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로 올라가다보면 늘 마주하는 개운사(開運寺). 본교와 함께 살아가는 개운사는 어떠한 연원이 있고,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10일부터 13일까지 직접 개운사로 찾아가봤다. 개운사 총무스님에게 불교문화와 개운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 사진|서동재 기자 awe@

조선 태조 5년(1396)에 무학대사가 현재 이공계캠퍼스 근처에 영도사라는 절을 지은 것이 개운사의 시초다. 이후 정조 3년(1779)에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기고 이름을 개운사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니 조선 초부터 현재까지 600년 이상 안암동 일대를 지켜온 셈이다.

인문계 캠퍼스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사찰 안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큰 공터를 지나자, 두 손에 물병을 들고 있는 관음석불이 인자한 모습으로 반겼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37년째 개운사에 다닌다는 김 씨(여·49)는 예전 개운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 비해 개운사 주변에 건물이 많이 생겼지만, 꼬불꼬불한 언덕만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이어 “절에 올 때마다 편안하게 느껴져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관음석불과 3층 석탑을 뒤로 하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범종각을 지나 꼬불꼬불한 언덕을 올랐다.

연등이 안내하는 언덕을 지나자 법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사찰에 대웅전, 삼성각, 미타전, 명부전 그리고 요사채 등 5개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그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웅장했다. 청아한 목탁 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스님과 신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대웅전에서 나와 오른쪽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삼성각을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와 어우러진 삼성각 주위의 경치는 개운사 내에서도 단연 뛰어났다. 보물 제1649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미타전은 대웅전보다 크기는 다소 작았지만, 화려함은 전혀 뒤지지 않았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고려후기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미타전 맞은편에 있는 명부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명부전은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공간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죄의 경중을 심판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49일 동안 망자를 위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마침 이날 49재 중 마지막, 막재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님이 예불을 모시는 동안 가족들은 경건하게 절을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둘째 날에는 개운사의 시작과 함께 하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잠시 후 온 사찰에 목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량석이라고 불리는 이 의식으로 잠들어있던 만물을 깨우고 사찰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른 시간에도 신도들이 일찍 나와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이렇게 일찍부터 시작된 개운사의 하루는 생각보다 바빴다. 스님들은 아침공양을 마친 후에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포행(가볍게 걷는 것)을 했다. 총무스님은 “법랍(출가 이후의 나이) 10년 이상이 되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할 일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가 되면 부처님께 불공을 올린다. 이는 부처님이 하루 한 번 이 시간에 공양을 했기 때문이다.

점심공양 시간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다. 공양 시간에 맞춰 지하에 있는 공양간으로 향했다. 밥, 된장국, 다섯 종류의 나물과 김치와 고추장이 제공됐다. 맛은 일반적으로 먹는 비빔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도들이 부처님께 올린 공양미를 주위의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으로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

12일에는 다른 날보다 유독 사람이 많았다. 음력 첫째 날을 의미하는 초하루이자 대학수학능력평가가 있었던 날이었다. 총무스님은 “초하룻날에는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면서 나쁜 기운을 사라지게 하고, 한 달 내내 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며 “한 달 중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날”이라고 말했다. 수능을 보는 가족을 응원하기 위해 절을 찾은 사람도 많이 보였다. 그중 부녀가 모두 고대생인 가족을 만났다. 동생을 응원하기 위해 개운사를 찾았다는 박지혜(경영대 경영12) 씨는 “동생이 정성을 다한 만큼 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 박호준(기계공학과 85학번) 씨는 “아버지와 딸이 모두 고대생이니 동생도 꼭 고대에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대변하듯 대웅전 계단 옆 봉등대(奉燈臺)에는 수능만점, 소원성취 등의 글귀를 담은 초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조금씩 붐비기 시작한 대웅전은 오전 10시쯤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꽉 들어찼다. 예불을 올리는 스님들은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학생들이 좋은 결실을 거두도록 응원했다. 동생이 수능을 보고 있다는 최인서(여·27) 씨는 “오늘 아침에 동생이 아파서 걱정이 많았는데, 절에 와서 초조한 마음을 조금 달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개운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스님들의 목탁 소리와 자연의 소리로 가득했다. 한 할머니가 어제에 이어 또 개운사를 찾았다. 먼저 할머니를 본 총무스님은 반갑게 인사하며 “손주는 시험 잘 봤대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다행히 잘 본 것 같다”며 “이게 다 스님 덕분”이라고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스님은 “할머니께서 열심히 기도해서 그런 것”이라며 공을 돌렸지만,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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