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인터스텔라>, <마션> 등 우주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국내 극장가에서 흥행을 거뒀다. 블랙홀이나 화성 등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은 인류의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다. 우주와 마찬가지로 방대하며 복잡한 미지의 세계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뇌다.

▲ 인간의 뇌는 아직까지 과학기술이 풀어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사진 | 서동재 기자 awe@


뇌는 수억 개의 신경세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이처럼 소우주라 불릴 정도로 미지의 세계인 뇌를 탐구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가 연구 중이다. 이들은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모든 신경세포의 연결 관계를 분석한다. 이러한 신경세포의 연결은 뇌의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약 뇌의 작용원리를 보다 정확히 이해한다면 알츠하이머, 파킨슨병과 같은 뇌 질환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미국,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는 뇌지도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별다른 국책사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뇌지도, 구조와 기능 모두 봐야

뇌지도 완성을 위해서는 복합적인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현재 뇌 연구는 크게 현미경 등으로 신경세포의 연결을 관측하는 것과 생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신경세포의 기능을 분석하는 것으로 나뉜다. 뇌 구조 분석에는 전자현미경과 발전된 광학현미경기술을 이용한다. 현미경을 통해 신경세포 구조와 그 연결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전기생리학, 광유전학 등 생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미세한 세포와 세포 사이의 연결을 연구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회로가 행동이나 뇌의 활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다. KIST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 김진현 연구원은 “이 두 가지 측면은 상호 보완적이며 완전한 뇌지도의 완성은 구조와 기능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인 정보의 집약체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융합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세세한 구조와 순간의 변화를 관측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한데, 아직까진 기술의 한계로 복합적인 연구가 가능한 장비가 없다. 이에 대해 KIST 신경과학연구단 정수영 연구원은 “미세한 (신경) 구조의 차이를 빠르고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높은 해상도의 장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뇌의 기능과 구조를 모두 관찰하기 위해서는 죽은 뇌 조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상태의 신경세포 기능을 분석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신경세포의 반응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분석기술의 융합과 새로운 혁신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세계는 지금 뇌 탐구 중

냉전 시대가 ‘우주를 선점하는 국가가 세계를 선도한다’는 우주 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뇌를 정복하는 국가가 세계를 선도한다’는 뇌 전쟁의 시대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은 뇌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많은 나라가 뇌지도 작성에 열을 올리는 이유로 뇌 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연구 사업에서 파생되는 사회경제적 효과도 한몫하고 있다. 한기훈(의과대 의과학과) 교수는 “뇌과학의 발전으로 생물학과 의학뿐만 아니라 연구를 위한 관측과 분석에 사용되는 정보시스템, IT기술, 나노기술 등이 함께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는 향후 10년간 30억 달러(약 3조 원)의 연구비를 뇌지도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뒤따라 유럽연합(EU)도 2014년부터 10년간 12억 유로(약 1조 8000억 원)를 투자해 인간의 뇌 기능을 모방한 인공 뇌 제작에 착수했다. 일본도 유전자 조작이 쉬운 영장류인 마모셋 원숭이를 이용한 뇌지도 작성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투자규모는 2014년에 30억 엔(300억 원), 2015년에 40억 엔(400억 원)이었다. 중국 역시 최근 인공지능(AI)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어린 학문’ 뇌 과학, 기다리며 투자해야

많은 나라가 뇌지도 연구에 뛰어든 가운데, 한국에선 아직 국가 차원의 관련 연구사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 한국뇌연구원 뇌신경망연구부 이계주 부장은 “아직 국가 차원의 대규모 뇌지도 작성 연구사업은 진행되지 못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뇌 연구 투자 규모는 2014년 생명공학 분야 예산 총 2조3000억 원의 4.5%인 1045억 원이다. 1000억이 넘는 규모지만 연구가 산발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실제로 각 연구기관에서 쓸 수 있는 연구비는 적은 편이다. 또한, 사립대학 연구실에서 연구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백자현(생명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연구에 필요한 장비가 고가이다 보니 사립대학에서 연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과학 발전에 있어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성과주의가 연구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계주 부장은 “연구 외적인 부분에도 짧은 기간에 연구 성과를 내야 하는 중압감, 연구비와 연구 인력의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뇌 과학이 아직 막 시작된 학문이라고 말했다. 뇌 과학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가 선행돼야 하는데, 뇌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미국, 유럽 등에서도 10년 단위의 장기사업을 펼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정수영 연구원은 “기초연구에 있어서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뇌 과학은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인,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경제동력원이다. 하지만 이제 발걸음을 뗀 학문이기에 기초연구를 위한 많은 지원이 있다면 성과를 기대할만한 분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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