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만 보고 기업 떠올려
핵심 홍보전략으로 자리매김
장기적 활용계획 세워야

사람들은 한입 베어 문 사과를 보면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 대부분은 미국의 ‘애플’ 회사를 떠올릴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각인이다. 기업 아이덴티티(Corporate Identity, CI),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 BI) 마케팅의 최종 목표인 각인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만 보고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2000년대부터는 기업은 보다 효과적인 브랜딩을 위해 서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대카드, KT 등을 필두로 각자의 개성을 담은 전용서체를 개발해 타이포브랜딩(Typo-branding)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타이포브랜딩은 글자를 이용한 디자인을 의미하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활용한 기업의 차별화된 브랜딩을 의미한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를 비롯한 공공기관들도 그들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전용서체로 표현하고 있다.

▲ 기업의 브랜딩에서 전용서체의 역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사진제공 | 윤디자인그룹
▲ 카카오 전용서체 '카카오체' 사진제공 | 카카오
▲ 태극당 전용서체 '태극당 1946체' 사진제공 | 태극당

마케팅의 새로운 전략, 타이포브랜딩
기업의 이미지와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에는 △애플의 사과와 같은 심벌 마크(Symbol Mark) △고유 색상 △시각적으로 기업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글자체인 로고 타입(Logotype) △기업이 자신만의 서체를 이용하는 전용서체 등이 있다. 이 중 전용서체는 로고 타입에도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용범위가 상당히 넓어 그 중요성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김형석(경희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기업은 CI 제작 과정에서 독창적인 로고 타입과 전용서체의 개발을 통해 기업이나 브랜드의 독자적인 성격과 개성이 반영되도록 노력을 기울인다”며 “이는 대중과 소비자들로 하여금 기업의 이미지, 브랜드명 등을 빠르고 쉽게 구분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오래 기억하고, 나중에는 호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형석 교수는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마케팅, 즉 타이포브랜딩은 비단 아이덴티티 디자인뿐만 아니라 광고, 홍보, 포장 등 전방위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자 핵심 전략 그 자체”라고 덧붙였다.

전용서체를 통해 기업은 외부적으로는 자신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효과를 얻는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목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통일성을 얻는다. 사내에서 사용되는 표지판, 문서, 디자인 등 모든 부분에 전용서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윤디자인그룹 영업전략부 김기철 부장은 “부서마다 달랐던 서체가 통일되고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어져 조직력을 공고히 하게 된다”며 “광고 등에 쓰이는 서체를 그 때마다 여기저기서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기업 자신이 전용서체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하게 돼, 전용서체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마케팅의 방법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기업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보여주다’
기업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전용서체를 만든다. 브랜드 리뉴얼의 일환으로 전용서체를 도입하기도, 혹은 단순히 남들이 하니까 도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업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1946년에 개장해 70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제과점 태극당은 브랜드 리뉴얼 과정에서 전용서체인 ‘태극당 1946체’를 도입했다. 태극당 신경철 전무이사는 “브랜드 리뉴얼을 준비하며 태극당만의 아이덴티티를 부각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 전용서체를 도입했다”며 “전용서체의 효과는 잘 티가 안 나지만 제일 많이 고객에게 보여지는 부분이 서체이기에, 그만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전용서체를 만들 때는 기업과 서체개발회사가 같이 기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내고, 그것을 서체에 담아내는 것이다. 기업의 아이덴티티는 고객들에 보여지는 이미지일수도, 그 기업만의 사내문화일수도 있다. 태극당은 70년 전통을 최대한 지켜내는 방향으로 ‘태극당 1946체’를 도입했으며, 현대카드는 카드모양을 모티브로 유앤아이체를 개발했다. 현대카드의 한 관계자는 “초기에는 글씨 자체로서의 기능보다 시각적 인상에 집중해 서체만 보고도 현대카드를 떠올릴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뿐만 아니라 기업문화,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을 서체로 시각화했다. 카카오 브랜드팀 김성은 BX디자이너는 “젊고 건강한 그리고 밝고 친근한 카카오의 대외적 이미지와 자유롭고 유연하게 새로운 시선으로 사고하는 ‘카카오 크루(임직원)’의 태도를 서체로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정부기관의 명칭을 표기하기 위해 3월부터 실제로 사용 중인 ‘대한민국 정부 상징체’는 훈민정음의 조형적 특성을 반영해 문화적, 역사적 정통성을 갖췄다. 대한민국 정부 상징체를 만든 임진욱 타이포디자인연구소장은 “훈민정음 글자 형태를 기본으로 창제 초기 글자 구조, 이미지를 기본으로 글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무료 배포에 대한 의견은 엇갈려
전용서체의 중요성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전용서체를 무료 배포하는 것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네이버, 티켓몬스터, 우아한형제들 등 몇몇 기업과 공공기관은 전용서체를 무료로 누구나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네이버는 2008년부터 진행된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의 일환으로 나눔고딕, 나눔명조 등 나눔글꼴을 매년 개발해 무료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전용서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대외비로 규정해놓기도 한다. 서체가 남용‧오용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임진욱 연구소장은 “기업의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배포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내부적으로 제한해 규정해놓고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장 성공적인 전용서체라 불리는 현대카드의 유앤아이체도 기업의 대외비 자료로 구분돼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유앤아이체는 그 서체만 보고 현대카드임을 인식하는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데, 서체를 무료로 배포하면 기업이 추구하는 바와 다른 메시지가 잘못 전달될 수 있어 대외비 자료로 구분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계획과 철저한 사후관리 필요해
타이포브랜딩은 서체를 기업의 아이덴티티에 맞추는 과정과 기업이 이를 활용하는 과정으로 나뉘는데, 성공적인 타이포브랜딩을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탄탄한 활용계획이 중요하다. 윤디자인그룹 김기철 부장은 “기업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서체를 만드는 것을 차별화, 서체를 활용하는 것은 가치를 만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둘 모두를 해야 성공적인 브랜딩이 된다”며 “기업이 의지를 갖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을 정확하게 잡고 서체 개발을 의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철 부장은 “‘다른 곳도 만드니까 우리도 만들자’로 출발하게 되면 차별화까지는 성공해도 그것으로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해 브랜딩에 실패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전용서체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글자 자체로의 기능보다는 시각적인 인상에 집중했다고 밝힌 현대카드도 가독성을 향상시키는 리뉴얼을 2차례 진행했다. 김기철 부장은 “평균적으로 전용서체 생명력은 5년”이라며 “서체를 사용하는 각종 프로그램에의 최적화 작업, 디자인 관리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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