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의 빈곤은 청년 작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작품 제작을 통한 월평균 수입이 100만 원 이하인 미술가가 전체의 79%에 이른다. 신인 작가일수록 경력이 부족해 갤러리에서 전시하거나 작품을 판매할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청년 작가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작품을 창작하고 전시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 새로운 전시공간을 운영해 직접 전시 기회를 만드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최근엔 물리적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SNS 같은 온라인 공간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 종암동에 위치한 미술 작업공간. 청년 작가가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ㅣ조현제 기자 aleph@

신생공간에서 보여주는 실험

신생공간은 작가들이 제도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성을 느끼고 만든 새로운 전시 공간이다. 작가가 갤러리에서 전시하기 위해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판매 가능한 형태의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관습 등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다. 2014년 5월 종로구 세운상가에 문을 연 ‘개방회로’와 2015년 10월에 강서구 등촌동 한 상가에 자리 잡은 ‘일년만 미슬관’도 그중 하나다. 두 신생공간은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운영진이 돈을 모아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나 단체 같은 지원 기관이 요구하는 양식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거라 판단해서다.

개방회로에는 주로 20대~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이 기존 작업 방향과 다른 작업을 해보고 싶을 때 찾아왔다. 운영자 박이현(남·27) 씨는 “개방회로는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기보다는 완성되기까지 고민하는 과정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23일까지 전시됐던 미술작가 류희경(여·31) 씨의 작품 ‘떠 있는 반사된 달’ 역시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류 작가는 지인들에게 ‘빛이 되는 무언가’를 빌려와 매달아 사람들과 에너지를 나누는 추상적 관계를 표현했다.

일년만 미슬관 역시 자발적인 전시-예술 공간의 필요성에서 출발한 신생공간이다. 철거 예정인 공간을 일 년간 무료로 임대한 작가 7명이 2015년 10월부터 일 년 동안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다. 작가들은 일반 갤러 리에서 전시하기 위해 작품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박종혁(남·40) 작가는 “선택받기 위해선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갤러리의 취향이나 트렌드 같은 외부의 영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작가들 스스로 운영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자본과 문화 권력에서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심윤아(여·37) 작가는 이곳에서 완벽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심 작가는 “완벽하지 않아도 돼 실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 23일까지 개방회로에 전시됐던 류희경 작가의 작품 '떠 있는 반사된 달' 사진ㅣ조현제 기자 aleph@

SNS에 익숙한 청년작가의 온라인 전시장

온라인 공간인 SNS는 스마트폰 세대인 청년 작가들에게 떠오르는 전시 공간이다. 온라인은 갤러리에 갈 시간을 내기 힘든 현대인이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사진과 동영상을 중점으로 공유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이 온라인 전시장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작가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면서 사람들을 오프라인 전시장으로 유도한다.

전통 한국화 방식을 고수하는 조화란(목원대 회화과13) 작가의 ‘셀럽의 먹방’ 작품들은 대형 포털사이트인 다음 스토리볼에서 게시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선 유명인들이 저마다 손에 먹을거리를 들고 있다. 돌이나 풀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추출된 파란 눈색, 피부색은 한지의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은은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조 작가는 먹는 행위가 인간의 본질이란 생각에서 ‘셀럽의 먹방’ 작업을 시작했다.

조화란 작가는 SNS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온라인 전시공간을 활용한 사례다. 조 작가는 SNS인 인스타그램에 셀럽의 먹방 작품과 창작 과정을 올렸고, 이를 보고 포털사이트 다음이 연재할 것을 제의했다. 조화란 작가는 인스타그램이 이미지 중심적이고, 사용자가 팔로우(follow)를 결정하는 시스템이어서 온라인 전시장으로서 적합하다고 했다. 조 작가는 “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한 사람이 나를 팔로우하면 내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며 “6400여 명의 팔로워들은 내 팬이란 의미니까 작업을 지속할 힘이 난다”고 말했다.

지역 기반으로 한 미디어 아트

신인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공간은 실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특성과 연계한 공공미술 작품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이재형(남·36) 작가는 주로 지역 연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는 미디어아트 작가다. 2014년 양평 폐중앙선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양평터널 프로젝트가 대표작이다. 자전거 도로로 사용 중인 기곡터널 천장에 LED등을 설치했는데 이 전등들은 남한강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반짝인다.

본교 미술학부 출신인 이 작가는 본교 졸업생 중심 미디어 아트 연구 그룹 ‘KUMA’를 결성해 후배 작가들에게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있다. 그는 “신인 작가들이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해 봐야 자신의 능력을 알고, 다음에 기회를 창출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형 작가는 앞으로 사회 기술과 인문학적 감성 사이 거리감을 좁혀줄 미술작가를 필요로 할 것이라 말했다. 이 작가는 “계속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인간의 감성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며 “기술과 사람 둘 다를 이해할 수 있는 순수미술 작가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공공미술 사업이 가진 부가가치를 인식하고 예술가들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예술가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2013년에는 도시재생특별법을 제정해 구도심 쇠퇴 등 지역 문제에 대해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다양한 공공미술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기봉(디자인조형학부) 교수는 사회가 미술가의 경제적 어려움을 강조해 젊은 작가들에게 부담감을 지우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예술가는 돈이 아니라 창작에서 비롯되는 자긍심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며 "용기있게 작가의 길로 나선 청년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사회가 예술에 열린 모습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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