예술 연구회’라는, 이름만 거창한 소규모 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다. 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박은 미술을 좋아했다. 나는 박보다 먼저 졸업했고 그는 재수를 해서 B대학 미학과에 진학했다. 저번 달에 만났을 때 박은 자기가 조각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형, 조각상에는 사람을 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박은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다음 달에 A 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있어요. 같이 가실래요? 집에 있어봤자 말도 안 되는 문장이나 끼적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던지라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래, 라고 했다.

 

A 미술관은 조금 외진 곳에 있었다. 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은 후, 초록색 마을버스를 타고 십오 분정도 올라가야 했다. 건물의 외관은 평범했지만, 내부 공간은 꽤나 넓었다. 여러 조각상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미술실에 있을 법한 녀석들도 있었고, 꽤나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전신상도 몇 있었다. 박은 조금 시끄러웠지만 유익한 파트너였다. 조각상들을 지날 때마다 박은 자신의 설명을 덧붙였다. 그 의도가 지적인 허영이었든 순선한 호의였든, 대체적으로 들어서 나쁠 건 없는 내용들이었다.

죽 둘러보다가 한 흉상 앞에 도착했다. 복부의 중간 지점부터 하반신을 모두 잘라낸 듯한 모습이었다. 상체에 있는 선명한 근육만 보아도, 그 흉상의 모델이 건장한 청년일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박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그저 쌍꺼풀이 짙은 그 눈으로 흉상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미적 탐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반신상은 없나보네.

미술관을 나서면서 박에게 말했다. 하반신상이요? 응. 하체만 있는 조각상은 못 본 것 같아서. 하긴, 저도 하반신상은 거의 본 적이 없네요.

왜인 것 같아? 글쎄요, 사람들이 허리 위쪽을 더 의미 있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의미 있게? 말하자면 그런 거죠. 얼굴부터 허리까지만 보여줘도 사람들은 그 조각상의 모델이 어떤 인간인지 대략 알게 되잖아요. 그럼 그때부터 하체는 관심 밖의 대상이 되어버려요. 풍성한 머리칼과 다부진 어깨, 선명한 복근까지만 보여줘도 사람들이 조각상의 성별과 나이를 알게 되는데 굳이 거기에 튼튼한 다리까지 만들어서 붙일 필요가 뭐 있겠느냐, 그런 거겠죠.

그런 건가. 그렇지만 생각해봐야 할 문제네요. 생각? 네, 깊게요.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박은 창밖을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으로 돌아온 우리는 근처 막창집으로 들어갔다. 둘이서 소주 두 병을 비워갈 때쯤, 박이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형,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아세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저도 최근에 알았는데,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랍디다. 두 사람이 부부였던가? 글쎄요. 아니더라도 뭐 어때요. 여하튼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어렸을 때 굉장한 미소년이었답디다. 그런데 물의 요정과 사랑에 빠졌는지 어쨌는지 몸을 섞게 되면서, 결국 한 몸에 남녀의 성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고 해요. 허리 위로는 여성, 허리 밑으로는 남성이 된 거죠.

 

문득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온도는 섭씨 몇 도쯤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신화는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잘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죠. 근데 요즘 그 친구를 자꾸 떠올리게 돼요. 박이 술 한 잔을 들이켰다. 저번 주였나,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전시회에 갔어요. 조각을 보러 갔다기보다는 그냥 여러 가지 예술품을 보면서 머리나 식히려고 간 거였죠. 홀 오른편 구석에는 여자의 흉상이 하나 있었어요. 꽤나 육감적인 몸매를 가졌더군요. 특히 쇄골에서부터 가슴으로 이어지는 굴곡이 돋보였어요. 조각 밑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판에 ‘헤르마프로디토스’라고 적혀 있었죠. 유럽 여인들 중에는 저런 미녀도 있었던 모양이군, 이라고 생각하는 중에 제 옆으로 초등학생들이 지나갔어요. 학교에서 단체로 체험학습을 온 모양새였죠.

흉상 앞에 서자 곧 시끌시끌해지더군요. 얼굴이 빨개진 녀석들도, 낄낄거리는 녀석들도, 넋을 놓고 바라보는 녀석들도 있었죠. 여자가 허리 위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건 그 녀석들한테 전혀 문제가 아니었을 겁니다. 이미 녀석들은 머릿속으로 관능적인 두 다리를 만들어다가 하반신이 잘려나간 단면 밑으로 붙여 버렸을 테니까요. 박은 잔을 들이켰다. 크아.

...솔직히 그 초등학생 무리를 이끌고 있던 가이드분이 아니었다면 저도 그랬을 겁니다. 그 분은 곧 아이들에게 헤르마프로디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사실 그런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죠. 신화 속의 인물일 뿐이니까요. 제가 선명히 기억하는 건 녀석들의 표정이에요. 초등학생밖에 안 되는 녀석들의 얼굴에 그토록 깊은 실망이 드러날 수 있다니. 그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져요. 녀석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흉상을 떠났어요. 더럽다, 징그럽다 - 거리면서 말이죠. 박이 잔을 들이키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박의 말은 점점 느려졌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사모했던 여인을 말이에요. 하반신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니 두 다리 사이에 성기 하나 달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리 육십 개가 달린 지네마냥 취급해요. 여신에서 지네로. 이 얼마나 어이없는 추락입니까. 맹목적인 독단. 그 이야기를 못 들었으면 집에 돌아가 그 여자를 떠올리며 수음이나 했을 녀석들이 말이야.

 

박의 눈동자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갔다. 나는 까닭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비운 소주는 총 네 병이었다. 그 때 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별안간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박은 꼬이는 혀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근데 말이에요 형. 이제 전 흉상만 보면 마음이 착잡해요.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자꾸 떠오르는 게, 그러니까 당장 아까 A 미술관 그 흉상만 봐도 전 당연히 남자 청년이구나, 하고 지나친다고요. 일말의 의심도 가지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흉상의 하반신이 여자의 것, 말의 것, 심지어 아예 없던 것이었다면 어떡할까요. 또는 상체와 하체가 바뀐 헤르마프로디토스. 저야말로 오만한 독단의 폭군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꾸...자꾸 든다는 거죠. 박은 술잔에 남은 마지막 술을 입에 털어 넣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소주 여섯 병을 비웠다. 일인 당 세 병. 박은 이미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전신상, 전신상. 박의 자취방까지는 꽤 멀었기 때문에, 나는 박의 집에서 자겠다는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행히 막창집 근처에 박과 나를 모두 알고 있던 고등학교 동창의 집이 있었다. 박을 부탁하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막차에 올랐다.

그날 오후 현관을 나서면서 나는 말했었다. 오늘은 밖에서 자고 올게요. 그래라. 하지만 나는 이미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고,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 짧은 대화를 기억할 리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붙잡고 현관을 열었다. 집은 어두웠다. 아버지의 방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불이 켜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언더월드, 라는 단어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 단어만으로도 내가 드린 탱고 시디의 음악이라는 건 명확했다. 아버지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치 허공에 투명한 파트너가 있는 것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색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팔을 움직였다. 또 경쾌하게 스텝을 밟았다. 노래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언더월드, 라는 부분이 다시 나왔을 때 아버지는 어린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조심스럽게 점프를 했다. 공중에 떠 있는 짧은 순간을 지나 아버지는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탁.

 

그 순간 내 가슴의 무엇인가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알코올 성분 때문에 반 정도 마비된 나의 사고 속으로 그 파괴의 잔해들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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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몇 시간 전 막창집에서 박이 냈던 소리와 놀랄 만큼 비슷했다. 내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자신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소리의 의지에 굴복했다. 소리가 목청을 직선으로 통과하며 터져 나왔다. 몽롱함 속에서 나의 귀는 그 소리가 비명에 가깝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탱고 음악이 멈췄다. 그것이 내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아버지가 없었다. 관자놀이를 쪼이는 것 같은 숙취에 열한 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가보니 집안이 조용했다. 식탁에 메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퇴역 군인 야유회에 좀 다녀오마. 아버지의 글씨체가 이랬었구나, 라는 걸 새삼 알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지금은 아버지가 그렇게 집을 나가신 지 삼일 째 되는 밤이다. 자정은 지났고 더 이상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야유회 일정을 적어놓지 않고 나가셨으니 사실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늦어도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돌아올 것이었다. 다만 나는 아버지가 지금 어디에선가 자신의 전신상을 만들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갈색 시디의 세 번째 곡을 틀어놓고 탱고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면서. 그리고 언더월드, 라는 부분에서 가볍게 점프를 하면서. 아버지가 그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웃음을 입 꼬리에 걸쳐 두고 노곤한 몸을 침대에 묻었다.

 

나는 강가에 서 있었다.

고운 모래로 뒤덮인 백사장이었다. 옆으로는 강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강과 백사장 말고는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이었다. 강가를 따라 그저 걸었다. 걷다보니 강 건너편에 작은 섬이 하나 보였다. 아, 내가 저 섬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소리가 조용하게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와 함께 작은 형상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형상은 공중에 떠 있었다. 나는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일어나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두 존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는 점차 커졌다. 오십 미터 정도가 남았을 때 나는 그 음악이 갈색 시디의 세 번째 곡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언더월드, 하는 탱고.

언더월드. 그래 여긴 언더월드다. 아니라도 좋았다. 어쨌든 그런 이름에 딱 어울리는 공간인 건 맞았으니까. 유쾌한 탱고 리듬에 맞추어 걸어 보았다. 발바닥 밑으로 느껴지는 고운 모래의 감촉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 형상이 십 미터 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흉상이었다. 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목청에서 막혀버려 나오지 않았다. 내 아버지의 흉상이 공중에 떠서 오고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넓은 어깨, 그리고 다부진 팔 근육. 무엇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오 미터. 아버지의 허리 밑으로 서서히 다리의 형상이 생겨나고 있었다. 투명에서 반투명으로, 반투명에서 불투명으로. 문득 아버지의 하체를 본 적이 참 오래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하체는 상체에 비해 조금 가녀렸다. 그리고 길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 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일 미터. 완성된 아버지의 전신(全身)이 내 앞에 멈추어 섰다. 들려오는 탱고 소리가 경쾌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것일까. 입을 다시 열어 보았다. 아빠. 아버지는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아버지의 온도는 삼십육 점 오도구나, 라고 확신이 들었다. 아버지는 팔을 들고 손바닥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아.

네.

춤을 추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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