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면 국가라는 주체가 행사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이다. 국가가 직접 가해하지 않더라도 가해 상황을 묵인하고 방치하는 경우도 국가폭력의 또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엠네스티 보고서에서는 국가폭력의 주요한 형태로 불법 감금을 포함한 불법 형 집행, 불공정재판, 고문, 정치적 살인 등을 들고 있다. 국가폭력을 공권력에 의한 신체적·정신적 학대, 가시적·암묵적 가해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은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과 독재정권하에서 자행된 시위에 대한 폭력 진압과 인권침해 사건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의 국가폭력은 개인의 광폭한 성격이나 돌발행위에서 기인한 것이기보다는 경찰, 군대, 정보기관 등에 의해 자행된 국가행위이다.

  한국전쟁 전후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군경토벌작전관련 희생사건, 미군관련 민간인 희생사건 등 민간인 학살로 두드러진 국가폭력은 4월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역사적 변동시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년 동안 지배 권력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좌익 불순분자로 몰아 민간인 학살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이 문제를 망각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한을 그들의 가슴속에 쌓아 놓고 살았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 삼촌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도 모른 채, 이 사회에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 국외자로서 살아야만 했다.

  독재정권에 의한 국가폭력은 고문, 간첩조작, 시위에 대한 폭력 진압, 체포, 연행, 감시 등을 통해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수십 년간의 국가폭력의 일상화는 폭력에 대한 무감각과 저항 세력을 폭력으로 억누를 수 있다는 사고를 국민 일반에게 내면화시켰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폭력은 너무나 일상화되고, 관행화되었다.

  국가폭력은 폭력으로 규정되지 않고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합리화되어 우리사회를 전도된 가치로 지배하였다. 그 후 일반 국민들의 침묵과 방관의 심리가 망각의 사회화로 이어지면서 많은 역사적 희생이 반복하여 나타났다.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자연재해나 대형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보다 심리적 고통이 더욱 심각하다.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한 트라우마는 복잡한 제도적, 이데올로기적인 낙인과 배제를 동반한다. 국가가 물리적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이데올로기적 낙인을 찍고 피해자의 일상생활 곳곳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격리함으로써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단순히 육체적 상태를 뛰어 넘어 매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트라우마 후유증을 경험하게 된다.

  국가기관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 경험, 고문을 당한 경험, 체포되어 사건의 조작에 의해 수감된 경험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감시를 받았던 경험 등은 개인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 고통스러운 회상을 하며 반복적으로 악몽에 시달리며,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또한 과도하게 사람을 경계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정서적으로 위축된다. 또한 우울함에 빠져 허무감에 사로잡혀 세상을 살기 싫어하기도 한다. 그들이 겪는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난다. 특히, 정치적 학살 및 고문 같은 트라우마의 경우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을 잃었다는 상실감, 사회적 지위가 박탈되고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인간적 배신감, 나만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다양한 정신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과거사 해결의 기본 원칙 중 배상은 일부 이뤄졌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트라우마의 치유에 대한 관심과 제도가 미비한 상태이다.

  1987년 UN 고문방지협약 제14조는 고문에 책임 있는 국가는 고문피해자들의 재활을 위한 치료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협약에 가입했지만, 고문 및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재활을 위한 어떤 치료방안도 운영하고 있지 않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국가가 고문 및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치유나 재활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012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국가폭력 피해자의 치유와 재활을 위한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열었고, 그 후 그들을 위한 민간인이 운영하는 치유공간이 몇 군데 생긴 것은 다행한 일이다.

  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르면 손해를 입은 모든 자는 그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폭력은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 행위로 가해주체는 국가이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치유, 재활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국가폭력이 얼마나 잔인하며 개인에게 얼마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오수성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심리건강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