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열린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에서 출생신고제도 개편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오갔다. 사진 | 이요세피나 기자 kur@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존재’로서 인정받으려면 친권자인 부모가 직접 출생신고를 해야만 한다. 부모가 고의적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 늦춘다 해도, 그 기간동안 아동은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처럼 아동의 보호가 전적으로 부모의 선택에 달려있음에도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절차는 출생 후 1개월 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내야 하는 과태료가 전부다. 현행 출생신고제도의 문제점과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제6회 ‘싱글맘의 날’ 국제컨퍼런스가 11일 오전 9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사단법인 뿌리의집이 주관한 이 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패널들은 현행 출생등록제도를 개편해 아동유기와 매매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소수의 미혼모만이 입양이 아닌 양육을 선택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미혼모의 자녀는 유기와 불법입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아동 유기 형태는 베이비박스로, 2014년 기준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유기 아동의 수는 251명이었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를 철저히 단속하면 아이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버려질 수 있어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없애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송효진 박사는 “아동의 등록과 보호를 부모의 의사에 전적으로 맡기는 현행 출생신고제도가 아동 인권 침해에 심각하게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컨퍼런스에서는 자동등록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UN 권고에 따른 ‘자동적 출생등록제도’를 따르는 호주, 영국,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 국가들은 출생한 병원에서 즉시 관계 부처에 통보하고, 아이의 이름, 주소지 등 세부적인 사항은 추후에 친권자가 보완하도록 하고 있다. 해외의 출생등록제도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송효진 박사는 “우리나라와 같은 출생신고제도는 과거 호적제도를 기반으로 했던 동북아시아 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만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등록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미혼부모가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혼모는 직장,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 차별과 그로 인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하지 않기도 한다. 발제자로 참석한 박정한(대구가톨릭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자동등록제도가 도입되면 혼인 외의 자녀에 관한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우려하는 미혼모들이 출산 시 의료기관을 이용을 기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에 모든 패널들은 공감했다. 사회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증명서에는 혼인 외의 자녀가 아닌 현재의 가족구성원만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는 가족관계증명서의 종류를 일반증명서, 특정증명서, 상세증명서로 나누면 가능해진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동출생등록제도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과 이로 인한 차별이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여성단체와 미혼모단체에서도 해당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관련 심의위원회 통과를 거쳤으며, 현재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미혼모에게 씌워지는 낙인을 우려해 현행 제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출생신고제도를 바꾸는 것뿐 아니라 미혼모가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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