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작가엔 장벽 높은 예술인 복지법, 고용보험도 보장 못 해
신진 작가엔 장벽 높은 예술인 복지법, 고용보험도 보장 못 해
  • 이지영 기자
  • 승인 2016.05.0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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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 영역에서 보수를 목적으로 종사하는 예술인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사진 | 서동재 기자 awe@

작년 6월 배우 판영진 씨는 “숨 막힐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차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판 씨는 작년 메르스 여파로 공연이 줄줄 취소되면서 가중된 생활고를 견디지 못했다. 2011년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돼 한국예술인복지재단(복지재단)을 필두로 다양한 복지사업을 진행했지만, 그의 죽음을 막진 못했다. 복지법은 예술인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이들이 생활고로 창작활동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예술인 단체는 복지법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며 지속적인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 지원기준인 예술활동증명이 경력과 연령에 상관없이 기준이 통일돼 있어 신진 예술인에는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술활동증명은 지원자가 예술 활동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절차로, 이를 거쳐야 복지재단의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일정 기간 동안 활동한 경력이나 작업에서 비롯된 수입 내역을 증빙서류로 제출해야 한다. 미술의 경우 최근 5년 내 5회 이상 작품을 관련 매체에 발표하거나 전시한 실적이 있다면 예술인으로 증명된다.

신진 예술인은 예술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기도 어렵지만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지도가 낮을수록 작품을 발표할 기회는 적어 경력을 증명할 자료를 제출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미술작가 권용옥(여·27) 씨는 예술인으로 증명 받는 절차를 거치지 못해 파견지원 사업에 신청하지 못했다. 권 씨는 “순수미술은 상업미술과 달리 수입이 적어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파견지원 사업에 지원하려 했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실패했다”고 말했다. 청년예술가 네트워크 송상훈 대표는 세대별, 경력별로 기준이 세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작업을 지속할 의향이 있어도 기반이 없어 예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활동경력이 낮고, 나이가 어린 예술가에겐 보다 완화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인 복지법이 고용보험은 보장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제정 당시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예술인은 실업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술인 13만 명을 대상으로 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1년 동안 예술활동을 통한 수입이 없었다는 응답이 36%였다. 1년 이상 예술 경력 단절을 경험한 사람은 16%인데 비해, 실업급여 수혜자는 7.2%에 불과했다. 예술인 복지법 제정의 결정적 배경이 됐던 시나리오 작가 김고은 씨도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생활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현행 복지법에 따르면 문화예술 영역에서 보수를 목적으로 종사하는 예술인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대표=박계배, 복지재단)의 창작준비금 사업이 실업급여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긴급복지지원금’이란 명칭이었던 창작준비금은 예술인이 수입이 없는 동안 다음 작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개인당 300만 원씩 지원된다. 하지만 복지재단의 기금이 불안정해 2015년 상반기에는 창작지원금 예산이 집행되지 않기도 했다. 예술인소셜유니온 하장호 사무처장은 “예술인이 기존 사회복지 체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복지재단은 고용보험을 대체하는 우회사업을 만들고 있다”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확보 정도에 따라 사업 여부가 결정되고 있어 사회안전망이 불안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예술인 단체는 복지법에 예술인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요구하고 있다. 예술인소셜유니온은 문화연대가 발간한 ‘20대 국회에 제안하는 20대 문화정책’에서 노동자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한 공연, 영상 분야 예술인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고용보험 체계에 편입할 것을 제안했다. 그 외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예술인에 한해 복지재단이 지원 사업을 시행하는 이분화 된 복지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는 ‘엥떼르미땅’이란 제도를 통해 국가가 단속적으로 근무하는 비정규직 예술인에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예술계는 복지제도 개정을 위해선 예술 작업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인식이 먼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예술인에 아티스트 피(artist fee), 즉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공기관 역시 공공예술사업 분야에서 재능 기부를 요구하고 있다. 하장호 사무처장은 “예술인의 작업을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해 노동자 의제를 적용해야 한다”며 “예술인 역시 안정적 생활을 유지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보편적 복지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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